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1조6000억원.
10개 대기업이 사흘간 공개한 향후 5년간의 투자 규모다. 올 한해 국가 예산(607조700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대규모 미래 투자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발표됐다. 투자 분야는 반도체, 바이오, 배터리, 인공지능(AI) 등으로 4차산업 혁명 시대와 함께 새롭게 열리는 미래먹거리 분야에 집중됐다. 삼성·SK·LG 등은 향후 5년간 총 22만명이 넘는 신규 채용을 하겠다는 내용도 담았다.
일제히 '5년짜리 투자계획' 발표
지난 24일 삼성·현대차·한화·롯데를 시작으로 지난 25일 두산, 26일 SK·LG·GS·포스코·현대중공업 등이 잇따라 대규모 투자계획을 공개했다. 지난 10일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2주 뒤부터 주요 대기업들이 5년짜리 투자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서로 다른 사업군과 투자 일정을 가진 기업들이 일제히 중장기 투자계획을 발표했다는 점에서 새 정부와 호흡을 맞춰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투자 규모를 보면 삼성이 450조원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SK(247조원), LG(106조원), 현대차(63조원), 포스코(53조원), 롯데(38조원), 한화(37조6000억원), GS(21조원), 현대중공업그룹(21조원), 두산(5조원) 등이 이었다. 투자 규모는 대체로 재계 순위를 따랐다.
주요 대기업들은 전체 투자에서 국내 투자의 비중이 높다는 점을 강조했다. 삼성은 450조원 중 80%(360조원), SK는 247조원 중 72.5%(247조원), 포스코는 53조원 중 62.3%(33조원), 한화는 37조6000억원 중 53%(20조원)가 국내용 투자였다. LG와 현대차 등은 이번 투자금액 전부가 국내에 투자됐다.
바이오·반도체·배터리 등 집중 투자
투자 분야는 기업들이 준비하고 있는 미래 먹거리에 쏠렸다. 삼성과 SK, LG는 투자 대상이 중복되는 분야가 많았다. 바이오(삼성·SK·LG·롯데·현대중공업그룹), 반도체(삼성·SK), 배터리(SK·LG), AI(삼성·LG) 등이다.
우선 지난해 국내 수출의 20%를 차지한 반도체에 투자가 집중됐다. 삼성전자는 세계 선두를 지키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와 함께 △팹리스(반도체 설계)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를 키워 '반도체 초강대국'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SK는 전체 투자의 절반이 넘는 142조원을 반도체·소재에 배정했다.
전기차의 '심장' 배터리도 주요 투자 대상이다. LG는 배터리와 배터리 소재 분야에서 5년간 국내에만 10조원을 투자한다. SK는 배터리 설비와 함께 수소, 풍력, 신재생에너지 설비 등이 포함된 그린 비즈니스에 67조4000억원을 배분했다. 다만 국내 3대 배터리 업체 중 하나인 삼성SDI를 거느린 삼성은 이번 투자계획에 배터리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현대차는 미래 성장 분야인 전동화·친환경 사업 투자(16조2000억원)보다 내연기관 투자규모(38조원)가 더 크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번에 국내 투자계획만 담은 데다 투자가 집행되는 2025년까지 현대차·기아 전체 판매량의 80%를 내연기관이 차지한다는 점이 감안되면서다. 내수 중심인 롯데도 유통 8조1000억원, 롯데렌탈의 전기차 24만대 도입 8조원 등 기존 사업을 강화하는 데 투자가 집중됐다.
한화는 태양광·풍력 등 에너지 분야에 4조2000억원을 배정했다. 두산은 SMR(소형모듈원자로), 가스터빈, 수소연료전지 등 차세대 에너지 사업에 집중 투자한다. GS도 SMR와 수소 등 에너지부문에 14조원을 배분했다.
삼성·SK·LG·GS, 5년간 22만명 채용
대기업들은 고용도 약속했다. 삼성은 반도체와 바이오 등 분야에서 향후 5년간 8만명을 신규 채용한다는 계획이다. 450조원 규모 투자로 인한 고용유발은 107만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LG는 2026년까지 매년 1만명씩 총 5만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이중 연구개발(R&D) 분야에서만 전체 채용 인원의 10%를 채운다. 이 밖에 SK(5만명), GS(2만2000명), 포스코(2만5000명) 등 이번 투자계획에 담긴 총 채용인원은 22만7000명에 이른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비슷한 시기에 일제히 투자계획을 발표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며 "투자와 고용 계획은 수년간에 걸쳐 준비하기 때문에 닥치는대로 발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공교롭게 비슷한 날 투자 계획을 발표했지만 대규모 투자를 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기업은 본질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