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파크에서 전세 물량이 좀 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없네요. 그나마 있는 것도 거의 다 나갔어요" (개포동 한 공인중개사)
지난 27일 찾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개포주공 1단지 재건축)'는 단지 주변 공사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다. 래미안 블레스티지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길을 건너니 개포중학교 바로 옆에 이 아파트 160동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음달 30일 6702가구 입주를 앞두고 있는데도 인근 아파트의 전셋값은 좀처럼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대단지 입주 물량이 풀리면 주변 전셋값이 하락한다는 '입주장' 공식이 여기선 먹히지 않는듯 했다.
6700가구 입주하는데 매물 품귀…전셋값 요지부동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이 아파트의 전용 84㎡ 입주권은 이달 6일 29억800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달 13일에는 29억9000만원에 거래되며 '국민평형 30억원' 수준에 임박했다.
같은 평형의 전세 매물은 13억~14억원에 시세를 형성하고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구룡역(수인분당선)과 가까운 112~116동은 최고 15억원, 멀리 떨어진 149~151동의 경우 최저 11억7000만원의 매물이 남아있다. 앞동은 구룡역까지 직선거리 245m로 도보 6분(네이버 지도) 걸리는 반면 뒷동은 직선거리 1km로 도보 20분 소요된다.
개포동의 A 공인중개사는 "아이파크 전세 물량이 한창 많은 건 8~9월이었다"며 "지금은 물량이 워낙 없어서 전셋값이 떨어지지 않고 주변 아파트 전셋값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B 공인중개사는 "아이파크 전세 매물이 좀 나올 줄 알았는데 전세보다 실제 입주하는 가구가 많아 물량이 생각보다 안 나왔다"며 "그나마 나온 것도 59㎡, 84㎡는 거의 다 나갔다"고 말했다.
인근에 위치한 '개포래미안 포레스트'와 '래미안 블레스티지'의 전셋값도 비슷한 수준이다. 국토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개포래미안 포레스트'의 전용 84㎡ 전세 매물은 지난달 20일 12억3000만원에 거래됐다. 같은달 14일 13억5000만원에 체결된 거래도 있었다. 5월 이후 전셋값은 12억~13억원선을 유지하고 있다.
'래미안 블레스티지'도 이달 4일 13억5000만원에 전용 84㎡ 전세 계약이 이뤄졌다. 전달 23일엔 14억원에 거래됐다. 7~8월만 해도 11억원대 매물이 있었는데 자취를 감췄다.
C 공인중개사는 "포레스트(2020년 9월 입주)와 블레스티지(2019년 2월 입주) 모두 전세 순환기가 아니라서 물량이 많이 없다"며 "2년 주기로 전세 물량이 나와줘야 하는데 없으니 당분간 전셋값이 떨어질 기미를 안 보일 것 같다"고 말했다.
D 공인중개사는 "요즘은 입주가 많다고 주변 전셋값이 싸지는 건 아닌 것 같다"며 "내년 2월 입주를 마칠 때쯤 전세 물량이 나온다면 가격이 떨어질지 두고봐야 하는데 현 수준에서 크게 떨어지진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반포 원베일리도 '전셋값 하락' 공식 엇나가
이는 올해 3월 입주한 강남구 개포동 '개포자이 프레지던스'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 아파트가 입주할 무렵 주변 아파트 전셋값은 하락세를 보였다. 디에이치아너힐즈의 전용 84㎡ 전셋값은 지난해 16억~17억원에서 올해 3월 11억~12억원선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최근들어선 강남권에서 대단지 입주 물량이 쏟아져도 주변 아파트 전셋값이 떨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입주한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역시 마찬가지다.
인근의 래미안퍼스티지 전용 84㎡ 전세 거래는 이달 9일 14억원에 이뤄졌다. 지난 6월 12억원대에 거래된 이후 오름세를 보였다.
아크로리버파크의 경우 같은 평형이 이달 20일 18억원에 거래됐다. 지난 7월 13억원대였던 전셋값은 연초 수준까지 올랐다.
반포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원베일리 입주와 무관하게 래미안퍼스티지는 단지 내에 학교(잠원초등학교)가 있어 선호도가 높다"며 "아크로리버파크도 수요가 꾸준하다"고 말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올 상반기 개포자이 프레지던스 입주때만 해도 전셋값이 전반적으로 하락할 때였고 월세가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어서 전세 수요가 줄었다"며 "최근에는 전셋값이 회복하는 국면과 입주 시점이 맞물리다보니 입주 물량이 쏟아져도 시장이 충분히 소화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위원은 "반포동과 개포동은 입지적 장점을 갖고 있어 수요가 풍부하고, 조합원 직접 거주 비율이 높아 주변 아파트의 역전세 우려가 크지 않은 지역"이라며 "매매 및 분양권, 입주권 가격 수준이 높다보니 전셋값도 일정 수준 따라가는 경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0월 넷째주 서울 전세가격은 일주일새 0.18% 상승했다. 강남구의 전세가격 변동률은 0.07%였다. 부동산원 관계자는 "매매시장의 불확실성으로 주택 실수요자들의 전세선호가 이어지고 있다"며 "역세권과 대단지 등 선호지역을 위주로 임차수요가 이어지며 전셋값 상승세가 지속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