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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 회장의 눈물 뒤에 숨겨진 '욕심'

  • 2021.08.21(토) 11:00

[주간유통]침묵 깬 홍원식 회장의 편지
"매각 결렬·노쇼 아냐…한앤컴과 협의"
매각 가격 올리고 향후 복귀 포석인 듯

/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주간유통]은 비즈니스워치 생활경제팀이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들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주간유통]을 보시면 한주간 국내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벌어진 핵심 내용들을 한눈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편집자]

잠적 그리고 침묵

네, 또 남양유업입니다. 논란이 수그러들지가 않습니다. 이별할 때나 화장실을 다녀올 때 '떠난 자리가 아름다워야 한다'고들 하는데요. 남양유업은 그렇지 못하네요. 홍원식 남영유업 회장, 전 회장이라고 해야 하나요? 분명 지난 5월 사퇴하겠다고 밝혔으니 전 회장으로 불려야 하죠. 그런데 지난 17일 공시된 남양유업 분기 보고서에 홍원식 회장은 여전히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럼 회장으로 불러야겠네요.

얼마 전 홍 회장의 편지 한 통이 크게 이슈가 됐습니다. 남양유업 매각을 둘러싸고 한앤컴퍼니와 있었던 각종 사건들에 대해 입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홍 회장의 편지 이야기를 하기 전에 간략하게 그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겠죠? 사모펀드 한앤컴퍼니는 지난 5월 홍 회장과 오너 일가가 보유하고 있는 남양유업 지분 51.68%를 3107억원에 인수하기로 홍 회장과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속전속결이었죠. 홍 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하고 눈물을 보인 지 20여 일 만에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이를 본 소비자들은 남양유업이 이번에는 정말 변하려나 보다 하고 일말의 기대감을 가졌습니다. 시장도 호응했습니다. 홍 회장이 사퇴를 발표한 5월 4일 남양유업의 주가는 전일대비 3만1500원 오른 36만2500원에 마감했습니다. 매각을 발표한 다음 날인 5월 28일에는 상한가를 기록하며 57만원까지 올랐죠.

이후 남양유업의 매각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아니 그런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결국 사달이 났습니다. 홍 회장은 임시 주총 일정을 일방적으로 변경하고 종적을 감췄습니다. 지난 7월 30일 한앤컴퍼니와 만나 최종 사인을 하기로 약속했지만 홍 회장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돈 들고 사인하러 갔던 한앤컴퍼니는 황당했습니다. 이후 한앤컴퍼니는 법적 대응을 예고했습니다. 난리가 났는데도 홍 회장은 침묵했습니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 /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여기까지가 남양유업 매각을 둘러싼 지금까지의 과정입니다. 누가 봐도 홍 회장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눈물까지 흘려가며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으니 남양유업 임직원들을 사랑해달라"고 호소했던 홍 회장입니다. 하지만 이후 홍 회장이 보인 행보는 무책임했습니다. 밖에서는 자신 때문에 난리가 났는데 정작 홍 회장은 침묵의 행보만 이어갔습니다.

그랬던 그가 17일 만에 입을 열었습니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죠. 홍 회장은 편지를 통해 그동안의 상황과 자신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홍 회장 편지의 핵심은 "매각 결렬, 갈등, 노쇼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겁니다. 그는 "본인은 지난 7월 30일 전부터 이미 한앤컴 측에 거래 종결일은 7월 30일이 아니며, 거래 종결을 위한 준비가 더 필요하여 7월 30일 거래 종결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을 전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 한앤컴과의 매각을 결렬시키려고 한 것이 전혀 아니며 현재 계약 종결 조건에 대해 한앤컴과 조율하고자 노력 중으로 한앤컴과 계약 종결을 위한 협의가 조만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한앤컴이 부당한 주장을 한다고 해서 일일이 반박을 하는 것은 사적인 계약관계에서 거래 과정에 있었던 구체적인 일들을 세세하게 공개한다는 것"이라며 "계약 당사자로서 적절한 일도 아니고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홍 회장은 자신은 잘못이 없고 매각 계약 종료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주장을 한 겁니다. 그리고 홍 회장은 예의를 지키기 위해 억울했지만 일일이 대응하지 않았다고도 했습니다. 자, 그럼 이제 홍 회장의 편지 속에 담긴 의미들을 하나씩 짚어봐야 할 듯싶습니다. 그 속에 홍 회장의 전략이나 진심이 숨겨져있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매각 의지' 있었나

우선 홍 회장의 편지에서 눈여겨볼 점은 '7월 30일'을 여러 번 언급했다는 점입니다. 7월 30일은 한앤컴퍼니와 홍 회장이 계약을 종결하기로 한 날입니다. 홍 회장이 7월 30일을 계속 언급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도 이날이 갖고 있는 중요성을 이미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그럼에도 이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은 홍 회장이 당초 계약대로 매각할 의지가 없었다는 것으로 비춰지는 부분입니다.

홍 회장은 7월 30일 이전에 한앤컴퍼니에 임시 주총 연기 등 관련 내용을 전달했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앤컴퍼니측은 7월 29일 늦은 밤에 홍 회장 측이 팩스로 문서를 보내왔다고 밝혔습니다. 홍 회장 말대로 미리 전달한 것은 맞습니다. 문제는 그 방법과 시기입니다. 임시 주총 연기와 매매계약 연기와 같은 사안은 거래 상대방과 사전에 긴밀히 협의하고 합의해야 하는 사안입니다. 하지만 홍 회장은 이 모든 절차를 무시했습니다.

