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3분기까지 생명보험사들의 보장성 보험 영업실적이 지난해 같은 보다 10%가량 줄었다. 델타 및 오미크론 변이 발생으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갈수록 악화하면서 대면영업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기 상품인 외화보험, 무·저해지 환급형 보험상품 판매도 사실상 단종 수순을 밟고 있다. 오는 2023년 IFRS17(새 국제회계기준)과 K-ICS(신지급여력제도) 도입에 대비해 암보험, 종신보험 등 보장성 보험 판매를 키우려던 생보사들의 계획이 완전히 어긋난 결과다.
1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생명보험사 일반계정 기준 신규 계약액은 214조840억원으로 전년동기(229조75억원) 대비 6.5% 감소했다. 신규 계약 가운데 보장성 보험 매출은 183조4260억원으로 1년 전보다 20조2449억원(9.9%) 줄어들었다.
업계 1위 삼성생명의 올 3분기 누적 수입보험료는 5조540억원으로 전년동기(5조4120억원)대비 6.6% 감소했다. 신규 계약 체결에 따른 보험료를 1년 단위로 환산한 '신계약 연납화보험료(APE)'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1% 쪼그라든 665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보장성보험 APE는 작년 1~3분기 4890억원에서 올해 3분기 누적 4510억원으로 7.8% 줄었다.
보장성보험 APE 감소폭이 제일 큰 건 동양생명이다. 동양생명의 올 1~3분기 보장성 APE는 2907억원으로 전년동기(3801억원)대비 23.5% 급감했다. 이 기간 동양생명의 신계약 APE와 수입보험료는 4868억원, 3조6447억원으로 각각 32.8%, 7.6% 내려앉았다.
신한라이프의 보장성 APE는 지난해 1~3분기 5328억원에서 올해 1~3분기 4348억원으로 18.4% 줄었고, 같은 기간 한화생명도 보장성 APE가 10.5% 감소했다. 미래에셋생명도 소폭(4%)이지만 감소세를 나타냈다.
외화보험, 무·저해지보험 단종 수순…각종 규제 탓
보험영업 실적의 가늠자 역할을 하는 APE가 보장성 상품 위주로 줄어든 원인으로 생보업계는 외화 종신보험과 무·저해지 보험 판매 규제 강화를 꼽고 있다.
먼저 이달 말 개정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외화보험은 외화로 보험료를 내고, 보험금도 외화로 받는 상품을 말한다. 외화보험 가운데 달러 상품 비중이 96%에 달하기 때문에 흔히 달러보험으로 불린다. 다만 달러 가치가 급락하면 수령 시점 보험금이 크게 줄어든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은 판매 제한을 검토했다. 이에 일부 보험사는 외화보험 시장 진출을 포기하기도 했다.
금융당국은 지난 1월부터 무·저해지보험에 대한 제도 개편에도 착수했다. 무·저해지보험은 표준형 보험과 동일한 보장을 제공하면서 보험료는 10~45%가량 저렴한 상품을 뜻한다.▷관련기사: 해지환급금 지나치게 적은 무해지보험 퇴출 수순(7월16일)
보험사들은 종신보험, 치매보험, 암보험, 어린이보험 등 보장성 보험을 무·저해지 보험으로 팔면서 저축 목적의 보험인 것처럼 팔아왔다. 표준형 상품 대비 적은 보험료를 내고 같은 만기 때는 표준형 보험과 같거나 더 많은 환급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점을 판촉 전략으로 삼은 것이다.
문제는 보험료 납입기간에 해약하면 무해지보험은 환급금이 없고, 저해지보험은 표준형보험 대비 50% 이하로 환급된다는 점이다.
저축성 보험으로 오인해 가입했다가 중도 해지 때 환급금을 돌려받지 못한 소비자 민원이 늘자 금융당국은 무·저해지 보험의 환급률이 표준형 보험의 환급률을 넘지 못하도록 상품구조를 변경했다. 그 결과 만기 시에도 무·저해지 보험의 환급금이 대폭 줄어들면서 상품 매력도가 크게 떨어졌다고 보험업계는 보고 있다.
이에 더해 무·저해지보험의 가장 큰 장점인 싼 보험료도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지난 7월 금융당국 지침으로 전 보험사가 무해지환급금 보험과 환급률이 10% 이하인 저해지환급금 보험의 판매를 중단했다. 내년 1분기에는 환급률이 50%를 넘지 않는 상품도 판매가 막힐 전망이다.▷관련기사: 10% 환급형 무해지보험 퇴출…50%도 개정 수순(8월13일)
2015년 7월부터 판매가 시작된 무·저해지보험은 연간 400만건 이상 팔리는 인기상품이었다. 보장성 APE가 감소하는 현 추세를 비춰보면 상품 개정 때마다 시장 위축을 경고한 보험업계의 우려가 현실이 된 셈이다. 앞서 보험연구원은 내년 생명보험 수입보험료 규모가 1.7%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업계 "보장성 보험 판매 늘려야 하는데…"
그간 생보사들은 저축성 보험을 줄이고 보장성 보험 판매를 늘리기 위한 판매전략을 펼쳐왔다. IFRS17이 도입되면 부채로 잡히는 저축성 보험보다 온전히 매출로 인식되는 보장성 보험이 자본확충 측면에서 부담이 덜해서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판매 규제가 계속되면서 보장성 보험을 확대하려는 생보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생보업계에서 보장성 보험 판매 감소세가 광범위하기 나타나자 일부 생보사의 한 자릿수 비율의 판매 감소는 '선방한 성과'라는 평가마저 나오고 있다. 김도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보장성 보험 판매 부진은 종신보험 판매가 어려워지는 환경에서 생명·손해보험 공통영역인 제3보험에서의 경쟁 심화, 저단가 상품 선호 현상 등이 주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