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올해로 창립 55돌. 세월이 제법 흘렀다. 시간이 흐르고 환경도 바뀌고 사람도 변하는 게 세월이다. 29살의 젊은 나이에 가업을 물려받은 2대 경영자는 어느덧 3세 대(代)물림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사실 준비는 다 돼 있다. 단 한 번으로 족했다. 처가에서 경영권을 도로 가져올 무렵, 황태자를 지배구조의 꼭짓점에 올려 가업승계의 한 축 지분승계를 사실상 매듭지었다. 후계자의 나이 24살 때다. 중견 종합제지업체 깨끗한나라 얘기다.
29살에 대권 물려받은 2대 경영자
깨끗한나라의 창업주 고(故) 최화식 회장은 1954년 5월 지류(紙類) 수입업체 국화(國花)산업을 창업, 제지업계에 발을 디뎠다. 한국제지 초대 사장을 거쳐 한 때 일국증권을 차려 외도하기도 했지만 3년 만에 제지업으로 컴백했다.
창업주가 깨끗한나라의 전신(前身) ‘대한팔프공업’(1991년 2월 ‘대한펄프’로 사명변경)을 설립한 게 1966년 3월이다. 1975년 6월에는 제지업계 최초로 증시에 상장시키고, 이듬해 1월에는 신양제지를 인수하는 등 초석을 다졌다. 동경(東京)전수학교 상과 출신으로 당시 업계에서 엘리트로 통했던 인물이다.
거침없이 성장하던 시기, 돌연 2세 체제의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1980년 11월 창업주의 3남2녀 중 차남 최병민(70) 회장이 가업을 승계했다. 왕성하게 활동하던 부친이 61세 때 갑작스레 별세한 데서 비롯됐다. 경기고,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미국 남가주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최 회장이 1978년 10월 기획조정실장으로 입사, 경영수업을 시작한 지 2년이 채 안된 시점이었다. 29살 때다.
젊은 나이였지만 창업주의 ‘경영 DNA’를 장착한 2세에게 성공은 익숙했다. 창업주의 유산(遺産)을 기반으로 파죽지세로 외형을 확장했다. 백판지를 주력으로 해온 대한펄프가 금강제지를 인수하며 화장지를 시작으로 위생용품 시장에 뛰어든 것도 1985년 11월의 일이다.
최 회장이 대표로 취임한 1983년 279억원이던 매출(별도기준)은 2000년에는 4000억원을 넘어섰다. 영토 확장도 뒤따랐다. 1998년 말 라라티슈(용역업), 동아교통(주차장운영), 대한무선통신(무선데이터), 한국케이블TV다우방송(유선방송), 광고촌(광고대행) 등 5개 계열사를 거느렸다.
경영난…희성그룹에 경영권 매각
지칠 줄 모르는 확장 기조는 결과적으로 위기의 전주곡(前奏曲)이었다. 무엇보다 1999년 3월 충북 청주공장 완공에 총 2000억원을 투자해 하루 500t 생산규모의 백판지 설비 증설을 감행했다가 외환위기를 맞아 흔들거렸다.
경영난은 장기간 이어졌다. 영업으로 벌어들인 수입으로는 차입금 이자 조차 감당하지 못했다. 2008년 말 순차입금(총차입금-현금성자산) 3040억원, 부채비율 1500%, 자본잠식비율 37%는 당시 대한펄프의 위기 상황을 보여주는 재무지표들이다. 계열사들도 하나 둘 떨어져나가 2개사 밖에 남지 않았다.
2009년 2월 SOS를 쳤다. 도움을 청한 곳은 다름 아닌 처가였다. 최 회장은 LG가(家)의 사위다. 부인이 LG 2대 경영자 고 구자경 명예회장의 4남2녀 중 차녀 구미정(67)씨다. 구 명예회장의 차남 구본능(73) 회장이 경영하는 희성그룹으로 편입된 게 이 때다.
손위처남에게 아예 경영권까지 넘겼다. 최 회장은 자신 소유의 지분 65.8% 중 57.8%를 희성전자에 매각했다. 경영에서도 손을 뗐다. 대표이사는 물론 등기임원직까지 내려놓으며 당시 이사회 멤버였던 부인과 함께 경영일선에서 완전 퇴진했다.
24살 후계자 1대주주로 부상
기사회생했다. 희성전자가 경영권 인수와 동시에 진행한 800억원의 자본확충과 때마침 화장지·티슈·기저귀·생리대 등 위생용품사업의 호전으로 빠른 속도로 제자리를 찾아갔다. 2011년 3월 사명을 아예 위생용품 브랜드명 ‘깨끗한나라’로 바꿔달 정도였다.
매출은 매년 예외 없이 성장하며 2013년 6470억원을 찍었다. 재무건전성도 부쩍 좋아졌다. 순차입금은 1300억원으로 절반 넘게 축소됐다. 부채비율은 151%로 확 낮아졌다. 무엇보다 벌이가 좋아져 결손금도 모두 해소하고 자본잠식에서도 완전히 벗어났다.
‘최씨 집안’의 대주주 지위 회복은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2014년 7월 당시 희성전자 소유의 53.3% 지분 중 3분의 2를 다시 사들였다. 이듬해 3월에는 최 회장이 다시 대표로 취임하며 경영일선에도 복귀했다.
절묘했다. 최 회장은 경영권 회복을 후계승계의 발판으로 활용했다. 즉, 희성전자의 지분 인수자 명단에 최 회장은 없었다. 대신 세 자녀를 내세웠다.
24살 대학생 신분이던 장남 최정규(31) 현 깨끗한나라 이사가 347억원을 주고 최대주주로 부상했던 게 이 때다. 두 딸 최현수(43) 깨끗한나라 대표와 최윤수(40) 온프로젝트 대표 또한 2, 3대주주의 지위를 가졌다. 지금도 최 회장의 2세들이 깨끗한나라의 지분 31.5%를 보유 중인 이유다.
한 핏줄을 타고난 유전자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최 회장보다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창업주 2세들이 정중동(靜中動)의 행보로 독자적인 사업가의 길을 가는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장남 최병욱(74) 전 서일물산 대표와 3남 최병준(65) 대표다. 깨끗한나라가 차남 승계가 이뤄진 탓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을 따름이다. 이래저래 얘깃거리가 많은 집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