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정상화 방안을 두고 국민연금 등 회사채 투자자들과 대주주 산업은행의 갈등이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다. 양측 모두 양보할 수 없다는 견해를 굽히지 않으면서 '최후의 선택'인 법정관리로 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분위기다. 국민연금이 결국 산업은행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면 오는 21일 빠른 법정관리 제도인 'P 플랜(프리패키지드 플랜)'에 돌입한다.
산업은행은 10일 서울 여의도 본점에서 대우조선 회사채 보유 기관투자자 32곳으로 대상으로 채무조정안에 대한 설명회를 열었다. 산업은행은 설명회에서 채무재조정 방안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일각에서 제기하는 오해에 대해 해명했다고 밝혔다. 이번 채무조정 방안이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에만 유리하게 짜여 있다는 지적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전했다는 의미다.
설명회의 '모양새'는 썩 좋지 않았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최종구 수출입은행, 정성립 대우조선 사장이 직접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한 터라 기관투자자 임원급이 참여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대부분 팀장급 이하 실무 직원만 자리를 채웠다. 특히 채무 재조정 추진의 열쇠를 쥐고 있는 국민연금에서조차 강면욱 최고투자책임자(CIO)가 아닌 실무진이 참석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여론의 부담이 됐던 게 아닌가 싶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산업은행은 설명회 이후 기자들을 상대로 브리핑도 열었다. 정용석 부행장은 이 자리에서 작심한 듯 더는 양보할 수 없다는 태도를 분명히 밝혔다. 정 부행장은 "속된 표현으로 산업은행도 수출입은행도 사채권자와 같은 채권자들"이라며 "산업은행이 지원을 하면 혈세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부담을) 전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앞서 금융위원회와 산업은행이 내놓은 채무 조정 방안은 산업은행 등이 2조 9000억원을 추가 지원하는 전제 조건으로 국민연금 등 회사채 채권자들이 50%의 출자 전환과 나머지 50%의 만기 3년 연장 등으로 고통 분담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오는 21일 돌아오는 국민연금 등의 대우조선 만기 회사채를 일단 상환하고 이후 채무조정안을 다시 논의하자는 견해를 내놨다. 이와 함께 산업은행의 추가 고통 부담 차원에서 추가 감자를 요구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 '오리무중' 대우조선‥속타는 정부·답 없는 국민연금
정 부행장은 이에 대해 "21일 만기 회사채는 상환이 가능하지도 않고 가능해질 수도 없다"며 거부의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만기를 연장한 회사채의 상환을 보증해 달라는 국민연금의 요구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 "10일 오전 (국민연금에) 공문을 보내 불가 입장을 밝혔다"며 "앞으로 언제라도 만나서 해결할 여지 있겠지만, 본인들의 회수율 높이기 위해서 또 다른 주장을 하면 받아들일 여지는 없다"고 못 박았다.
산업은행은 그러면서 국민연금이 결국 채무조정안을 거부할 경우 오는 21일 P플랜에 돌입할 수 없다며 사채권자들을 압박했다. 대우조선해양 사채권자 집회는 17일과 18일에 열린다. 국민연금은 이에 앞서 11~12일 중 투자위원회를 열어 회사채 채무조정안에 대한 최종 입장을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행사하면 통과가 어려워지고, 대우조선은 곧장 P플랜에 돌입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