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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니 작가가 되어 있었다

  • 2014.09.24(수) 08:31

강원국의 '직장인의 말하기·글쓰기'(36)
책을 써라

나이 쉰에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억대 연봉에 차량도 지급되었다. 회장을 보좌하고 있었으니 나름 힘도 있고 괜찮은 자리였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자리에 얼마나 더 있을 수 있지? 기껏해야 3년 아닐까? 한두 살이라도 젊었을 때 나가서 30년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게 낫지 않을까?

언젠가 본 ‘솔개의 선택’이란 영상이 떠올랐다.

새들 중에 수명이 가장 길다는 솔개. 태어난 지 40년이 되면 부리는 구부러지고 발톱은 닳고 날개는 날수 없을 만큼 무거워진다. 솔개는 고민한다. 이대로 살다가 죽을 것인가, 아니면 각고의 노력으로 새로운 삶을 개척할 것인가?

솔개는 결단한다. 바위산 정상으로 올라가 낡은 부리가 다 닳아서 없어질 때까지 바위를 마구 쫀다. 그 자리에 튼튼한 새 부리가 자란다. 새로 나온 부리로 발톱을 뽑기 시작한다. 새 발톱이 나오면 이번에는 깃털을 하나씩 뽑아버린다. 그 자리에 새로운 깃털이 나온다. 이렇게 다시 태어난 솔개는 80년의 수명을 누린다. 물론 사실이 아닌 이야기다.

회사를 그만 두겠다고 말했다.

 

회장이 뭘 할 거냐고 물었다. 출판사에서 책 만드는 일로 인생 후반전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나마 그것 밖에 자신 있는 일이 없었다. 회장은 잘 안 될 거라며 언제든지 돌아오고 싶으면 오라고 했다.

학원에 등록을 했다. 편집 기초과정인 교정교열 강좌였다. 열심히 배워 출판사에 출근했다. 당연히 말단이었다. 대걸레를 잡고 사흘 걸러 한 번씩 야근도 하면서 세 사람의 책을 편집했다. 하나는 다섯 권짜리 삼국지 세트였으니 모두 7권의 책을 냈다. 그렇게 8개월을 보냈다.

그사이 페이스북에 입문했다. 출판 일을 하려면 정보 수집과 책 홍보를 위해 반드시 페이스북을 해야 한다는 말에 시작했다. 처음으로 내 글을 쓰는 것이 재밌었다. 반응도 괜찮았다. 나도 책을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두 달간 휴직했다. 매일 집 앞 도서관에 나가 책을 썼다. 『대통령의 글쓰기』란 책이다.

책을 내고 나서 여러 가지가 바뀌었다.

아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이미 책을 쓸 때부터 대접이 달라졌다. 매일 술만 먹고 다니던 사람이 글을 쓰고 있으니 좀 그럴싸해 보였나 보다. 거기다 책까지 잘 팔렸다. 집에서 무시 못 할 존재가 되었다. 이전에는 과일이나 치킨 먹을 때 아들이 먹다가 남으면 먹었다. 이젠 같이 먹는다. 아내가 그러라고 하니까.

밖에 나가니 호칭도 바뀌었다. 나를 ‘작가’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 부르는 줄 알았다. 책이 잘 팔리니 그 앞에 수식어가 하나 더 붙었다. ‘베스트셀러 작가’. 나는 지금도 ‘작가’라는 호칭이 쑥스럽다. 그래서 부러 ‘나는 베셀 작가’라고 하고 다닌다.

글쓰기 강사도 한다. 불과 일 년 전 분당 한겨레문화센터의 수강생이었던 나다. 지금은 신촌 한겨레문화센터 강사가 됐다. 수강생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외부 특강에도 자주 불려 다닌다. 책을 내고 100회 가까운 강연을 했다. 외부 강연에 가면 ‘교수님’이라고도 부른다. 이 또한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기분은 좋다. 대학 다닐 때, 언젠가 교사를 하기 위해 교직을 이수했다. 이제와 그 꿈을 이룬 것이다.

책을 쓰라고 권하고 싶다.

솔직히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다. 나이 마흔이 넘으면 누구나 자기 안에 쓸 거리를 가지고 있다. 얼마나 팔릴 것이냐 하는 것은 차후 문제다. 책을 내는 것 자체로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 책을 쓰는 과정 자체가 공부이고 자기 수련의 장이다. 또한 책은 자기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지난 삶이 정리되고 기록으로 남는다. 나아가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저서는 자격증과 같다. 전문가로 인정받는 것은 물론 호구지책 수단도 된다.

한 마디로 인생이 바뀐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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