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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 대한 배려가 좋은 글을 만든다

  • 2014.09.29(월) 08:41

강원국의 '직장인의 말하기·글쓰기'(39)
욕심내지 말고 욕망하자.

나그네가 어두운 밤길을 더듬고 있었다. 그 때 먼 곳에서 등불이 반짝였다. 등불을 향해 반갑게 나아갔다.

“아니, 이럴 수가!”

등불을 든 사람은 앞을 못 보는 장님이었다.
“당신은 장님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찌 등불을...”
“예, 이 등불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앞이 보이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오. 하지만 등불 덕에 사람들이 나와 부딪치지 않으니 결국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요.”


글쓰기가 왜 어려울까?
읽을 사람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멋있게 쓰려고 한다.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이런 욕심은 두 가지 폐단을 낳는다. 글이 표현상 느끼해진다. 내용면에서는 공허해진다. 결국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읽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읽을 사람을 의식은 하되 극복해야 한다. 넘어서야 한다. 그들에게 구걸하지도 주눅 들지도 않아야 한다. 당당하게 중심을 잡고 독자와 마주하는 것이다.

독자를 따뜻한 눈으로 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독자는 빨간 펜 선생님이 아니다. 나의 글을 재단하는 검열관이 아니다. 독자는 나와 한 편이고 내 글쓰기의 참여자다. 같이 호흡하고 함께 공감하는 친구다.  

독자가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게 문제다. 우리는 일기를 쓸 때 귀찮기는 해도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독자가 자신밖에 없기 때문이다. 독자를 과도하게 의식하면 두려움이 생긴다. 잘 보이고 싶은 욕심이 과하면 두려움이 된다. 두려움은 글쓰기에 하등의 도움이 안 된다. 

내가 먼저 정직해야 한다.
자기 검열부터 하지 않아야 한다. 독자의 마음을 잡으려면 자기 마음부터 열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래야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글이 생생하고 자연스럽다. 글에 꾸밈이 없다. 글에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독자들이 호기심을 갖고 찾아들게 하기 위해서 그래야 한다.

독자를 잊는 순간이 있어야 한다.
고독한 시간, 자기 내면에 잠겨 있는 것을 끌어올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의 글쓰기는 3단계다. 첫 번째 준비 단계에서 철저히 독자를 염두에 둔다. 파악하고 연구한다. 두 번째 쓰는 단계에서는 잠시 잊는다. 나에 몰두해 쓴다. 세 번째 고쳐 쓰는 단계에서는 나 스스로 독자가 된다. 독자는 이렇게 나의 글쓰기와 함께 하는 존재다.  

독자는 때로 좌절감을 안겨준다.
경청하되 의기소침하지는 말자. 니체의 말대로 ‘풍파는 전진하는 자의 벗이다.’라고 생각하자. 어차피 진공상태에서 글을 쓸 순 없다. 중력의 부담 정도는 기꺼이 감수해야 할 터. 무관심하지 않은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독자를 배려하자.
배려는 자기를 중심에 두지 않는 것이다. 거창한 것을 써서 멋있게 보이고 싶은 것은 자기를 중심에 둔 것이다. 그래서 욕심이라고 한다. 그러지 말고 욕망하자. 글쓰기에서 욕망은 독자에게 전달할 좋은 내용을 찾고 싶은 마음이다. 또 그것을 좀 더 알기 쉽게 전달하고자 하는 간절함이다. 나아가 독자 가슴에 꽂히게 하기 위해 고민하는 열정이다. 이 모두가 자기가 아닌 독자를 중심에 둔 것이다.  

글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 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독자에 대한 배려가 아니다. 그런 글은 독자를 불안하게 한다. 자신 있게 써서 부담감을 주지 않는 게 독자에 대한 배려다.  

자신이 많이 안다는 것을 글에 드러내면서 우쭐해 하는 것은 배려가 아니다. 알기 쉽게 써서 그것을 단번에 이해한 독자들이 우쭐하게 만들어야 그게 배려다. 

 

장황하게 써서 독자들의 시간을 빼앗는 것은 배려가 아니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써서 독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 배려다. 

온갖 수식어와 수사법을 동원해서 독자에게 감동을 주려는 시도는 배려가 아니다. 느끼함으로 고문하는 일이다. 담담하고 소박하되 전하려는 메시지가 분명한 것이 독자를 배려하는 것이다.  

책임감(Responsibility)은 반응(Response)과 능력(Ability)의 합성어라고 한다. 그러니까 타인에 대해 반응할 줄 아는 능력, 즉 독자에 대한 배려가 글 쓰는 사람의 책임감이다.

잘 쓴 글은 독자의 마음에서 나온다. 내가 잘 쓴다고 되는 게 아니다. 좋은 글을 쓰고 싶거든 독자를 향해 ‘장님의 등불’을 먼저 들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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