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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첨병들]음지의 암호화폐, 양지로 끌어내다

  • 2020.08.25(화) 09:49

주기영 팀블랙버드 대표이사 인터뷰
암호화폐 정보부터 'n번방' 추적까지

금융의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핀테크·빅테크 업체의 진출이 가시화하면서 기존에는 없었던 서비스가 대거 출시되고 있다. 비즈니스워치가 금융권 변화의 첨병역할을 하는 곳을 찾아 나섰다. [편집자주]

팀블랙버드는 암호화폐 분석과 추적을 전문으로 하는 스타트업이다. 현재 10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모두 20대다.

지난해 5월 아직 소년티가 남아있는 스물여덟의 앳된 청년이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방문지는 세계 최대 블록체인·암호화폐 컨퍼런스가 열린 힐튼 미드타운 호텔. 내로라 하는 개발자, 투자자, 기업인들의 강연을 들으려는 목적만은 아니었다.

"우리가 개발한 솔루션이 시장에서 먹힐지 궁금했습니다. 강연을 끝내고 내려오는 연사들에게 달려가 5분만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면 '딱 30초 줄테니 말해보라'고 합니다. 마음에 들면 그쪽에서 명함을 줘요. 아, 이 사람들이 관심이 있구나, 제품으로 내놔도 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주기영 팀블랙버드 대표는 암호화폐 분석서비스인 '크립토퀀트' 개발 일화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크립토퀀트는 전세계 33개 거래소와 채굴자, 대량 보유자의 암호화폐 동향을 파악해 투자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해주는 프로그램이다.

비슷한 서비스를 하는 미국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와 영국 엘립틱(Elliptic) 등이 수동으로 계좌를 분류해 정보를 제공하는 것과 달리 팀블랙버드는 기계가 자기학습을 통해 일을 처리하는 '머신러닝'을 활용해 암호화폐를 추적한다. 추적 범위와 세분화, 정확도 등에서 앞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 대표는 비트코인을 취급하는 선물옵션 거래소가 등장하고 암호화폐가 금융자산으로 거래될 만큼 글로벌 시장이 커졌지만 제대로 된 정보를 구하기 어려운 점에 착안해 개발을 시작했다. 그가 암호화폐에 눈을 뜬 건 2017년 초다. 캐나다에 교환학생으로 갔을 때 접했다고 한다.

"투자로 시작했지만 나중엔 블록체인 기술과 철학에 끌렸습니다. 비트코인이 달러 중심의 패권을 깨고 전세계 누구나 믿고 사용할 수 있는 글로벌 통화를 만들겠다는 거잖아요. 여기에서 무언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2018년 6월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같은 과 후배인 장병국(공동창업자·전략기획담당)과 방 두 개짜리 오피스텔을 얻어 사무실을 차렸다. 지금은 전체 식구가 10명으로 늘었다. 대개는 포항공대와 카이스트 등에서 블록체인이나 인공지능을 연구했거나 LG전자·넷마블 같은 대기업에서 일하다 주 대표의 권유로 둥지를 튼 이들이다. 모두 20대다.

"삼고초려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팀원들을 데려오려고 십고초려는 했던 것 같습니다. 당장의 수입만 생각하면 절대 못오죠. 톱니바퀴같은 생활에서 벗어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주 대표는 암호화폐를 음지에서 양지로 옮겨놓고 싶어했다. 투기와 돈세탁 등 부정적 이미지를 걷어내지 않고선 암호화폐, 더 나아가 블록체인 기술이 광범위하게 확산하기 어렵다고 봤다.

숫자와 알파벳의 조합으로 이뤄진 지갑(주소)으로 암호화폐가 오고가는 지금의 구조로는 제도권 금융기관의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다. 테러나 마약 등에 연루된 자금을 취급했다는 게 밝혀지만 해당 금융기관이 국제적 제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 대표는 "제도권 금융기관은 실명을 강조하는데 비해 암호화폐는 익명성이 특징"이라며 "그 간격을 좁혀 '가명'이라는 단계까지는 끌어내고 싶다"고 했다. 익명성을 보장하되 자금거래의 투명성을 더하는 단계까지는 가야한다는 얘기다.

그 일환으로 주목하는 분야가 암호화폐 추적이다. 팀블랙버드는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n번방' 사건이 터졌을 때 경찰을 도와 암호화폐를 추적해 성과를 냈다. 그는 "우리 회사의 존재이유가 사라질 때까지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의 생태계를 해치는 범죄를 뿌리뽑고 싶다"고 했다.

현재 팀블랙버드는 우리금융지주의 스타트업 육성프로그램인 '디노랩'의 지원을 받고 있다. 사업연계·자금지원·해외진출 등의 기회가 제공된다. 우리금융은 특히 블록체인을 활용한 보안분야 등에서 팀블랙버드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다음은 주 대표와 나눈 주요 대화내용이다.

주기영 대표는 "블록체인의 폭넓은 확산을 위해 암호화폐의 부정적 이미지를 걷어내고 싶다"고 했다.

- 회사 이름과 홈페이지 주소가 다르다 ※팀블랙버드는 홈페이지 주소로 '크립토퀀트(cryptoquant.com)'를 쓰고 있다.

