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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걸리던 플랜트 배관받침 설계, AI는 10분에 끝냈다

  • 2024.04.25(목) 06:36

연중 기획 [AX인사이트]
'건설+AI 최전선' 현대엔지니어링 스마트DT실
한땀한땀 놓던 복잡한 파이프 받침 설계에도…
까다롭고 방대한 발주처 요구 분석에도 AI 접목
플랜트 노하우 딥러닝…자체 '생성형 AI'도 개발

건설사는 아파트만 짓는 게(주택·건축사업) 아니다. 여러 산업에 필요한 대형 설비나 공장을 세우는 플랜트 사업도 건설업의 커다란 한 축이다. 건설 프로젝트는 기본적으로 발주처가 원하는 조건에 맞춰 설계·조달·시공(EPC)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인공지능(AI)은 EPC의 첫 단추인 설계부터 건설사업을 바꿔나가고 있다.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현대엔지니어링은 2021년 각 사업본부의 스마트기술 조직을 통합해 '스마트기술센터'를 출범했다. 그중 스마트엔지니어링실로 불렸던 '스마트DT실'은 설계와 정보통신기술(ICT) 영역을 맡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의 디지털전환(DT)을 이끄는 이현식 실장은 부서 핵심 과제로 △AI △데이터 △설계 자동화 △비즈니스 플랫폼을 내세웠다.

'파이프랙 파라메틱 모델링'은 입력되는 변수에 따라 생성될 모델을 미리 확인할 수 있는 2D 화면을 제공하고, 스마트3D 기술을 사용해 모델을 자동 생성한다. 기존 방식 대비 작업시간을 70% 단축할 것으로 기대된다. /자료=현대엔지니어링

'한땀한땀' 옮기던 파이프랙, AI로 자동 설계 

현대엔지니어링은 AI에 기반한 '파이프랙 자동화 설계 시스템'을 지난해 발명특허로 출원했다. '파이프랙'은 배관을 받치는 단순한 구조물이다. 하지만 플랜트에서 가장 물량이 많아 설계 때 손이 많이 가기도 한다. 파이프랙을 설계하려면 배관, 전기, 계장 등 정보를 하나하나 반영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사람이 도면을 보고 수작업으로 이 설계를 해왔다.

하지만 여러 부서가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데다 공정이 복잡하고 수정도 잦았다. 개선이 필요했다. 3차원(3D) 모델링으로 선행 설계 정보를 통합하고 디지털 형태로 자동화하면서 휴먼에러(인적오류)와 작업시간 절감 효과를 낼 거란 계산이 섰다.

적은 인력으로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니 모델링은 외주에 맡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 비용도 아낄 수 있게 됐다. 담당자는 "최소 3~4일 걸리던 설계를 10분 만에 1차적으로 뽑아낸 뒤 사용자(엔지니어)가 검토하는 방식으로 바꿔냈다"고 설명했다.

배관을 어디서 어떻게 꺾고 방향을 돌릴지를 정하기 위해 필요한 '파라메틱 모델링'에도 설계 자동화 기법이 활용됐다. 직접 모델링하려면 하나하나 그리며 배치해야 해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이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숫자 몇 개만을 입력해 파이프랙을 설계할 수 있다. 설계 진행률 30% 시점에 발주처에 제출하는 중간보고용으로는 손색없는 결과물이 생성된다. 작업시간은 기존 대비 70% 단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지능(AI) 기반 비정형 공정배관계장도(P&ID) 자동 인식 시스템'은 딥러닝과 컴퓨터비전을 이용해 설계 자동화 환경을 구축한다. /자료=현대엔지니어링

AI가 빠르게 훑고 사용자는 확인만

AI 기반 '비정형 P&ID 자동 인식' 시스템도 작업 효율을 대폭 높였다. P&ID(공정배관계장도)는 플랜트를 짓기 위한 설계도면이다. 건설사는 발주처로부터 받은 600여장의 도면을 2~3개월 안에 분석해 입찰에 참여할지를 판단한다.

