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고민에 빠졌다. 기술금융도 힘에 부치는데 10%대의 중금리 대출을 해주는 서민금융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판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전일(2일) 현장간담회에서 은행지주 전략 담당 임원들에게 중금리 대출 확대를 주문했다. 임 위원장은 "저신용자들에게 10%대의 중금리를 받더라도 은행이 자금 공급에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서민금융과 기술금융을 서민금융기관이나 정책금융기관이 아니라 은행에서 맡는 것에 대한 부담을 토로했다가 되레 확대해 줄 것을 요구받은 것이다. 서민금융이나 기술금융 모두 잘하면 은행에 새로운 수익원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그동안 안 해본 분야인 만큼 잘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리스크에 따른 부실위험도 크다. 은행들엔 부담스러운 존재다.
◇ 저축은행이 제대로 못 하니 은행에서?
박성호 하나금융지주 전무가 현장간담회에서 "은행이 서민금융을 해야 한다면 별도의 기금을 만들어 저축은행 같은 서민금융 지원 기관에 투자하는 쪽으로 해달라"고 건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민금융, 소액대출에 특화된 저축은행이나 캐피탈 등에서 하는 것이 해당 기관의 강점을 살릴 수 있고, 효율성이나 금융의 중층구조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고 봤다.
문제는 저축은행이나 캐피탈 등의 서민금융기관에서 중금리 시장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임 위원장도 "기존 서민금융기관에선 신용도에 따른 금리 차등화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저축은행을 통한 중금리 대출 확대를 유도해왔다. 하지만 은행지주 계열의 저축은행을 제외하곤 여전히 20~30%의 고금리 대출이 중심이 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엔 은행지주 계열의 한 저축은행이 중금리 대출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부실이 커져 곤욕을 치른 사례도 전해지고 있다.
이순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통 신용등급 5~6등급까지는 부실율이 완만하게 움직이는데 7~8등급으로 올라가면 급격히 올라가기 때문에 금리가 점프하는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그만큼 중금리 대의 시장 형성이 어렵다는 얘기다. 특히 저축은행의 경우 저신용·저소득자의 협상력이 약하다는 점을 이용해 높은 금리를 부과하고 있는 것도 중금리 시장 형성을 어렵게 만든다. 임 위원장이 은행에 서민금융 확대를 요구한 것도 이런 현실적인 한계를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 은행도 저신용자 신용평가 모형 열악
하지만 이런 상황은 은행도 마찬가지다. 과거 SC제일은행도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부실만 떠안고 철수한 바 있다. 은행은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을 취급했던 경험이 없다. 데이터도 부족하고 제대로 된 신용평가 모형도 갖추고 있지 않다.
A은행 서민금융 담당자는 "결국엔 저축은행이나 캐피탈을 이용하는 고객 중에서 비교적 우량한 고객을 골라내야 하는 문제"라며 "10~15% 사이의 금리를 받아서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이익을 내는 게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어 "저신용자에 대한 신용평가 모형이 있기는 하지만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아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 은행이 고금리 대출을? 평판리스크도 걱정
평판리스크 역시 은행이 이 시장에 섣불리 뛰어들지 못하는 이유다. B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고금리대출을 하지 못했던 것은 평판리스크 때문"이라며 "당장 10%짜리 대출을 해준다고 하면 큰 은행이 서민 등쳐먹는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용등급 7~8등급의 저신용자들에게 등급에 따라 높은 이자를 메기는 것이어도 사회적 인식이나 고객들의 반응은 다르다는 얘기다. 여전히 은행은 낮은 금리의 대출을 취급해야 한다는 기대와 인식 때문에 선뜻 나서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C은행 관계자는 "수익원 개발 차원에서 중금리 시장을 개척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면서도 "다만 은행들이 우려하는 것은 자율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기술금융처럼 목표를 주고 평가하는 식으로 압박을 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