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찾은 '개포더샵트리에'는 겉보기에 여느 신축 아파트와 다르지 않았다. 단지 외관에 디자인된 파란색 강판은 포스코이앤씨의 신축 단지임을 보여주는 듯했다. 화려한 문주를 지나 내부로 들어서니 한가운데 저층 유리건물(지하주차장)을 최고 16층 거주동이 'ㄷ자'로 둘러싼 형태의 아담한 단지가 나타났다.
필로티 없이 리모델링 가능할까?
서울 강남구 개포우성9차는 1991년 준공된 232가구 규모 아파트다. 2021년 포스코이앤씨의 리모델링을 통해 '개포더샵트리에'로 재탄생했다. 일반분양이 없는 1대 1 리모델링이었다. 하지만 용적률은 249.33%에서 355.98%로 높였다.
비교적 작은 규모에 건물이 'ㄷ자'로 배치됐음에도 개방감을 느낄 수 있던 건 리모델링 과정에서 1개 층을 띄우며 생긴 '필로티' 덕분이었다. 필로티 공간의 일부는 관리사무소와 노인정, 어린이집,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생활 편의를 위한 무인택배함이나 자전거 거치대도 눈에 띄었다. 헬스장도 운영 예정이었다. 신축 대단지 못지않은 커뮤니티 시설이다.
이 단지는 국토교통부 유권해석 변경 이전인 만큼 필로티를 포함한 수평증축으로 적용받았다. 최근엔 필로티를 수직증축으로 간주해 안전성 규제가 강화되면서 다른 리모델링 조합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란한 상황이다. ▷관련기사: '필로티가 너무해'…리모델링 추진 단지 골머리(2023년12월15일)
리모델링 아파트의 필로티가 위험하다는 인식은 '오해'라는 게 시공사 설명이었다. 사업을 주관한 정상민 포스코이앤씨 리모델링영업실 기술그룹 부장은 "기존 건축물의 골조를 남겨 그대로 (기둥을) 내린 것"이라며 "그 안에 부대복리시설을 넣어 전체 건폐율을 낮추고 쾌적함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안전기준에 맞게 손질도 한다. 기존 구조물을 보강하고 스프링클러 등 장치도 갖춘다는 것이다. 서울시리모델링협의회 관계자는 "재건축 사업성이 나오지 않아 리모델링을 선택한 단지들이 쾌적한 주거환경을 마련하려면 필로티는 굉장히 중요하다"라며 "법리적 해석이 아니라 기술적인 검토를 하면 충분히 안전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층고 낮고 평면 별로?…"생각보다 괜찮네"
신축 아파트보다 층고가 낮다는 점은 리모델링을 선호하지 않는 주된 이유다. 실제로 가구 내부를 살펴보니 신축 같진 않지만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에어컨, 스프링클러 등 장치 배선을 외곽으로 빙 둘러 가운데는 높은 우물형 천장을 만들어서다. 시선이 가운데로 집중돼 답답함이 적었다.
리모델링은 기존 건축물의 골조를 유지하다 보니 평면 배치가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도 한계로 꼽혀왔다. 거실이 길쭉한 '동굴형' 평면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그래도 거실이 확 넓어지고 방이 늘어나는 건 충분한 이점으로 보였다. 이 단지의 경우 주택형 구성은 종전 전용면적 81·84㎡에서 리모델링 후 전용 105~108㎡로 달라졌다. 전용률은 80%안팎이다.
정 부장은 "이 단지는 45%가량 철거해 평면을 많이 변경했다"며 "분양면적 기준 9평(약 30㎡), 실사용면적 기준 14~17평(46~56㎡가량)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철거량이 늘어나면 공사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곳 조합원들은 평면 개선을 위해 인당 4억원대 부담금을 감수했다는 후문이다.
주차 여건도 대폭 개선됐다. 가구당 0.52대에 불과했던 주차대수는 리모델링 후 1.31대로 증가했다. 기존에는 지상 공간에 122대까지 댈 수 있었는데 최대 320대 수용 가능한 지하주차장을 만들었다.
지하주차장은 단지 한가운데 유리건물에 위치했다. 엘리베이터를 통해 거주동과도 이어진다. 주차장 내 세대창고도 마련됐다. 정 부장은 "기존 건축물은 '파일'이란 막대기를 통해 하중을 지반에 전이시킨다"며 "이 구조물을 피해 거주동 아래가 아닌 단지 가운데에 지하주차장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공사비와 관련해 정 부장은 "모두 철거하고 신축을 세울 때는 전체적으로 흙막이 작업을 하면 되지만 리모델링은 기존 건축물 주변마다 흙막이를 해야 해 비용이 더 많이 든다"며 "기존 건축물 일부를 유지하면서 작업하면 간섭 요소도 많아 시공 관리 포인트도 늘고 공사 난도가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서리협 관계자는 "리모델링 시공 노하우가 쌓인 건설사들은 철거량을 줄이고 평면을 최적화해 공사비를 낮추는 능력이 있다"며 "워낙 공사비가 많이 오르고 분쟁도 계속되다 보니 리모델링 분담금을 합리적으로 인식하는 조합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