▲ 아직까지 국내에서 암호화폐라고 하면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크립토(crypto)'라는 단어만 들어가도 정부 지원사업이나 은행계좌 개설에 어려움이 있어 법인명을 팀블랙버드로 정했다.

- 독특한 사명인데 어떤 의미인가

▲ 역사상 가장 빠른 비행기(전략 정찰기)인 'SR-71'의 별명이 블랙버드다.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업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담았다.

- 우선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 암호화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걷어내고 싶다. 국내에선 어둡고 무언가 미스터리해서 다가가선 안될 영역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해외은행들은 암호화폐에 대한 수탁업무를 시작했다. 곧 금과 같은 투자자산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 정부도 내년부터 암호화폐에 세금을 매길 예정이다.

암호화폐를 제도권으로 편입하려면 투자자의 거래내역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머신러닝 분석을 통해 암호화폐의 거래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암호화폐 시장이 투기적이고 불법자금거래의 통로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작업이다.

- 구체적인 사업내용을 설명해달라

▲ 크게 두 가지다. 암호화폐 투자자들에게 데이터를 제공하고 다른 한편으로 공공기관 등의 암호화폐 추적을 뒷받침하는 일이다.

투자정보의 경우 주식은 투자주체와 거래량 등 각종 정보가 비교적 풍부하게 제공되지만 암호화폐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전세계 33개 암호화폐 거래소와 채굴자, 고래(암호화폐 대량 보유자) 등의 거래흐름을 바탕으로 정보를 생산한다.

가령 거래소에 예치된 비트코인 개수가 늘어나면 앞으로 매물로 나올 비트코인이 많다는 걸 뜻한다. 채굴자나 고래가 시장에 팔려고 비트코인을 거래소로 옮겨놓은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매수나 매도 징후를 미리 포착해 정보를 주는 게 사업모델 중 하나다. 현재 미국의 암호화폐 헤지펀드 두 곳에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올해 안에 서른 곳 이상으로 제공처를 늘릴 계획이다.

- 그렇게 제공한 정보가 투자자에게 유용했나

▲ 올해 3월 중순 거래소에 유입된 비트코인이 급격히 늘어난 걸 보고 매도 시그널을 줬다. 실제 사나흘 뒤 비트코인 가격이 50% 이상 급락했다. 최근 5개월간 급등락에서 예측이 다섯 차례 적중했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라고 생각한다.

팀블랙버드는 암호화폐 동향을 주식차트처럼 제공한다. 왼쪽부터 비트코인의 거래소 입금량, 거래소 잔고, 출금량을 나타낸다.

- 암호화폐 추적은 뭔가

▲ 경찰이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서 암호화폐 입금자를 찾아낼 때 힘을 보탰다. 어느 거래소를 통해 박사방 조주빈의 계좌로 돈을 보냈는지를 밝혀내는 작업이었다. 또 조주빈의 암호화폐 수익을 추정하려면 돈을 어디로 보내고, 어디에서 현금화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불법자금세탁을 하는 곳은 암호화폐를 여러 지갑으로 나눠 누가 돈을 주고 받았는지 모르게 하는 수법을 쓴다. 우리는 9번을 타고 들어가 계좌를 찾아냈다. 이만한 컴퓨팅 파워(수학적 처리능력)와 알고리즘을 갖춘 곳은 드물다.

- 이를 사업화할 수 있다는 건가

▲ 현재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와 같은 외국기업 솔루션이 암호화폐 추적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계좌식별을 수동으로 하기 때문에 추적가능한 암호화폐 비율이 30% 정도에 그친다. 우리는 머신러닝을 이용해 자동분류를 한다. 커버리지와 속도, 정확도가 월등히 높다. 검찰·경찰·국세청·금융감독원 등이 고객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외산 솔루션이 추적하지 못하는 암호화폐 주소를 추적해 브랜드 입지를 돈독히 할 예정이다.

- 금융권과 연계도 가능한가

▲ 암호화폐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블록체인은 계좌의 거래이력을 수많은 서버에 저장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한 게 핵심이다. 장부를 조작하려면 전세계에 있는 수십, 수백만대의 서버를 한번에 해킹해야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난 2009년 나온 비트코인이 지금껏 단 한 번도 해킹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블록체인 기술의 우수성을 입증한 것이라 생각한다. 반면 은행은 내부 서버를 지키려고 막대한 비용을 지출한다. 그럼에도 불안해한다.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장부조작이 불가능하다. 펀드 양수도, 부동산 계약 등 모든 금융거래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 국내에선 지난 3월 특금법(특정 금융 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암호화폐의 제도권 편입이 가능해졌다. 금융권과 협업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

- 앞으로 목표는

▲ 당장은 생존이다. 올해 말 손익분기점에 다다를 것으로 생각한다. 이쪽 분야도 입소문에 영향을 받는다. 다행히 크립토퀀트가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방문자가 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블록체인 분야에서 표준데이터를 제공하는 회사로 키우고 싶다. 암호화폐계의 톰슨로이터나 블룸버그 같은 회사라고 할까.

무디스나 S&P의 역할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익명의 지갑이 있을 때 이 지갑이 어느 정도의 리스크를 가지고 있고, 이 지갑과 거래한 이력이 있는 사람은 어느 정도의 자금세탁 리스크가 있는지 등을 평가하고 데이터를 제공해주는 식이다. 확장가능성은 폭넓게 열려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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