팩스를 통해 내용을 전달했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입니다. 팩스는 상대방이 알려주기 전까지는 해당 문서를 수신했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임시 주총 전날 늦은 밤에 팩스로 '일방적'인 통보했다는 것은 자신이 빠져나갈 명분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또한 매각 성사 의지가 없었다는 또 다른 증거로 보입니다. 만일 계약대로 매각할 의지가 있었다면 직접 대면하거나 유선을 통해 이야기했을 겁니다.

결국 "나는 보냈으니 책임이 없다"고 우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한앤컴퍼니 측은 사전에 홍 회장이 계약 체결 이후에 일정 변경을 포함한 거래 조건 변경과 관련된 논의는 전혀 없었다는 입장입니다. 한마디로 홍 회장의 일방통행이었던 겁니다. 3107억원이 오가는 중요한 계약입니다. 이런 계약에 상대와 의견을 나누고 사전에 조율하는 절차가 생략된 채 매도자 마음대로 변덕을 부린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입니다.

/ 그래픽=비즈니스워치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거래를 종결할 준비'라는 대목입니다. 홍 회장은 편지를 통해 "한앤컴과의 매각을 결렬시키려고 한 것이 전혀 아니며, 상호 당사자 간에 거래를 종결할 준비가 미비한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이런 이유로 당초 예정된 임시 주총을 연기했다는 것이 홍 회장의 논리입니다. 그렇다면 홍 회장이 언급한 '거래를 종결할 준비'라는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일단 매수자인 한앤컴퍼니는 '거래를 종결할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 결합 심사는 물론 투자자들로부터 남양유업 인수를 위한 자금도 모두 확보해뒀습니다. 즉 매수자 측의 문제는 없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매도자인 홍 회장의 준비가 미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매도자 입장에서 준비가 미비했다면 사전에 매수자 측에 사정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홍 회장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준비가 안됐으니 미루자고 일방적으로 통보했습니다. 사전에 한앤컴퍼니와 논의는 없었습니다. 이는 한앤컴퍼니가 황당해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한두 푼 하는 거래도 아니고 수천억원이 오가는 거래입니다. 이런 거래가 이처럼 일방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지연되고 있다는 점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홍 회장이 언급했던 '예의'에도 어긋나는 일입니다.

"한앤컴퍼니가 부당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홍 회장의 주장도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할 지점입니다. 통상적으로 기업의 M&A(인수·합병)에서 매수자가 부당한 주장을 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주식 매매 계약이 체결되기 전까지 매수자는 어떻게든 주식을 인수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도자의 의견을 존중해야 합니다. 홍 회장의 몽니에도 한앤컴퍼니가 아직 '법적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한앤컴퍼니 입장에서는 거래 종결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무엇을 노리나

그렇다면 홍 회장은 왜 이런 기이한 행보를 하는 것일까요. 업계에서는 홍 회장이 매각 대금을 더 많이 받아내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단 버티기에 들어간 후 시간을 벌면서 세부 계약 내용을 조정하려는 의도라는 이야기입니다. 애간장이 녹는 쪽은 한앤컴퍼니이니 홍 회장은 매도자의 지위를 십분 활용해 조금이라도 더 받아 가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입니다.

또 하나는 자식들을 위해 사전 조치를 취하려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홍 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통해 "자식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대를 물려 운영해온 남양유업을 막상 매각하려니 아까웠을 겁니다. 홍 회장의 아들 둘은 현재 남양유업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번 불가리스 사태가 없었다면 자연스럽게 자식들에게 경영권이 세습됐을 겁니다.

따라서 매각 전에 오너 일가의 지분 일부를 남겨둬 향후 남양유업의 경영권을 되찾아올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두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을 겁니다. 자식들의 몫으로 일부 사업부를 분할하거나 이들이 향후 경영에 참여할 기회를 만들어달라는 요구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분석이 힘을 얻고 있는 데에는 최근 홍 회장 일가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아서입니다.

/ 사진=이현석 기자 tryon@

회삿돈 유용 의혹을 받아 보직 해임됐던 홍 회장의 장남은 매각 발표 하루 전날 전략기획 담당 상무로 복직했습니다. 차남은 같은 날 외식사업본부장(상무보)로 승진했죠. 아들들은 매각 발표 전날 회사에 복직, 승진 시켜두고 아버지는 다음 날 매각을 발표했다는 것은 자식들을 통해 앞으로도 남양유업에 홍 회장 등 오너 일가의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시그널로 풀이됩니다.

업계에서는 홍 회장이 이번 거래를 깰 가능성은 적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번 거래가 깨진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홍 회장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홍 회장으로서도 매우 부담되는 일일 겁니다. 가뜩이나 부정적인 이미지가 가득한 남양유업에게도 치명적이죠. 따라서 홍 회장이 이처럼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은 가격을 높이거나 오너 일가의 영향력을 행사할 구조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입니다.

홍 회장이 비난을 받는 이유의 핵심은 '진정성' 때문입니다. 본인이 뱉은 말을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상도의(商道義)'마저 저버리는 행동에 소비자들은 분노합니다. '떠난 자리가 아름다운 사람이 정말로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홍 회장이 떠난 자리에는 무엇이 남아있을까요? 부디 그 자리에 '노욕(老慾)'만 남아있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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