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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혁신]청바지 입는다고 답 나올까

  • 2019.04.29(월) 09:59

[창간 6주년 특별기획]
아마존, 차고에서 출발 시총 1위 등극
베이조스 "수십억달러 손실 봐도 실험 계속"
체인지 메이커 안나오는 한국…"성장동력 약해졌다"

혁신(革新). 묵은 제도나 관습, 조직이나 방식 등을 완전히 바꾼다는 의미다. 과거 한국 기업들은 치열한 변화를 통해 성장을 이어왔고, 유례를 찾기 힘든 역사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성장공식은 이미 한계를 보이고 있다. 성장이 아닌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로 몰리고 있다. 비즈니스워치가 창간 6주년을 맞아 국내외 '혁신의 현장'을 찾아 나선 이유다. 산업의 변화부터 기업 내부의 작은 움직임까지 혁신의 영감을 주는 기회들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새로운 해법을 만들어 내야 하는 시점. 그 시작은 '혁신의 실천'이다.[편집자]

세계에서 가장 비싼 이혼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는 독설가로도 유명하다. 직원들을 향해 툭하면 해고를 언급하고 "당신은 게으른 거야, 아니면 그냥 무능력한 거야"라며 모진말도 서슴지 않는다. 치열한 내부경쟁과 업무 스트레스로 직원들의 평균 근속기간이 1년 남짓일 정도로 짧다.

그럼에도 아마존의 성장세는 거침없다. 올해 1월에는 미국 주식시장의 절대강자인 애플을 제치고 시가총액 1위 자리를 꿰찼다. 아마존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철환 단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는 "시간과 비용의 낭비는 철저히 금하되 고객을 위해선 아낌없이 투자하고, 단기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사업을 키워나가는 혜안이 지금의 아마존을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자린고비 경영 속 투자는 과감히

1994년 시애틀 차고에서 출발한 아마존은 경비를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문짝을 떼다가 다리를 붙여 직원용 책상으로 쓰고 전기료 걱정 때문에 자판기의 전구를 모두 빼는 등 자린고비 경영으로 유명하다. 직원들을 오래 붙잡아두려고 셔틀버스 제공을 거부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니 베이조스는 흔히 말하는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 경영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그럼에도 고객에게는 무섭게 집착했다. 고객이 좋아할 만한 상품을 자동으로 소개하고 한번 카드를 등록하면 편하게 결제할 수 있는 원클릭 시스템을 도입한 곳이 아마존이다. 투자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아무도 계산대 앞에서 줄서서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해 수백대의 컴퓨터와 카메라, 과학자와 기술자를 동원해 2016년 무인상점인 '아마존 고'를 열었다.

베이조스는 이달초 주주들에게 보낸 연례서한에서 "기술적으로 고된 과정이었지만 아마존 고에서 쇼핑경험을 '마법 같다'고 표현하는 소비자들의 반응이 보상이 됐다"고 말했다. 고객이 만족한다면 다 괜찮다는 식이다. 그러면서 "때때로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보더라도 우리는 우리 회사의 규모에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실험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는 1994년 시애틀 차고에서 인터넷서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올해 1월에는 미국 시가총액 1위에 오를 정도로 아마존의 성장세는 거침없다.

◇ 거인을 밀어낸 그들 '팡(FANG)'

미국에선 아마존처럼 극적인 성장세를 보인 곳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스탠포드대학원을 다니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1998년 세운 구글은 전세계 검색량의 90%를 장악한 IT업계의 공룡으로 성장했다. 마크 저커버그는 하버드대 인맥관리 사이트에서 시작해 지금의 페이스북을 만들었다.

귀찮게 DVD를 반납하고, 늦으면 연체료까지 물어야하는 비디오 대여점에 짜증을 느낀 리드 헤이스팅스는 직접 넷플릭스를 설립해 세계 190개국에서 1억4000만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거대 스트리밍 기업을 일궈냈다.

뉴욕증권거래소는 2017년 이들 기업을 비롯한 핵심기술주 10개를 따로 추려 '팡(FANG, 페이스북·아마존·넷플릭스·구글의 앞글자를 딴 조어) 플러스'라는 지수를 만들었다. 아이디어와 기술을 믿고, 맨 손에서 출발한 기업들이 미국 주식시장을 주도하는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그 사이 GE·인텔·시스코 등 쟁쟁한 기업들은 시가총액 10위 밖으로 밀려났다. 길어야 20년 남짓한 역사를 가진 '팡' 기업들에 왕위를 넘겨줬다.

◇ 활력 잃은 한국시장…삼성만 독주

한국은 어떨까. 몇년 전 LG경제연구원은 한국·미국·일본에서 설립 후 5년 이내 신생기업들이 시가총액 상위 25% 안에 진입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를 다룬 보고서를 냈다.

2015년을 기준으로 한 분석을 보면 미국은 신규진입 기업중 설립 5년 이내 젊은 기업의 비중이 37.6%인데 비해 한국은 9.5%에 그쳤다. 장수기업이 많은 일본(9.9%)보다 낮은 수치다. LG경제연구원은 "새로운 기업이 설립되고 빠르게 성장하는 동력이 우리나라는 약해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현재 코스피 시장에서 시가총액 10위 안의 기업중 2000년 이후 설립된 회사는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두 곳에 불과하다. 삼성물산이 최대주주로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제외하면 스타트업에서 시작해 손꼽히는 상장사가 된 곳은 셀트리온이 유일하다.

미국에선 시가총액 1위를 두고 애플·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이 엎치락뒤치락 하는데 한국은 20년 가까이 삼성전자의 '나홀로 독주'가 계속되는 건 결국 기존의 산업구도를 흔들며 시장 자체를 재정의하는 '체인지 메이커'가 나오기 힘든 환경 때문이다.

이철환 교수는 "아마존·페이스북·구글 등 혁신기업들은 빅데이터를 활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면서 "한국은 개인정보보호법 등 여러 제약으로 빅데이터 산업의 성장이 더디다. 규제를 풀고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는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 "청바지 입으면 혁신?" 인식 바꿔라

혁신 기업의 등장은 하나의 기업이 스타로 부상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미국 스타트업의 요람인 실리콘밸리 지역에서 최근 5년간 창출된 일자리는 40만개에 달했다. 이는 삼성전자 국내 일자리(약 10만명)의 4배에 달하는 수치다.

아마존이 2017년 제2본사 설립 계획을 발표한 뒤 미국·캐나다·맥시코에서 238개 도시가 유치전에 뛰어든 것도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고 봤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유치하기 위해 용인·이천·청주·천안·구미 등 각 지자체에서 사활을 걸고 뛴 것처럼 미국에선 아마존 제2본사를 두고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아마존 같은 기업이 한국에서 자라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타트업 컨설팅사인 피그말리온글로벌 백세현 대표는 "청바지와 티셔츠만 입으면 혁신인 줄 아는 것부터 고쳐야 한다"고 꼬집었다. '무늬만 혁신'에 많은 자원이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정부는 얼마를 지원했다며 수치에만 집착하고, 대기업들은 인수합병시 스타트업을 자신의 계열사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이런 환경에선 창의성과 자율성 그리고 시장성 있는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이 나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한번 실패하면 미래가 통째로 저당잡히는데 우수한 인재가 들어오려고 하겠느냐"면서 "실패하면 끝이 아니라 실패해도 두번 세번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와 문화를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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