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건설이 440억원의 손실을 감수하고 울산의 한 주상복합 개발 사업에서 철수했다. 그간 부동산PF 부실화 우려에 금융사들이 자금줄을 조이는 사례는 있었지만 건설사가 사업성이 떨어진다며 손절매를 하는 경우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일이어서 관심이 더욱 쏠린다.
건설·금융 업계에서는 앞으로 이런 사례가 확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건설 활황기에는 건설사와 금융사가 큰 문제 없이 손을 잡고 사업을 진행했지만 앞으로는 이해관계에 따라 엇갈린 선택을 하면서 공사가 지연·중단하는 경우가 늘어날 거란 전망이다.
대우건설 "대주단 무리한 조건 요구해 철수"
대우건설은 후순위 대출 보증을 섰던 울산 동구 일산동 푸르지오 주상복합 아파트 개발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이 사업의 브릿지론 440억원을 자체 자금으로 상환하고 시공권을 포기했다. 이 사업은 총 480가구 규모로 전체 사업비만 1조원에 달하는 대형 사업장이다.
앞서 시행사는 토지 매입과 인허가에 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자체 자금 100억원을 투입하고 브릿지론으로 증권사·캐피탈사로부터 900억원을 조달받았다. 이중 대우건설은 후순위 440억원을 보증하고 공사비로 1600억원을 받기로 했다.
통상 부동산PF 사업장에서는 시행사가 브리지론을 통해 토지 등을 확보하고 이후 금융권에서 대주단을 구성해 공사비를 포함한 전체 사업비에 대한 대출을 해준다. 업계에서는 이른바 '본PF'라고 지칭한다.
대우건설은 대주단이 제시한 본PF 금융 조건이 무리한 수준이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4월 도급계약 당시만 해도 5%대 금리에 수수료는 1% 수준이었는데, 최근 대주단으로부터 10%의 금리에 11%의 수수료를 통보받았다는 설명이다.
결국 대출 금리가 오르면서 사업성이 낮아졌다고 판단해 손을 떼기로 했다. 자칫 미분양 등으로 더욱 큰 손실을 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통상 본PF로 사업이 진행될 경우 시공사가 책임준공을 확약하기 때문에 그 전에 철수한 셈이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대주단이 요구하는 금리나 수수료 등의 조건으로 사업을 진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더욱이 최근 부동산 시장이 안 좋은 탓에 분양가도 올리기 어렵고 미분양 우려도 있어 '손절매'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대우건설이 손을 떼면서 대주단은 선순위 브리지론의 만기를 3개월 연장하고 이 기간 내 대체 시공사를 찾을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다른 시공사를 찾지 못하면 사업 추진이 어려워져 결국 청산할 가능성도 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시장 침체로 사업성 악화…건설·금융 업계 촉각
대우건설 측은 부동산PF 사업장에서 본PF에 들어가기 전인 브릿지론 단계에서 여러 이유로 사업에서 철수하는 것은 종종 벌어지는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계약 구조상 이런 사례가 나올 수는 있겠지만 그간 부동산 활황기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경우라고 설명하고 있다. 대출 금리가 다소 높아도 부동산 활황기에는 분양가 인상 등으로 사업성을 보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에 들어서면서 앞으로 이런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모 건설사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매입했던 인천 영종하늘도시 내 부지를 계약금을 포기하면서까지 반환했는데, 이번 대우건설 건도 큰 틀에서 이와 비슷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4~5년간 부동산 경기가 워낙 좋다 보니 이런 사례를 볼 수 없었는데 앞으로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는 "대우건설의 경우 산업은행 체제에 있던 터라 더 보수적으로 사업성을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그런 대우건설조차 수백억원을 손해 보며 사업에서 발을 뺄 정도로 시장 흐름이 좋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건설사들이 초기 사업장에서 철수하는 사례가 늘어나면 대주단인 금융사들 역시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해당 사업의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알려지게 되면 결국 사업 자체가 무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신용업계 관계자는 "부동산PF 사업에서는 어떤 건설사가 시공하느냐가 중요한데, 대우건설과 같은 대형 건설사가 사업성이 낮다며 발을 빼면 해당 사업의 가치는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며 "부동산PF 사업을 하는 금융사들은 앞으로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금융사 입장에서도 시중 금리가 높기 때문에 건설사들이 원하는 대로 무작정 낮춰주기도 어려울 것"이라며 "이런 사례가 늘면 건설사는 물론 금융사들의 손실 역시 줄줄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정부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