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줄이에요?" "치킨 기다려요"
장맛비가 쏟아지던 지난 9일 오전 11시 40분 홈플러스 월드컵점. 즉석조리식품(델리) 코너 앞에는 벌써 5~6명의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홈플러스의 6990원 치킨인 '당당치킨' 구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당당치킨의 판매 시간은 12시. 카트를 끌고 근처를 지나던 사람들도 '6000원 치킨'이라는 말에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어느덧 매대 앞에는 30명가량의 줄이 늘어섰다.
1분 만에 다 팔렸다
예정된 12시가 조금 넘어 '당당치킨'이 모습을 드러냈다. 판매 개수는 6개. 매대 점원은 "많이 내놓지 못해 죄송하다"며 멋쩍게 웃었다. 기다리던 사람들의 얼굴에는 실망감이 역력했다. 열 번째 순서였던 기자도 아쉽게 구매에 실패했다. 다음 판매 시간은 오후 2시. 몇몇 손님들은 "매장에 더 머물다 오겠다"며 다음을 기약했다. 고물가 시대, 당당치킨의 위세를 한 몸에 느낄 수 있었다.
고객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대기 줄에서 만난 주부 김 모(45·여) 씨는 "동네 치킨도 다 1만5000원씩 하는데, 요즘 세상에 6000원 치킨이 어디있나"라며 "저번 주에 이어 또 사러 왔다. 양도 많아 사두면 며칠씩 먹기 좋다"고 말했다. 다만 적은 물량에 아쉬워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열두 번째 순서였던 오 모(54·남) 씨는 "아까 가족에게 (오늘은 당당치킨) 살 것 같다고 문자도 보냈는데 결국 못 샀다"며 "기왕 파는 것 좀 많이 팔면 안 되는 건가"라며 속마음을 드러냈다.
당당치킨의 효과는 대단했다. 인근 코너들의 '낙수 효과'가 쏠쏠했다. 당당치킨을 기다리면서 물건을 사는 주부들이 적지 않았다. 대기줄 바로 옆에서 팔리던 '코다리 간장 조림'은 어느새 완판됐다. 집객 효과도 상당했다. 당당치킨을 위해 장맛비를 뚫고 월드컵점을 찾았다는 이도 있었다. 홈플러스에 따르면 지난 6월 30일 출시된 '당당치킨'의 누적 판매량은 이달 2일 기준 26만마리를 넘어섰다.
3만원 치킨에 화난 사람들
당당치킨의 경쟁력은 가격이다. 한 마리당 후라이드 기준 6990원, 양념 기준 7990원이다. 두 마리는 9900원으로 일반 치킨 프랜차이즈 제품보다 30% 저렴하다. 주요 프랜차이즈의 치킨 가격은 대체로 2만원 안팎이다. 여기에 배달비까지 더해지만 3만원에 육박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치킨 프랜차이즈업계는 가격 인상으로 여론이 좋지 않다. 홈플러스는 이 틈을 파고들었다. 실제로 홈플러스의 당당치킨 광고 문구도 '치킨 3만원 시대, 위기에 빠진 치킨 물가를 구하라'다.
당당치킨 구매에 성공한 서 모(53·여) 씨는 "일반 프랜차이즈 치킨은 가격이 너무 올라서 요즘 거의 먹지 않고 있다"며 "양도 적고 5명인 가족들끼리 먹으려면 10만원을 써도 모자라다"고 토로했다. 이어 "대형마트가 가성비 치킨을 많이 팔아서 치킨 프랜차이즈들이 느끼는 게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라면서 "고물가 시대 가성비 치킨이 반갑다"며 당당치킨을 들어보였다.
실제로 교촌F&B, BHC, BBQ는 지난해부터 치킨 가격을 인상해 왔다. 원재료 가격 인상 등이 이유였다. 다만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의 실적이 크게 오르며 소비자들은 이를 납득하지 못했다. 특히 윤홍근 제너시스BBQ 회장의 "치킨 가격은 3만원이 적당하다"는 발언이 큰 공분을 샀다. 불매운동까지 거론될 만큼 소비자 반감이 컸다. 이런 상황에 당당치킨은 소비자에게 일종의 '청량제'인 셈이다.
당당치킨의 유명세에 경쟁사들도 가성비 치킨을 선보이고 있다. 과거 5000원 '통큰치킨'을 내놨던 롯데마트도 오는 11일부터 일주일간 '뉴 한통 가아아득 치킨'(1만5800원)을 7000원 할인한 8800원에 판매한다. 이마트는 지난 7월부터 9980원에 '5분 치킨'을 출시해 판매 중이다. 킴스클럽도 1만3500원인 '순삭 치킨'을 내놓고 있다. 업계가 저가 치킨 전쟁을 벌이는 것은 10여년 만이다.
'대체재' 될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대형마트 치킨이 프랜차이즈 치킨을 위협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고물가 상황에서 '대체재'가 될 수 있다는 예상이다. 대형마트는 '규모의 경제'로 싼 원재료에 대량 조리가 가능하다. 가격경쟁력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 레시피와 시설 등 조리 수준도 높아졌다. 다만 업계에서는 마트 치킨이 대체재가 되긴 힘들다고 보고 있다. 애초의 '목적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형마트 입장에서 치킨은 유인책이다. 치킨 판매의 목적은 고객의 체류 시간을 늘려 소비 상품을 늘리는 데 있다. 일종의 미끼인 셈이다. 사실 '가성비 치킨'은 마진이 큰 상품이 아니다. 오히려 손해다. 대량으로 물량을 내놓는 것은 부담이다. 게다가 치킨은 '정치적 리스크'가 있는 식품이다. 자칫하다간 과거 통큰치킨처럼 골목 상권 침해 이슈에 휘말릴 수 있다. 대형마트들이 가성비 치킨을 '이벤트성 상품'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판매 물량도 한정적이다.
물론 상시 판매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다. 과거 '통큰치킨' 논란이 일던 당시와 사회 분위기가 다르다. 고물가에 지친 소비자는 더 이상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의 편이 아니다. 오히려 치킨 업계에 대한 원성이 거세다. 대형마트 입장에서도 치킨은 포기하기 힘든 '집객 카드'다. 고객 유인책 마련이 절실하다. 다만 대체재가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치킨 업계와 갈등이 더 깊어지면 좋을 게 없어서다. 지금과 같이 매일 소량 물량으로 판매를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미끼' 효과만 내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 치킨과 프랜차이즈 치킨은 근본적으로 역할이 다르다. 마트 치킨은 싼 가격에 집객을 유도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며 "레시피, 조리법 등에서 프랜차이즈에 비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고물가에 마트 치킨이 부상하기 시작하면 가맹점 수요가 떨어질 수 있어 치킨 프랜차이즈들은 불편한 마음이 클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