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찬 KB금융지주 사장이 내정된 지 두 달여 만에 공식 취임했다.
취임이 늦어진 것이 KB 사정 때문은 아니었지만, KB 입성이 늦어지는 사이 KB금융에도 여러 변화가 있었다. 특히 대우증권 인수 실패로 비은행 강화의 핵심전략이 틀어진 점은 오히려 김 사장에게 더욱 많은 과제를 안겼다.
김 사장은 또 국내 은행계 금융그룹 가운데 유일한 사장이다. KB금융은 윤종규 회장이 국민은행장을 겸임하고 있긴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회장과 은행장 사이에서 다소 애매한 위치였던 사장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안정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도 그에게 주어진 숙제 중 하나다. 그것이 김옥찬 사장도 살고, KB금융도 사는 길이기도 하다.
◇ 비은행 강화 협업· 시너지 확대 초점
김옥찬 사장의 내정은 지난해 10월 19일에 발표됐다. 애초 김 사장이 취임하면 대우증권 인수 등을 직접 챙길 계획이었지만 취임이 늦어지는 사이 대우증권 인수는 실패로 끝났다.
KB금융은 결정적인 비은행 강화 전략에 차질을 빚게 됐다. 내부적으론 최근 대우증권 주가 하락과 증권업황 등을 고려하면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애써 위안으로 삼는 분위기이지만, 당분간 비은행·증권부문 강화엔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물론이고 김옥찬 사장이 짊어져야 할 짐이기도 하다.
김 사장은 11일 오전 취임식에서 "계열사마다 저마다의 핵심경쟁력을 살려 성공 DNA를 만들어나가고,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만만치 않은 도전과제들이다. 특히 금융그룹마다 신년사 등을 통해 자산운용 경쟁력 강화를 내걸고 있다. 상대적으로 증권 부문이 빈약한 KB금융은 이런 약점을 보완하면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KB손해보험과 국민카드는 비은행 계열사 중에서 그나마 웬만큼의 규모를 갖춘 곳이지만 둘 다 시장은 포화상태다. KB손보는 아직 은행과의 시너지가 명쾌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김 사장은 이런 걸림돌을 극복하고, 성과를 내야 한다.
KB금융 관계자는 "김 사장이 국민은행에서 싱가포르사무소와 국제부 경력, 증권운용팀장, 방카슈랑스부장, 재무관리그룹을 맡아왔고, 최근 SGI서울보증 대표이사 등을 역임하는 등 주요 포스트를 모두 경험한 것이 도움될 것"이라고 말했다.
◇ 계열사 시너지 만큼 관심인 '윤종규-김옥찬'의 시너지
김옥찬 사장의 취임으로 계열사 간 시너지 확대만큼이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또 있다. 윤종규 회장과 김옥찬 사장의 궁합(?)이다. 둘 다 온화하면서 합리적인 성품이어서 걱정할 게 없다는 분위기다. 물론 겉으로 드러날 정도로 갈등을 일으킬 소지는 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성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한다고 꼭 잘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KB금융 사장 자리는 2년 반 가까이 비어 있었다.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은 그 자리에 오르기 직전까지 본인이 있었던 사장직을 스스로 없앴다. 이후 윤종규 회장 취임 후에도 1년 동안 공석이었던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옥찬 사장의 취임으로 은행계 금융지주 가운데 유일하게 사장을 둔 지주사가 되기도 했다. 물론 신한금융지주나 하나금융지주도 불과 몇 년 전까지는 모두 사장을 두고 있었다. 모두 그룹 내 권력다툼 과정에서 사라졌다.
그만큼 사장직은 주인 없는 국내 금융그룹 현실에서 애매한 위치라는 점을 방증한다. 물론 KB금융의 경우 윤 회장의 행장직 겸임으로 사장직 필요성이 커진 측면도 있지만, 김옥찬 사장의 부담감은 클 수밖에 없다.
세간의 편견(?)과 우려를 없애고, 사장의 역할을 제대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KB금융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리딩그룹을 지향하기에 그동안 존재감과 방향성을 찾지 못했던 사장 자리에 대한 이정표를 제시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나온다. 김 사장이 취임 인사에서 "윤 회장의 경영방침을 잘 이해하고 보좌해 경영 전반에 걸쳐 효율성을 높이는 작업에 매진하겠다"고 밝힌 점도 눈에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