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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부자!]<에필로그>세법,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 2013.08.13(화) 15:13

[13일 오전 세법 개정 수정안 설명을 위해 서울 여의도 국회 새누리당대표실을 찾은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황우여 대표 뒤를 지나고 있다.]


#어제(12일)는 우리나라가 금융실명제를 도입한 지 20년 된 날입니다. 금융실명제를 하기 위해 007 첩보영화를 방불케 했던 회고 기사를 몇 편 봤습니다. 세제 문제도 금융실명제만큼의 전격성이 필요한 것은 아닐는지요? 세금 문제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갈등 요인이기 때문입니다.

세금 더 내라는데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대승적인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면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상당수 선진국의 세금이 우리보다 많습니다.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입니다. 세금 문제만 나오면 부자건 보통 사람이건 불만입니다. 부자는 부자대로 보통 사람은 보통 사람대로 불만투성이가 세금입니다[나, 부자! 4-④].

이런 상황이 생긴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떼부자가 생긴 역사적 배경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나, 부자! 2-②]. 그런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한 촉의 문제도 있지만, 배 아픈 이유로는 충분해 보입니다. 문제는 2013년을 사는 지금, 사회 구조적인 문제인 세금제도를 언제까지 땜질로 메우고 갈 것이냐는 겁니다. 금융실명제만큼의 전격성을 얘기하는 이유입니다.

#정부가 매년 세법개정안을 내놓을 때 가장 관심을 끄는 건 소득세법입니다.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이 리콜 조치한 것도 이 문제입니다. 국민의 절대다수가 이해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표에 민감한 정치권이 항상 난리죠. 그런데 이것은 행정편의주의에 가깝습니다.

정부가 매년 세법 개정안을 내놓은 것은 써야 할 돈이 그때그때 다르기 때문입니다. 돈이 더 필요하면 세금을 더 거두기 위해, 반대라면 세금을 덜 거두기 위해 세법, 정확히는 각종 세목의 세율을 조정합니다. 여기서 이번 개정안이 증세냐 아니냐는 식의 말장난에 끼어들 생각은 없습니다. 세금을 더 내게 됐으면 증세지 다른 무슨 말이 필요합니까?

정부에서 필요한 돈의 규모를 확정하면 그 돈을 거두기 위해 세목을 찾습니다. 가장 손쉬운 것이 월급쟁이의 지갑입니다. 투명하기 때문입니다. 근로소득자는 대상자가 제일 많습니다. 가장 많은 대상자의 투명한 지갑에서 돈을 거두면 정부의 입장에서도 오차가 제일 적습니다. 편하고 오차도 적은데, 정부가 이 방법을 마다할 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보통 이것을 행정편의주의라고 합니다.

#정부의 행정편의를 부추기는 또 한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생각보다 체감 충격이 크지 않다는 겁니다. 조세 저항을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이번 세법 개정안과 관련해서도 청와대와 정부는 ‘16만 원’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국민으로부터 “뭐, 그 정도면…”하는 말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보통 카드사 현금서비스를 받으면 이자는 1만~2만 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대출 금액 자체가 크지 않고 기간도 짧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연이율로 보면 상당히 높은 고금리죠. 이런 착시를 기대하는 게 정부입니다.

#정부가 유리지갑만 터는 건 아닙니다. 종합소득세라고 명명된 항목을 통해 부자들의 세금도 조정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가끔 소비 활성화라는 복병을 만나 정부를 망설이게 합니다. “부자들이 소비해 줘야 경제가 살아날 텐데…” 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세율을 조정하는 것엔 대체로 부정적입니다.

그런데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내놓은 ‘부자 보고서’를 보면,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산 가격이 내려가자 부자들이 희망 목표 자산 규모를 더 늘려 잡고 있습니다. 덜 쓰면서 공격적인 자산운용을 해 돈을 더 모으기를 기대한다는 얘깁니다[나, 부자! 1-③]. 상황이 이러니 유리지갑 털린 보통 사람들이 열 받지 않겠습니까?

종합소득세 항목으로 세금을 더 걷는 건 급여통장에서 일괄적으로 빼가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종합소득세를 내는 상당수의 사람은 전문가 집단이 이것저것 계산을 다 해줍니다. 좋게 얘기하면 절세입니다.

정부와 맞짱을 뜨는 부자도 많습니다. 정부가 얼마나 골치 아프겠습니까? 소송에서 이기면 다행이지만 지기라도 하면 법을 잘못 집행한 결과라고 두들겨 맞기 일쑤입니다. 그러니 소비 활성화라는 핑계는 가뭄 속 단비입니다. ‘굳이 종합소득세를 건드려 좋을 게 없다’는 공무원 마인드가 또한 행정편의주의의 한 증거입니다.

#근로소득자의 염장을 지르는 것이 더 있습니다. 정부는 항상 부자들의 세금도 충분히 걷고 있다고 항변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고소득자 탈루 대책을 강화한다고 매년 똑같이 발표합니다. 이것이 갈등을 더 키웁니다. 탈루(脫漏)는 밖으로 빠져나가 샜다는 얘깁니다. 낼 세금을 안 냈다는 것이고, 법을 지키지 않은 겁니다.

법을 지키지 않고 도망친 세금을 찾아내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겁니다. 매달 꼬박꼬박 세금을 원천징수하는 급여생활자를 달래는 반대급부로 부자(고소득자)의 탈루 세금을 제대로 찾겠다니 뭔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탈루 세금을 찾는 것은 고소득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 국민 공통 사항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유리지갑이어서 탈루 자체가 어렵다는 정도일 겁니다. 법 집행을 제대로 하는 것과 부자와 국민(대부분 근로소득자)의 조세 형평성을 높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최근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조세정책과 관련해 “다 같이 더 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누진세 원칙을 적용해 많이 벌면 상대적으로 많이 내고, 적게 벌면 상대적으로 적게 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간명하고 명쾌합니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정부의 고충을 충분히 압니다.

어떤 법보다 복잡한 것이 세법입니다. 조세법전은 5000페이지에 가깝습니다. 매년 연말정산 서류를 낼 때면 똑같이 느끼는 겁니다. 직장 생활 20년 차도 할 때마다 새로운 게 연말정산입니다. 또 얼마나 많은 예외조항이 있습니까? 예외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복잡하다는 겁니다.

이런 법 체계를 간명하게 다시 정의하고 일관성 있게 정비하는 것은 국민적 불신을 줄일 지름길입니다. 그래서 판을 아예 엎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요즘 말로 하면 프레임을 바꾸는 겁니다. 박 대통령이 소득공제 방식을 세액공제로 전환한 것을 칭찬했다죠? 일종의 프레임 전환입니다.

‘복지를 더 하자면서 증세 없이 가능한 것이냐’는 문제 제기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국민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현재의 법률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작업을 미루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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