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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부잡]건설사가 PF대출 갚았다는데, 위기감은 왜?

  • 2023.02.13(월) 07:10

복잡해진 부동산PF…건설사·금융권도 '긴장감'
활황기 사업 확장 '부메랑'…미분양 '조마조마'

대우건설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금을 갚았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보증을 섰던 돈을 자체 자금으로 상환한 건데요. 토지매입 등에 필요하다며 시행사가 빌려 간 총대출금 900억원 가운데 대우건설이 보증한 440억원입니다. ▶관련 기사: 건설사도 사업성 낮으면 '손절'…부동산PF 리스크 고조(2월 9일)

해당 사업장의 사업성이 낮다며 돈을 내고 손을 뗀 형국인데요. 향후 더 큰 손실을 피하기 위해 수백억원의 손실을 감내하기로 한 겁니다. 이제 금융사는 새로운 건설사를 찾거나 아니면 토지를 공매해 남은 대출금을 회수하면 됩니다.

표면적으론 이미 빌려준 돈의 절반가량을 되돌려 받았으니 땅만 팔린다면 금융사로서는 큰 손해를 볼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건설사 입장에서도 비용을 치르긴 했지만 더 큰 리스크를 피했다는 점에서 향후 경영의 안정성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고요.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내 건설·금융 업계엔 불안한 기색이 역력해 보입니다. 이는 국내 부동산PF 시장의 복잡한 구조와 갈수록 높아지는 위기론과도 연관돼 있습니다.

분위기 확 달라진 부동산PF 시장

부동산PF란 부동산개발사업의 미래 현금흐름을 예측해 금융사가 대출을 해주는 것을 지칭합니다.

통상 시행사인 부동산 개발 업체가 건물을 짓기 위한 땅을 사는 것으로 부동산PF 사업을 시작합니다. 시행사는 자금력이 크지 않기 때문에 시공을 하는 건설사가 보증을 해주는데요. 금융사는 주로 이 건설사를 보고 돈을 빌려줍니다. 이 대출을 '브릿지론'이라고 합니다.

이후 큰 문제가 없다면 금융사는 공사비를 포함한 전체 사업비에 대한 대출인 이른바 '본PF'를 진행합니다. 본PF에서도 건설사는 연대보증이나 채무인수, 책임준공 등의 일종의 보증을 서게 되고요. 대우건설이 금융사가 제시한 본PF 대출의 금리와 수수료가 너무 높다며 브릿지론 단계에서 손을 뗀 거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구조를 고려하면 개발 사업에 본격 돌입하기 전에 철수를 선택하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지난 수년간 보기 어려웠던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하고 있는데요. 부동산 활황기에는 금융사가 금리를 높여도 건설사는 분양가를 올리면 됐습니다. 그래도 집이 팔렸으니까요. 그러니 사업을 중단하는 사례는 흔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전국적으로 미분양 주택이 급증하는 시기입니다. 이번 '대우건설 사건'은 이런 시장 침체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을 받는 겁니다.

부동산PF 리스크 분담구조 비교. /그래픽=비즈니스워치.

건설사의 부동산PF 책임 분산…파장은?

부동산PF는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주로 건설사가 대부분의 책임을 지고 은행과 저축은행 등 금융사가 돈을 빌려주는 단순한 구조였는데요.

이런 구조에서는 시장이 침체하면 부실한 건설사들이 먼저 무너지고, 주로 부실한 건설사들에 직접 돈을 빌려준 저축은행들이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벌어진 일입니다.

지금은 이런 구조가 더욱 복잡해지면서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 전개될 가능성이 큽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친 뒤 제도 변화 등으로 증권사나 캐피탈사 등이 더욱 적극적으로 부동산PF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한 영향인데요. 이로 인해 건설사들의 '책임'이 일정 부분 분산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증권사의 경우 부동산PF 직접 대출 외에도 유동화를 통해 PF 사업에 관여하고 있기도 한데요. 채권을 발행해 투자자를 모으고 이 돈을 PF사업에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전형적인 대출과는 다른 방식이죠. 이 과정에서 증권사들이 투자자 보호를 위해 채무보증을 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에는 건설사가 땅을 사는 것부터 시작해 공사를 하고 분양하는 것까지 전부 책임을 지다 보니 사업에 차질이 빚어지면 건설사가 온전히 책임을 져야 했는데요. 이제는 땅을 살 때부터 증권사 등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책임을 나눠지고 있는 셈입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결국 지금 금융사들은 단순히 빌려준 돈을 받느냐 못 받느냐를 넘어서 부동산PF 시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만으로 타격을 받는 입장에 서게 된 겁니다.

이번 사건에 건설사들은 긴장감 속에서도 일부 '대우건설이 손실은 봤지만 그나마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반면, 금융사들의 경우 다소 불쾌한 내색을 비치고 있는 이유입니다.

특히 이번 대우건설처럼 비교적 재무건전성이 탄탄한 건설사들이 손실을 감수하면서 부실한 사업장을 '구조조정' 하는 일이 확산할 경우 중소형 금융사들이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 신용업계 관계자는 "중소형 금융사들의 경우 앞으로 이런 사태에 대비해 미리 충당금을 쌓는 등의 조처가 필요할 텐데 그럴 여력이 많지 않다"며 "앞으로 증권사들이 손실을 보고 자본이 줄어드는 흐름이 가속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망했습니다.

이어 "저축은행보다는 증권사나 캐피탈사 등이 금융시장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큰데 최근에 이 업체들이 부동산 PF에 너무 깊숙이 관여한 경향이 있다"며 "이런 변화로 인해 PF부실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더욱 예상하기 어려워진 만큼 정부가 더욱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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