방대한 분량의 주문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해석하는 게 관건이다. 비영어권 발주처가 제공한 경우 번역까지 필요하다. 스캔한 PDF 파일이나 정보가 담기지 않은 일반 캐드(CAD, 설계 프로그램)라면 데이터를 별도로 추출하는 과정도 요구된다.

도면 하나엔 200여개의 '심볼(객체)'과 이를 연결하는 '라인'이 수많은 '텍스트'와 함께 담겨있다. 아무리 '빠삭한' 설계전문가라도 발주를 해독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AI가 이를 읽어내는 데 필요한 시간은 단 5초다. 딥러닝과 컴퓨터비전을 통해 학습된 AI가 리포트로 결과물을 내기까지는 넉넉잡아 1분 소요된다.

이현식 실장은 "프로젝트가 메가화하면서 수작업에 한계를 느껴 P&ID 자동 인식 시스템이 필요해졌다. IT기업에 외주를 맡겼지만 인식률이 70%에 불과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무모하지만 직접 연구하기로 결정한 게 2020년"이라며 "자체 개발을 통해 인식률을 95%까지 끌어올렸다. 시스템 안정화를 거쳐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실장은 "AI에게 100% 정확도를 기대할 순 없고 사용자가 후보정해야 한다. 우리는 사용자가 AI의 오류를 효율적으로 찾을 수 있는 환경까지 마련했다"며 "기존에 100만큼의 노력을 들였다면 앞으로는 5를 투입하고도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엔지니어링 미래기술사업부 스마트ICT실 이현식 실장 /사진=현대엔지니어링

'현대엔지니어링표' 챗GPT도

AI는 현대엔지니어링이 '잘 쌓은' 노하우를 '잘 꺼내쓸 수 있게' 돕고 있다. '자재 구매적정가 예측 모델'은 구매업무에 AI를 활용한 사례다. 자재업체가 제시한 금액이 합리적인지를 판단할 때 과거 입찰 이력을 가져와 보여준다. 환율, 금리 등 외부 경제지표와의 상관관계를 제공함으로써 구매단가 예측도 돕는다.

입찰안내서(ITB, invitation to bid)를 검토할 때도 과거 서류를 일일이 찾아 비교하는 수고를 덜어준다. 발주처는 2000장이 넘는 ITB를 PDF 형태로 제공하는데 사용자는 문구 하나하나 읽어가며 검토의견서를 작성해야 한다. 불리한 조건은 없는지, 추가 설명이 필요한지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ITB 분석 어드바이저 시스템'은 과거 비슷한 문구를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불러와 작업시간을 단축시킨다. ITB에 특화된 언어모델을 구축하고 학습시켜 참조문서 자동분류를 추출해내는 것이다. 

이때 AI는 '이 문장을 이렇게 바꿔야 한다'가 아닌 '과거엔 이렇게 처리했다'를 알려준다. 이 실장은 "AI는 결정할 수 없고, 결정하도록 해서도 안된다"며 "AI는 사용자에게 도움을 주는 '헬퍼'나 조언을 주는 '어드바이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엔지니어링 특화 거대언어모델(LLM) 개발도 추진된다. 보안 문제로 챗GPT 등 생성형 AI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자체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PDF 문서를 다운받아 '컨트롤(ctrl)+F'로 검색하는 방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수십년간 쌓아온 데이터와 전문지식을 학습시켜 정보를 요약, 비교, 생성할 수 있도록 구현한다. AI 연구개발 스타트업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현대엔지니어링표 챗GPT' 개발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이 실장은 "AI와 데이터는 분리할 수 없다. 데이터 없이 AI를 한다는 건 허상이고, 데이터가 아무리 잘 축적돼도 AI 조력이 없으면 활용하는 데 문제가 있다"며 "AI와 데이터를 결합시켜 설계 자동화를 이루고, 이를 통합한 비즈니스플랫폼을 조성하는 게 스마트DT실의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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