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세가 반세기 넘도록 단순히 배기량으로만 과세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동차 시장과 기술의 변화나 흐름을 반영하려는 움직임은 없었을까.
사실 정부도 자동차세 구조를 바꾸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공개적으로 연구용역을 맡기고 공청회도 열었다. 지난 2010년이다.
전세계적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화두였고, 우리 정부에서도 '녹색성장' 등 그린 이코노미가 활발하게 논의되던 때다.
2010년 5월, 행정안전부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의뢰해 '친환경 자동차세제 개편방안' 용역보고서를 만들어 냈다. 연구용역의 핵심은 '친환경'이었다.
현행 단순 배기량 기준으로는 유엔 기후변화협약에서 정한 세계적인 친환경 의제에 부합하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배기량에 따라 일정 세율로 부과되는 자동차세 구조를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이나 연비 기준으로 바꾸자는 것이 개편방향이었다.
당시 연구를 맡은 조세재정연구원 김승래 박사(한림대 교수)는 평균 CO2 배출량이나 연비를 기준으로 세액구간을 11개로 세분화해 구간별로 세액을 차등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개정안은 탄소배출량과 연비측정기술의 접목을 고려해 신차부터 적용하기로 했으며, 단기간 세부담이 늘어나지 않도록 세액구간은 2년마다 4개에서 7개, 11개로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내용도 담았다.
현재 논란이 큰 전기차에 대한 과세기준도 제시됐다.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 가격과 충전소 설치 등 인프라 구축에 따른 비용과 시간을 고려해 초기에는 경차 수준의 세율을 적용하되, 2015년 이후에는 전력사용량에 따른 과세체계를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첨예했던 한미FTA 자동차 협상과 무산된 개편안
하지만 정부 개편안은 실제 세법개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통상 정부는 국책연구원인 조세연구원 용역결과를 기반으로 공청회를 열고, 그 해 국회 입법을 통해 세법개정을 추진하지만, 자동차세제 개편은 공청회와 연구로만 끝났다.
선진적인 개편안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자동차 시장에 대한 영향이 크고, 일부 세부담이 크게 늘어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큰 걸림돌이 된 것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었다.
2010년에는 한미FTA 협정이 마무리 단계였다. 2007년 협상 타결 이후 국회 비준만 남았지만, 자동차 부문의 경우 추가협상까지 이어질 정도로 양국이 끝까지 첨예하게 대립했다.
2011년 한국과 미국 양국 의회를 최종 통과한 한미FTA 비준동의안과 이행법안을 보면, 우리정부 자동차세 개편이 무산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한미FTA 자동차 협상 결과에 따라 자동차 취득시에 발생하는 특별소비세(현 개별소비세) 과세구간을 3단계에서 2단계로, 자동차 보유시 발생하는 자동차세 과세구간을 5단계에서 3단계로 단순화하기로 했다.
미국은 한국의 배기량 기준 자동차세가 대형차 위주의 자국산 자동차의 수입을 막는 차별적 규정이라고 주장했고, 우리측이 이를 수용하면서 달라진 규정이다.
특히 미국은 우리나라의 자동차세 세제개편을 제한하는 내용도 합의문에 밀어 넣었다.
한미FTA 자동차 협정에는 '대한민국이 차종별 세율 차이를 확대하기 위해 배기량 기준에 기초한 새로운 조세를 채택하거나 기존의 조세를 수정할 수 없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는 결과적으로 우리 입장에서는 국가의 조세제도를 바꾸는 데 제한을 준 독소조항이 됐다.
꼬리표가 된 한미FTA … 몸 사리는 정부
그러나 한미FTA 비준 이후에도 자동차세제를 바꿔보자는 의견들은 다양하게 제시됐다. 주로 배기량 기준의 자동차세 과세기준을 차량 가액기준으로 바꾸자는 내용이다.
2015년 10월, 심재철 의원은 배기량이 아닌 자동차 가액을 기준으로 자동차세를 과세하는 내용으로 지방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또 최근에는 2021년 3월에 이용우 의원이 자동차세를 배기량이 아닌 가액기준으로 부과하고 탄소배출량에 따라 패널티를 주는 지방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두 개정안 모두 기술발전에 따른 자동차 성능 개선을 반영하고, 값비싼 차량이 저가 차량보다 자동차세를 적게 내는 조세부담 역진성을 조정하자는 취지를 담았다.
아울러 개정안은 전기차 등 친환경 차량에 대해서는 세액의 50%까지 감면할 수 있는 세제혜택을 부여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일정 기준을 초과하는 경우 세액을 가산하는 내용까지 더했다.
차량 가액기준으로 조세역진성을 보완하면서 환경영향에 대한 기준까지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개정안은 매번 국회에 계류됐다. 여러가지 논의가 있었지만, 가장 큰 반대요인은 역시 한미FTA였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해당 지방세법 개정안의 검토보고서에서 현행 배기량 과세기준의 조세역진성을 인정하면서도 "한미FTA협정 내용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행안위는 특히 법안 심사자료를 통해 "자동차세 부과기준을 변경하는 것은 한미FTA 협정에 위반될 소지가 있어,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강조했다. 상임위 법안검토자료는 의원들이 법안심의를 할 때 기본자료로 활용한다.
정부 역시 한미FTA 위반소지를 가장 우선 순위에 놓았다.
행정안전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당시 지방세법 개정안에 대한 관련부처 의견으로 "전체 세부담과 CO2 배출량의 과표적합성, 자동차 산업과 지방세수입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면서도 특히 "한미FTA에 위배될 수 있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③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