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반기부터 들썩이기 시작한 대출 금리가 '트리플 악재'를 만났다.
은행들은 올 하반기들어 주택담보대출 가산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선 미국발 트럼플레이션(트럼프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의 영향으로 시중금리까지 오름세다.
미국이 12월 금리인상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중장기적으론 기준금리 인상도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앞으로도 당분간 대출 금리가 꾸준히 오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러자 금융감독원이 또다시 가산금리를 거론하고 나섰다. 가계대출을 잡기 위해 가산금리 인상을 사실상 주문하던 기존 행보와는 180도 달라졌다. 이중잣대라는 지적과 함께 금감원의 단기처방식 대처가 은행들의 일관성 없는 금리 정책을 부추기고, 소비자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도 나온다.
◇ 당국, 이번엔 대출금리 체계에 칼 빼드나
금감원은 은행권의 금리산정 체계의 적정성을 서면 점검키로 했다. 발단은 높은 금리가 아니라 지나치게 낮은 금리에서 시작됐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농협은행의 '황제대출' 논란이 일면서 진웅섭 금감원장이 이를 점검하겠다고 했고, 그 후속조치로 진행되고 있다.
지나친 감면금리에서 논란은 시작됐지만 최근 주택담보대출의 금리가 오르면서 기준금리와 가산금리, 감면금리 등 금리 체계 전반을 점검하는 걸로 방향을 틀었다.
특히 진웅섭 원장은 지난 21일 임원회의에선 "사회적 비난을 초래할 수 있는 수준의 과도한 대출금리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모니터링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금리상승기에 금리 리스크가 소비자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건전한 영업관행 확립을 주문하기도 했다. 사실상 은행들에 가산금리를 과도하게 올리지 말것을 경고한 것이다.
◇ 가산금리 고공행진에 시중금리 상승까지
실제로 각 은행이 은행연합회에 공시한 분할상환방식 주택담보대출(10년 이상)의 가산금리를 살펴보면 지난 10월 적용한 가산금리는 작년 연말, 올초보다 큰 폭으로 올랐다.
올해 6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25%로 인하한 직후에도 여전히 오름세다.
특히 국민은행의 경우 10월 평균 대출금리가 3%를 기록하면서 기준금리(1.47%)보다 가산금리(1.53%)가 더 높아지는 역전현상이 나타났다.
▲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
지난 7월과 비교해 평균 대출금리보다 가산금리가 더 많이 오른 은행들도 나왔다. 국민은행의 경우 평균 대출금리는 7월 2.82%에서 10월 3.0%로 0.18%포인트 오른 데 비해 가산금리는 0.28%포인트나 올랐다.
같은 기간 우리은행도 평균 대출금리는 0.23%포인트 올랐지만 가산금리는 0.29%포인트 올렸다.
가뜩이나 최근 고정금리형 주택담보대출의 기준이 되는 5년물 은행채 등 장기채권의 금리가 상승하면서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고공행진하는 추세다.
이 때문에 은행별 평균금리는 3%대로 올라섰고, 5%에 육박하는 금리도 나왔다. 미국발 트럼플레이션의 영향이다.
미국이 12월 기준금리 인상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시차를 두긴 하겠지만, 국내 기준금리 인상 역시 불가피할 전망이다. 은행 대출금리 상승 요인이 되는 세가지 악재를 모두 만난 셈이다.
◇ 부추길 땐 언제고, 상황 바뀌자 '돌변'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올린 것은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속도조절을 주문하고 나서면서 본격화했다.
압박 강도가 점차 세지는 상황에서,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가계대출을 잡기 위해선 은행들은 가격에 해당하는 금리를 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은행 한 관계자는 "대출을 받을 모든 조건이 다 되는데 창구에서 거절할 명분이 없다"며 "대출금리를 올려 다른 은행으로 유도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이 은행은 가산금리를 큰 폭으로 올린 이후 대출 증가세 역시 크게 꺾였다.
이달 들어서 부동산 시장이 주춤하긴하지만 워낙에 초저금리 상황이 지속하고 있는 데다 그동안의 정부 정책도 '대출을 받아 집을 사라'는 식이나 다름없었다.
모든 규제가 풀린 상황에서 당국 입장에선 대출 증가세를 막아야겠고, 결국 은행의 가산금리 인상을 간접적으로 부추긴 꼴이 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젠 높은 금리 수준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금융당국도 돌변했다"면서 "이젠 은행들에 '왜 이렇게 가산금리를 올렸냐'고 압박하는 모양새가 됐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