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와 경기 악화가 길어지면서 카드 빚을 돌려막는 금융소비자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카드 결제액을 일부만 갚고 뒤로 미루는 리볼빙(결제액 이월 약정)과 기존 대출을 갚기 위해 다시 대출을 받는 대환대출 잔액이 올해 들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이다.
건전성과 조달비용에 부담을 느낀 저축은행들과 대부업체들이 대출 문을 걸어 잠그면서 카드사로 대출 수요가 몰리고 있는 것도 배경으로 지목된다. 이에 금융당국은 소비자 주의보를 내리는 등 관리 감독을 더욱 철저히 해나갈 예정이다.
27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 11월 말 8개 전업 카드사(신한·KB국민·삼성·롯데·현대·하나·우리·BC카드)의 리볼빙 잔액은 전월 말(7조4697억원)보다 418억원 불어난 7조511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관련 공시 집계 이래 역대 최대치다.
리볼빙은 신용카드 대금 일부만 결제하면 나머지는 다음 달로 이월되는 결제 방식이다. 이월된 잔여 결제금에는 고율의 이자가 부과된다. 리볼빙 서비스를 이용하면 카드 대금을 한 번에 결제해야 하는 부담은 적어지지만 반대로 높은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1월 말 기준 리볼빙 이용 수수료율(이자율) 평균은 16.7%에 달한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는 것이다.
11월 말 기준 카드사별 리볼빙 평균 금리는 롯데카드가 연 17.84%로 가장 높았다. 이어 KB국민카드(17.50%), 신한카드(16.75%), 현대카드(16.69%), 하나카드(16.46%), 비씨카드(16.17%), 우리카드(16.00%), 삼성카드(15.67%) 순이었다. 대부분의 카드사 리볼빙 금리가 16% 수준에 형성돼 있는 것이다.
리볼빙 이용 시 이월된 잔여 결제금뿐 아니라 다달이 추가되는 카드값의 일부도 계속 리볼빙으로 이월(신규대출)된다. 따라서 향후 상환해야 할 원금 및 리볼빙 이자율 부담이 급격히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관련기사: '방심했다간 이월 눈덩이'…카드 리볼빙 손보는 이유(2022년 8월24일)
예를 들어 약정결제비율 30%, 카드 사용액이 매달 300만원인 경우, 이월되는 채무잔액은 첫째 달 210만원에서 둘째 달은 357만원으로 셋째 달은 460만원으로 증가하는 것이다.
리볼빙 잔액뿐 아니라 지난달 말 카드론 잔액도 전달(35조8596억원)보다 1013억원 증가한 35조9609억원을 기록했다. 11월 8개 전업카드사 평균 카드론 금리가 연 14.42%로 9월 말(13.45%) 대비 1%포인트 가까이 상승했음에도 카드론 잔액이 두 달 연속 증가세를 나타냈다.
이 중 카드론을 쓴 사람들이 기존이 빌린 카드 빚이 밀려 다시 대출받는 카드론 대환대출 잔액도 지난달 말 1조5960억원으로 한 달 새 1057억원 불어났다. 기존 카드론보다 높은 금리를 감수해야 함에도 대환이 늘어난다는 건 그만큼 서민 경제가 팍팍해졌다는 의미다.
카드사 대출이 급증한 건 다른 2금융권인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등이 대출창구 문을 좁히거나 닫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들은 연체율 상승과 조달 비용 상승 등으로 인해 신용 대출 심사를 깐깐하게 하고 있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카드론 대환대출이나 리볼빙 등 이용 시 추후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는 만큼 소비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며 "카드론 대환대출이나 리볼빙의 경우 중·저신용자 위주로 대출 수요가 많은데, 금리가 높고 기간도 상환해야 하는 기간도 짧기 때문에 카드사들의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에서도 카드사들의 대출 증가세에 대해서 예의주시하고 있다. 서민들이 리볼빙과 카드론 대환대출 등으로 계속 '빚 돌려막기'를 할 경우, 가계 개인뿐만 아니라 시장 전체에 막대한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최근 리볼빙과 관련해 소비자 주의보를 내리며 "무분별한 리볼빙 사용은 급격한 빚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관련기사: 리볼빙 함부로 이용했다간 빚 폭탄…금감원 "16.7% 고금리"(12월11일)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 카드사들에 리볼빙이나 카드론 증가세와 관련해서 관리를 강화해달라고 요청했다"며 "금융소비자들에게도 수수료 부담 증가 등에 대해서 유의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안내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