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입김이 센 은행들조차 블라인드 채용 확대에 부정적이다. 현실적으로 수천명의 지원자를 스펙 없이 일일이 평가하기 어려운데다 출신 대학을 알 수 없어 지역 인재를 안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을 못 봐 서비스직에 맞는 인상을 평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 수천명 평가 막막…지방대생에도 도움 안돼
은행들은 블라인드 방식으로 면접을 보고 있다. 스펙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 지원자의 실무능력을 보기 위해서다. 블라인드 채용으로 실력 있는 인재를 뽑았다고 평가하면서도 정부 방침대로 지원 단계까지 확대하는 건 꺼리고 있다.
고액 연봉인 은행권엔 구직자가 너무 많이 몰려 서류전형에서 인원을 거를 수밖에 없다. 대형은행 관계자는 "100명을 뽑으면 1만명 넘게 지원해 지금도 자기소개서를 읽는 데만 한달 넘게 걸린다"면서 "스펙으로 평가를 못 하면 일일이 면접을 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출신 학교를 가리는 게 오히려 지방대 출신에게 불리하다는 지적도 있다. 또 다른 대형은행 관계자는 "학교를 가리면 지역 인재를 안배할 수 없고 무한 경쟁에 들어간다"면서 "지역 지원자보다 사회적, 문화적 경험을 많이 쌓은 서울 지원자들에게 훨씬 유리해진다"고 말했다. 명문대를 나오지 않은 사람에게도 공평하게 기회를 주자는 당초 취지에서 멀어진다는 얘기다.
지역별 인재 선발이 막히면서 직원 관리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이 관계자는 "지역을 고려하지 못해 합격자가 특정 지역에 편중될 수 있다"면서 "정원상 불가피하게 연고가 없는 지역으로 발령받은 직원이 회사를 금방 그만 두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 꼬집었다.
◇ '문신 한 은행원 올라' 이력서 사진 갑론을박
이력서에 사진을 붙이지 못하도록 한 방안에 대해선 반응이 엇갈린다. 일각에선 외모와 업무능력의 상관관계가 크지 않은데다 면접 때 얼굴을 볼 수 있으니 정부 방침을 따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은행원은 서비스직인 만큼 사진으로 인상을 평가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면 영업을 하는 은행원의 인상을 보지 말자는 건 아나운서를 카메라 테스트 없이 뽑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과도한 문신, 피어싱 등으로 서비스직에 걸맞지 않은 외모인 지원자를 가릴 수 없다는 우려다.
채용 담당자의 부담도 커진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원자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으니 면접에서 대답을 잘해도 누구였는지 생각이 안 난다"면서 "이름까지 가려 번호로만 지원자를 기억하는데 사진도 없으면 평가가 더 어렵다"고 호소했다.
은행들이 이미 블라인드 채용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 방침을 무리하게 따르는 게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원자의 정보를 과도하게 가리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으니 민간 부문까지 블라인드 채용을 확대할 때 신중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