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실손의료보험료가 평균 14.2% 인상된데 이어 보험사들이 판매하는 종신보험과 암·뇌·심장질환 등 건강보험, 어린이보험 등 보장성 상품의 보험료가 최대 20%가량 증가할 전망이다.
중도에 해지하면 돌려받는 환급금이 일반 보험상품보다 적거나 아예 없는 대신 보험료가 20~30%가량 저렴해 인기를 끌었던 무(無)·저(低)해지보험의 보험료가 현실화되서다. 예정이율(보험료를 결정하는 이율) 변수도 남아있어 보험료 인상 폭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대부분 보험사가 다음달 1일부터 보험료를 대폭 인상할 전망이다. 보험사별로 상품 종류, 해지환급금 수준을 고려한 합리적인 예정해지율을 산출해 무·저해지보험에 적용하기 때문이다. ▷관련기사:[인사이드 스토리]무·저해지보험 퇴출과 보험사들의 미소(2021.11.8)
인상된 보험료는 새로 보험에 가입하는 소비자에게 적용된다.
보통 무·저해지보험은 대체로 종신보험이나 건강보험, 어린이보험 등 보장성보험과 연계해 파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기존에 팔던 일반 종신보험에 무·저해지보험의 예정해지율을 추가해 보험료가 싼 무·저해지 종신보험으로 판매하는 식이다.
보통 보험료를 산출할 때는 △미래에 사고가 얼마나 발생해 보험금이 얼마나 지급될지(예정위험률) △소비자에게 거둔 보험료로 운용한 수익(이자)율이 어느 정도인지(예정이율) △보험상품을 판 설계사에게 줄 수수료나 광고비 등 비용이 얼마나 들지(예정사업비율)를 계산한다.
무·저해지보험은 여기에 △보험 소비자가 보험 가입 후 중간에 얼마나 해지할지(예정해지율)를 계산식에 추가한다. 그동안 보험사들은 소비자의 해지율이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무·저해지보험 상품을 팔았다. 이를 통해 아낀 환급금을 재원으로 다시 저렴한 보험료를 제시했다.
예정해지율 합리화…보험료 최대 20% ↑
그런데 보험사들의 가격경쟁이 심해지면서 더 싼 보험료를 산출하기 위해 예정해지율을 너무 높인 게 문제가 됐다. 해지하는 소비자가 많다는 가정으로 상품을 만들면 보험료가 더 싸지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실제 해지율이 이에 못 미치면서 보험금 지급이 늘면 보험사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해지환급금이 낮으면 해지율을 더 낮게 적용하고, 보험료 납입 기간에 따라 해지율을 낮추는 등의 '해지율 산출 모범규준'을 마련했다. 전면 시행일은 4월 1일부터다. 모범규준에 따르면 예정해지율이 기존대비 낮게 책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보험료가 비싸진다는 얘기다.
A보험사의 경우 일반 보험상품의 보험료가 100원이라고 가정할 때 4월 이전에 70원 수준이었던 무·저해지 종신보험이 4월 이후로는 80~85원 수준까지 오를 것으로 알려졌다. 암·뇌·심장질환 등 3대 질병보험으로 대표되는 건강보험은 최대 90원까지 보험료가 오를 전망이다. 다시 말해 사망보험은 최대 10~15%, 건강보험은 최대 20% 보험료 인상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생명·삼성화재 등 보수적인 상품 운용을 기본으로 하는 회사들은 보험료 상승폭이 낮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대부분 보험사에서 큰폭의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예정이율 변경 시즌…보험료 또 오를까
보험사들이 4월 상품개정을 앞두고 예정이율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보험사는 상품을 설계하고 고객이 내야 할 보험료를 산출하기 위해 예정이율을 책정한다. 예정이율이 높아지면 보험료가 싸지고, 반대로 낮아지면 보험료가 오른다. 통상 예정이율을 0.25%포인트 내리면 보험료가 약 5∼10% 오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저해지보험 보험료 인상에 예정이율 인하까지 더해지면 20% 이상 보험료가 뛸 수 있다. 소비자 부담이 크게 불어날 것이란 관측이 벌써부터 나온다. 보험사들 입장에서는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3분기부터 시장금리가 오름세로 돌아선 가운데, 국내외 기준금리 인상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여 보험사들이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보험사가 많이 투자하는 장기채권 시장금리를 보면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2020년 말 1.71%에서 지난해 말 2.25%로 상승했고 올해 2월말엔 2.68%까지 올라왔다.
대형 보험사 한 관계자는 "예정이율은 향후 금리인상 기조 등 장기적인 트렌드를 반영해야 한다"며 "내부에서 동결이나 일부 상품의 소폭 인하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