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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냐, 글이냐

  • 2014.09.05(금) 08:31

강원국의 '직장인의 말하기·글쓰기' (25)
만능 엔터테이너 회장이 되려면

볼테르는 ‘말하는 것처럼 쓰라’고 했다.

쓰인 것처럼 쓰지 마라, 즉 자연스럽게 쓰라는 뜻일 게다. 하지만 말을 글로 옮기 듯이 쓰라는 뜻이면 틀렸다. 말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소위 행간이 비어 있다.

회장이 “내가 다 불러줬는데 왜 이렇게 썼어? 받아 적는 것도 못해!”

다 안 불러줬다. 회장 머릿속에는 있지만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말하는 사람은 머릿속에 있는 내용과 실제로 말한 내용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받아쓴 사람이 불성실하게 작성했다고 오해한다. 회장이 말한 그대로 녹음한 것을 들려줄 수도 없고 답답한 노릇이다.

애초에 말이 있었다.

글은 말에서 나왔다. 말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글이다. 말이 입말이라면 글은 글말일 뿐 글도 말이다. 말을 보관하고 멀리 보내기 위해 고안한 것이 글이다. 그러나 말하느니만 못한 결점도 많다.

메러비안 법칙이란 게 있다.

40년 전, 미국의 심리학자 앨버트 메러비언은 재미있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우리가 대화할 때 말의 내용을 통해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비중은 고작 7%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나머지 93%는 비언어적 요소, 즉 말투와 억양 등이 38%를 담당하고, 표정, 몸짓, 자세가 55%를 전달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받아 적은 내용만 가지고 글을 쓰려면 93%가 빈칸으로 남는다. 말투와 억양, 표정, 몸짓은 받아 적지 못하니까 말이다.

말과 글은 장단점이 있다.

먼저, 말은 어떤가. 전달력이 글보다 낫다. 현장감이 있다. 그야말로 뉘앙스를 전달할 수 있다. 절박한 표정 하나로 백 마디 말을 대신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불러 모아놓고 얘기하는 게 상책일 수 있다. 

그러나 남지 않는다. 멀리 있는 사람에겐 전하기 어렵다. 청중 수에 제한도 있다. 전 직원을 한자리에 불러놓고 얘기하는 게 쉬운 일인가. 말을 위한 준비도 필요하다. 일단 써야 한다. 후대에까지 기록으로 남기지도 못한다. 

이에 반해, 글은 동시에 어디든 갈 수 있다. 대대손손 남는다. 차분히 생각하며 읽게 한다. 스스로 곱씹어보고 생각하는 틈을 주는 데에는 글이 최고다. 하지만 글 자체만으로 모든 내용을 전달해야 한다. 물론 글에도 표정과 느낌을 담을 수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단점은 사람들이 글 읽는 것을 귀찮아 한다는 점이다. 

글과 말 중에 선택하면 될 일이다.
자신은 자기가 가장 잘 안다. 말에 강한 사람이 있다.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있다. 자기가 잘하고, 하고 싶은 방식을 이용하면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다 할 수 있는 역량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  

나는 말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회장도 글이 필요한 때가 있다. 글로 정제해서 내보내야 하는 일이 반드시 생긴다. 여러 번 그런 상황을 접해 봤다. 글을 쓸 수 있으면 그런 때에 회장은 말하지 않는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글에 자신 있는 사람도 글만으로는 안 된다. 직접 얼굴을 보고 얘기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걸 피해서는 안 된다. 피하지 않으려면 평소 연습해야 한다. 말하기도 기술이다. 내용은 물론 몸으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제스처와 표정도 연습하면 얼마든지 좋아진다.

아, 제3의 방법이 있다.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시킬까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짬짜면이 있듯이, 동영상이란 게 있다. 다소 번거롭기는 하지만 전달력과 지속력, 파급력이라는 세 가지 효과를 모두 누릴 수 있다. 이제 회장은 카메라 앞에도 기꺼이 서는 엔터테이너가 돼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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