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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주총 선진화가 답이다

  • 2014.03.20(목) 09:52

말 많고 탈 많은 사외이사를 어찌할꼬?


우리나라 기업들의 사외이사 추천과정은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됐든 아니든 간에 경영자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한 사외이사 수급제도가 고착화했다. 오너 경영인은 ‘내 회사는 내 맘대로 한다’는 생각이 깊게 박혀 있다. 주식을 공개한 상장사라는 생각이 적다. 법에서 강제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시늉만 낸다.

금융회사들은 절대 주주가 없는 틈을 노려 전문 경영인의 지위로 사외이사 추천과정에 개입하면서 절대 권력의 토대를 다진다.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뿌리 깊은 관치의 습성은 항상 노후 보장을 위한 채무 관계의 덫을 파놓는다. 갚아야 할 빚은 언제나 결정적일 때 써먹는다.

현재의 사외이사 제도가 이렇다면 단순히 제도의 문제만은 아니다. 제도를 바꾸면 인식의 변화를 끌어내는데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사외이사제도의 변화에는 항상 새로운 세력의 밥숟가락과 관련이 있었던 것도 부정하기 힘들다. 공무원에서 정권의 실세로, 다시 관변 학자로…. 지금의 낙하산 형국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모범적이라는 해외 사례를 몇 가지 보자. 제너럴일렉트릭(GE)은 사외이사 결격 사유를 △본인이 GE에 재직한 경우 △직계가족이 GE 간부로 고용된 경우 △GE 외부감사인에 의해 고용됐거나 외부감사인과 연관된 경우 △직계가족이 GE 외부감사인의 동업자, 최고 책임자 또는 관리자로 고용된 경우 등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사외이사 재선임 시 담당 위원회가 이사의 회의 참여기록과 이사회 활동에 대한 참여 및 기여도, 이사회의 자기평가 결과 등을 반영한다. 미국의 석유업체 셰브론도 사외이사 후보를 ‘회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인물’로 제한하고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기준에 부합하는 독립성 테스트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 오너•경영진이 생각을 바꾸면…


이들 회사는 법이 아니라 내부 규율로 사외이사의 독립적 추천과 운영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은행과 기업들도 이와 비슷한 내부 기준을 갖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실제 운영과는 거리가 있다. 솔직히 이런 내부 규정을 피해 가는 것은 일도 아니다.

내부 규정이라도 오너와 회사 경영진이 만에 하나 오판을 줄이는 보루로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결과는 사뭇 다르다. 사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의 상업적 기업이 만에 하나를 대비하는 것은 비효율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회사의 운명을 가를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런 측면에서 기업의 오너와 최고 경영자는 자신의 권한을 나누는 결단이 필요하다. 권한에는 항상 책임도 따르게 마련이어서 결국엔 책임도 나누는 것이다. 그렇게 위험을 줄여야 기업의 장기 생존에 더 유리하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기업 성장을 위한 다른 의견 즉 다양성을 보장해야 중장기적으로 더 유리하다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크게 이견이 없다.

이런 인식의 변화는 쉽게 오지 않는다. 모든 오너와 경영자들이 영원히 살아갈 기업을 꿈꾸지만, 눈앞에 닥친 현실의 무게는 항상 하염없이 무겁다. 머리로는 수긍하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를 제도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주주의 권리를 제대로 세우는 일밖에 없다.

단기적으론 손해더라도 장기적으로 주주에게 이익이라면 이사회는 물론 주주들도 동의할 것이라는 대전제다. 개별로 쪼개진 다수의 주주는 해당 안건을 자세히 알지는 못해도 경영진과 이사회의 결정을 신뢰하고 주총에서 찬성하는 것으로 갈음한다.

◇ 주주총회가 바로 서야


주주총회가 바로 서야 하는 이유다. 국민연금의 만도 대표이사 반대가 목표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의미있는 이유다. 마침 내년엔 섀도 보팅(Shadow Voting)이 폐지될 예정이다. 이는 일종의 의결권 대리행사 제도다. 정족수 미달로 주총이 무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주총에 참석하지 않은 주주들의 투표권을 대리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주총 무산이라는 파국을 막으려는 제도지만, 실제로는 소수 경영진이나 대주주의 경영권 강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상장사들은 주총 상정 안건을 통과시키는 데 유리한 섀도 보팅 제도를 3분의 1 정도가 채택하고 있다.

이 제도가 폐지되면, 재계가 도입을 격렬히 반대하는 전자투표제도 활성화할 가능성이 높다. 전자투표제는 주총에 직접 참여하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제도는 도입됐지만, 국내 제조업체 중에선 도입한 곳이 하나도 없다. 이 제도의 의무화를 담은 상법 개정안은 재계의 강한 저항을 받고 있다.

어쨌든 주총 의결 정족수를 채우기 어려운 기업들은 이 제도를 이용해서라도 주총 무산을 막아야 할 것이고, 대기업들도 제도 도입을 강하게 요구받을 것은 자명하다. 재계는 이 전자투표제 의무화를 격렬히 반대하지만, 주주의 권리를 높이는 데는 분명히 이바지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에서도 세계 최대 주총안건 분석회사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의 위력을 실감하는 상황이 됐다. 오는 21일 주총을 하는 효성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는 말도 전해진다. ISS는 여러 외국인 기관투자가들을 묶는 효과를 낸다. 그래서 두렵다. 주주총회가 바로 서 두려우면 책임 있게 말해 줄 사외이사를 찾고, 그런 사외이사는 책임을 다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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