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져 온 부동산 경기 침체 흐름은 올해 상반기에도 지속했다. 다만 온도 차가 있었다. 정부의 대대적인 규제 완화의 영향으로 가팔랐던 하락세가 빠르게 둔화한 것. 시장에서는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연착륙이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닥론도 고개를 들고 있지만 대세 상승은 어려울 거라는 분석도 있다. 헷갈리는 올해 하반기 부동산 시장을 전망해 본다. [편집자]
올해 하반기 국내 부동산 시장의 가장 큰 변수로 꼽히는 것은 역전세난이다. 지난 2021년 전셋값이 급등했을 당시 계약했던 매물들이 올해 하반기 이후 집중적으로 만료를 앞두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전셋값이 하락해 기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례가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조만간 발표할 예정인 대출 규제 완화 등 관련 대책에 관심을 쏟고 있다. 역전세난의 진통이 있긴 하겠지만 정부 대책에 따라 연착륙이 가능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올해 하반기에도 빌라와 오피스텔 전세 시장은 침체를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이에 따라 월세 선호 역시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상대적으로 안심할 수 있는 아파트 전세 시장의 경우 그간의 가파른 침체 국면에서는 벗어나는 흐름이다. 기존 빌라 전세 수요가 쏠리고 있고 월세값이 오른 영향도 있다. 이런 흐름이 당분간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세 계약 만료 300조원…대책 마련 나선 정부
정부 당국 등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내달 초 발표 예정인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일부 완화하는 방안을 담을 전망이다. 최근 전세사기와 역전세난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집주인이 전세금을 반환해 주는 경우에 한해 DSR을 완화해 주겠다는 것.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달 초 한 토론회에서 "전세금 반환과 관련해서 대출 규제를 완화해 주려고 한다"며 "이 목적에 한해 DSR 규제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최근 한 인터뷰에서 "보증금 차액에 대해 다음 계약 기간 때까지만 DSR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에 대해 금융당국, 기획재정부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이처럼 적극적으로 대책 마련에 나서는 것은 역전세난이 확산할 경우 자칫 국내 부동산 시장이 휘청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전세보증금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급증하면 국내 경기 전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직방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1년간 전세 계약이 만료하는 보증금 규모는 역대 최대인 3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트와 단독다가구, 연립다가구, 오피스텔 등 전국 주택 전세거래 총액은 지난 2021년 하반기 149조 800억원에 달했다. 2022년 상반기는 153조 900억원이다. 이를 더하면 향후 1년간 계약 만료 보증금 규모가 300조원을 넘어선다는 계산이다. 이는 지난 2011년 실거래가 공개 이후 최대치다.
한국은행은 최근 전셋값 하락으로 인해 이런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례가 늘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은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말 전세가격이 지난해 3월보다 10~20%까지 떨어질 경우 전세 임대 116만 7000가구 중 4.1~7.6%는 보유한 자산을 처분하고 추가로 빚을 내더라도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을 것으로 추산했다. 하락 폭이 20%일 경우 7.6%인 총 8만 8000가구가 보증금을 떼일 수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내놓을 대책에 주목하고 있다. 예고한 대로 보증금 차액에 대해 DSR 규제를 완화해 줄 경우 심각한 역전세난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빌라나 오피스텔의 경우 역전세를 넘어 깡통전세(전세보증금이 매맷가를 웃도는 집) 우려도 심화하는 상황이라 대출규제 완화로 해소할수 있을지 주목된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올해 하반기에 전세계약이 크게 몰려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인 것은 맞다"면서도 "다만 정부가 이 문제를 그대로 두지 않고 대안을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전세난이 연착륙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가장 강한 규제인 DSR 규제를 완화해준다는 점에서 대부분 집주인들의 대출 여력이 커지면서 숨통이 트일 수 있다"며 "다만 빌라 등의 경우 아파트에 비해 시세 평가가 낮을 수 있어 대출액이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점은 변수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잦아드는 전셋값 하락세…하반기에도 지속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락세를 보였던 전셋값 흐름은 최근 들어 다소 잦아드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하반기에도 이런 분위기가 이어질 거라고 전망하고 있다.
최근 한국건설산업연구원도 '2023년 하반기 건설·부동산 경기 전망' 이런 전망을 내놨다. 전셋값 하락이 지속하겠지만 낙폭은 감소할 거라는 분석이다. ▷관련 기사: 건산연 "하반기 수도권 집값 보합…반등은 일러"(6월 26일)
일단 정부의 역전세 대책으로 '전세 공포' 분위기는 다소 완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더해 전셋값은 떨어진 반면 월세는 지속해 오르고 있어 월세 시장으로만 수요가 쏠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거라는 전망이다. 특히 아파트의 경우 빌라나 오피스텔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세가율이 높지 않고 불안감이 덜 하다는 점에서 수요가 늘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103.1에서 83.4까지 큰 폭으로 떨어진 반면 월세가격지수의 경우 되레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서울 아파트의 경우 전세가율이 낮은 데다가 최근 월세가 많이 올랐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메리트가 생긴 게 사실"이라며 "올해 하반기에는 아파트에 한해 전세 시장이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다만 빌라나 오피스텔의 경우 전세 사기 등으로 신뢰가 무너져 있어 올해 하반기에도 약세가 이어지면서 월세 시장 수요가 지속해 늘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윤 팀장은 "올해 하반기에는 일단 역전세 등으로 전세 시장이 진통을 겪을 것"이라며 "만료를 앞둔 매물의 경우 기존보다 낮은 가격으로 계약하는 흐름이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연말 이후에는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윤 팀장은 "전셋값이 계속 떨어지려면 월세도 하락해야 하는데 되레 오르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내년에는 입주 물량도 많지 않을 것으로 전망돼 전세 시장 안정화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