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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총투어]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거부한 2515만주의 의미

  • 2019.03.27(수) 18:02

회사 측 지분 제외하면 연임 반대여론이 압도적으로 많아
2년뒤 조원태 사장도 재신임…여론 바꾸는건 경영진의 몫

"치열한 글로벌 항공시장에서 지난 50년간 대한항공이 지속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주주 여러분들의 끊임없는 성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사의 2만여 전 임직원들은 주주여러분과 고객들의 격려를 바탕으로 회사의 성장·발전과 세계 항공업계에서의 위상을 더 높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27일 대한항공 주총장에서 나눠준 영업보고서 3페이지에는 조양호 대표이사 회장의 인사말이 있었다. 하지만 조 회장은 이날 인사말을 직접 발표하지 않았다.

주총장 연단에 마련된 대표이사 자리에 앉은 사람은 조양호 회장도, 조 회장의 아들 조원태 대표이사 사장도 아니었다. 전문경영인 우기홍 대표이사 부사장이 그 자리에 앉아 주주들에게 인사했다.

우 부사장이 낭독한 인사말은 영업보고서에 적혀있던 조 회장의 인사말 내용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 회장의 인사말을 부사장이 주총장에서 대신 읽은 셈이다.

그리고 주총이 시작된 지 40분이 흐른 오전 9시 54분. 우 부사장은 이날 주총의 세 번째 안건인 이사선임 안건을 상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양호 사내이사 선임 안건은 사전 확보한 위임장 등 의결권 행사내역을 확인한 결과, 총 참석주주 7004만946주 중 찬성 4489만1614주(64.1%)  반대 2514만9332주(35.9%)로 나타나 정관상 의결정족수 3분의2를 충족하지 못했기에 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영업보고서 책자에 적혀있던 ‘주식회사 대한항공 대표이사 회장’이라는 조 회장의 직함에서 ‘대표이사’란 단어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대표이사가 아니더라도 그는 여전히 대한항공 회장이라는 직위를 가지고 있으며, 대한항공의 최대주주 한진칼 대표이사 회장도 맡고 있다. 얼마든지 대한항공에 영향력을 행사 할 수도 자리다.

하지만 조 회장을 대표이사에서 비자발적으로 물러나게 만든 이날 주총 의결권 내역을 자세히 뜯어보면 대한항공 주주들이 현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대한항공 경영진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우기홍 대한항공 대표이사 부사장이 27일 정기주주총회 폐회를 선언하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연임 찬성 4489만주 vs 반대 2515만주

외견상 숫자만 놓고 보면 조양호 회장은 다수의 주주 지지를 받았음에도 까다로운 회사 정관(주총 출석주주의 3분의2 찬성으로 이사 선임) 탓에 연임하지 못한 것으로 위안삼을 수도 있다. 다른 회사처럼 일반결의(출석주주의 2분의 1찬성)였으면 조 회장 연임 건은 가결 조건을 충족한다.

그러나 까다로운 특별결의였다해도 이날 주총참석률(73.84%)을 감안하면, 회사 측(한진칼 및 특수관계인) 지분 33.35% 외에 약 15.8%의 우군만 더 확보했더라면 기업총수의 사내이사 연임 부결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

이는 자신들을 제외한 나머지 주주 10명 중 3명씩만 설득하면 여유있게 달성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10명 중 3명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이날 공개된 의결권 내역을 좀 더 들여다보면 회사 측을 제외한 나머지 주주들이 얼마나 조 회장의 연임을 강하게 반대했는지 알 수 있다.

조 회장 연임을 찬성한 4489만주 가운데 회사 측을 제외한 주식은 1326만주. 대한항공 총발행주식의 13.9%이다. 이것이 조 회장이 대한항공 최고경영자로서 주주들로부터 받은 순수 지지율이다.

반면 조 회장 연임에 반대표를 던진 주식은 2515만주(총발행주식의 26.5%)로 회사 측을 제외한 찬성표의 두 배에 달한다.

물론 반대표 2515만주에는 국민연금(1109만주)이 있지만 연금뿐만 아니라 나머지 주주 1406만주(총발행주식의 14.8%)도 상당수 존재한다.

2014년 겨울 조양호 회장의 장녀 조현아 전 부사장은 기내에서 제공하는 땅콩서비스를 문제 삼아 비행기를 돌려세웠으나, 그로부터 4년이 지나 수많은 주주들은 조 회장이 더 이상 최고경영자 자격이 없다며 그가 쥐고있던 주식회사 대한항공의 조종간을 돌려놓았다.

2년 후 2021년에는 조 회장의 장남 조원태 대표이사 사장의 사내이사 임기도 끝난다. 조원태 사장도 아버지와 똑같은 절차를 거쳐 주주들에게 재신임을 물어야 한다. 까다로운 정관을 바꾸기도 쉽지 않다. 정관을 변경하는 것도 주주 3분의2 이상 동의가 필요한 특별결의 절차를 따라야하기 때문이다.

결국 주주 여론의 물줄기가 바뀌지 않는다면 앞으론 그 어떤 것도 불가능할 수 있다는 점을 이날 2515만주의 반대표가 의미하고 있다. 여론을 바꾸는 것은 경영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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