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폰, 노트북, 전기차까지. 배터리는 이제 일상 속 필수품이 됐습니다. 그런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머리카락보다 얇은 금속막 하나가 양극과 음극 사이서 조용히 전기를 오가게 하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집전체'라 불리는 이 금속막은 전류가 흐를 수 있도록 돕는 핵심 통로이자 배터리 성능과 안정성을 좌우하는 중요 요소인데요. 서로 다른 전압 조건에서 왜 양극엔 알루미늄, 음극엔 구리를 사용하는지도 이 집전체를 이해하면 자연스럽게 풀립니다. 오늘 <테크따라잡기>에서는 배터리 속 구리와 알루미늄이 각각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그리고 그에 따른 과학적 이유를 함께 살펴봅니다. 삼성SDI 뉴스룸을 참고했어요.
머리카락보다 얇은 금속막, 왜 중요한가요?

리튬이온 배터리는 양극·음극·분리막·전해질 등 4가지 주요 구성 요소로 이루어집니다. 이 가운데 양극과 음극은 전기를 주고받는 핵심 구조인데요. 이들 전극은 머리카락보다 얇은 금속막 위에 활물질·도전재·바인더를 섞은 슬러리를 코팅해 만들어집니다. 이 얇은 금속막을 '집전체'라고 부릅니다.
집전체는 단순히 슬러리를 받쳐주는 막이 아닙니다. 외부서 들어온 전자를 활물질에 고르게 전달하고, 방전할 땐 활물질서 나온 전자를 외부 회로로 내보내는 통로 역할을 하죠. 이 통로가 매끄럽고 안정적일수록 배터리는 오래가고 전기도 더 효율적으로 흐를 수 있어요.
집전체엔 아무 금속이나 사용할 수 없습니다. 배터리 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전기를 안정적으로 전달하려면 몇 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하거든요.
무엇보다 전기가 잘 통해야 합니다. 활물질과 외부 회로를 이어주는 통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전류가 끊기거나 흐름이 느려지면 배터리 성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막힘 없이 뻗은 고속도로처럼 전자가 빠르게 지나갈 수 있어야 하죠.
또 쉽게 찢어지거나 구겨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해야 합니다. 배터리는 제조 과정에서 여러 번 말고, 누르고, 접는 복잡한 공정을 거치기 때문에 기계적 강도가 약한 금속은 견디기 어렵습니다.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유연한 내구성이 요구되는 이유죠.
열에 강하고 화학 반응에도 안정적이어야 합니다. △충·방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 △내부 전해질과 같은 화학물질 등에도 쉽게 부식되거나 변질되지 않아야 오래도록 제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슬러리와 잘 달라붙는 접착성도 중요합니다. 슬러리를 집전체 위에 고르게 바르고 굳혀 전극을 만드는데, 이때 금속 표면과 슬러리의 밀착이 좋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 활물질이 들뜨거나 떨어져 나가 배터리 성능이 저하될 수 있다고 해요.
성능·안정성·가공성·비용까지…구리의 1타 4피

그렇다면 이 집전체에는 어떤 금속이 쓰일까요? 전압 조건이 다른 음극과 양극에는 각각 구리와 알루미늄이라는 서로 다른 금속이 선택되는데요. 그 이유를 하나씩 들여다볼게요.
우선 리튬이온 배터리의 음극은 보통 0~1V 수준의 낮은 전압에서 작동합니다. 이 구간에선 리튬이 드나들며 에너지를 저장하거나 방출하는 과정이 반복되는데요. 작동이 매끄럽게 이어지려면 전기를 잘 흐르게 하면서도 리튬과 불필요한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금속이 필요합니다.
그 조건에 가장 잘 들어맞는 소재가 바로 '구리'입니다. 구리는 전기를 아주 잘 전달하는 금속이에요. 실제 전도성이 가장 높은 금속은 은이고, 그 다음이 구리죠. 덕분에 배터리 내부에서도 전류가 빠르고 안정적으로 흐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또 구리는 아주 얇게 가공할 수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요. 배터리를 작고 가볍게 만들어야 할 때 이런 얇은 금속막은 큰 장점이 됩니다. 얇지만 단단하고 쉽게 구겨지거나 찢어지지 않아 다양한 형태의 배터리 설계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구리는 리튬과 화학적으로 섞이지 않는 금속이라는 점입니다. 일부 금속은 리튬과 만나면 반응을 일으켜 새로운 물질로 변하는데, 구리는 그런 변화 없이 자신의 성질을 안정적으로 유지하죠. 덕분에 리튬이 드나들며 충·방전이 반복되는 환경 속에서도 형태나 특성이 변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구리는 표면이 산화되기 쉬운 편이고, 배터리를 지나치게 방전시키는 경우(과방전)엔 구리 성분이 전해질에 녹아나오는 '용출 현상'이 발생할 수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기술 기준에선 구리가 음극 집전체로 가장 이상적인 소재로 꼽히는데요. 전도성·안정성·가공성·비용 등 여러 요소를 고루 갖춘, 가장 균형 잡힌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산화에 강한 방패, 알루미늄의 양극 데뷔

배터리 양극은 보통 4볼트(V) 이상의 높은 전압에서 작동합니다. 그런데 이런 고전압 환경은 금속에게 꽤 까다로운 조건이에요. 특히 구리처럼 산화에 취약한 금속은 전압이 높아질수록 성질이 쉽게 변하고 부식이 되기 쉽습니다.
실제 구리는 약 3.385V를 넘는 전압부터 산화가 시작되는데요. 표면이 산화되면 전기가 제대로 흐르지 않거나 금속 자체가 약해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 때문에 구리는 양극에서 사용할 수 없죠.
그렇다면 어떤 금속이 양극에 적합할까요? 그 답은 바로 '알루미늄'입니다. 알루미늄은 가볍고 저렴하면서도 전기를 흐르게 하는 능력도 충분히 우수합니다. 덕분에 배터리 제조 단가를 낮추고 무게를 줄이는 데도 효과적이죠.
무엇보다 중요한 강점은 알루미늄이 고전압에서도 안정적인 성질을 유지한다는 겁니다. 그 비결은 '산화막'이라 불리는 보호층에 있어요. 알루미늄은 공기와 닿으면 자연스럽게 얇은 산화막을 형성하는데 이 막이 추가적인 부식을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합니다.
덕분에 4V 이상의 전압 환경에서도 쉽게 변질되지 않고, 양극 집전체로서 제 역할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겁니다.
또 알루미늄은 얇고 균일하게 펴기 쉬운 금속이라 박막 형태로 가공하기에 적합하고, 슬러리와의 접착력도 우수해 전극 제조 공정에 딱 맞는 소재로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이 알루미늄이 음극에서는 오히려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음극은 전압이 낮은 환경에서 작동하는데요. 알루미늄은 이런 저전압 상태에서 리튬과 반응해 불안정한 합금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배터리의 성능이 떨어지고 수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알루미늄은 음극 집전체엔 사용할 수 없습니다.
결국 구리는 전기가 잘 흐르고 저전압 환경에서 안정적인 금속, 알루미늄은 산화에 강하고 고전압에서도 성능을 유지하는 금속이라는 점에서 음극과 양극 각각에 꼭 맞는 소재인거죠.
아울러 최근엔 집전체 자체를 줄이거나 아예 없애려는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무집전체 전극·3D 구조의 집전체·신소재 포일 개발 등 다양한 기술적 시도가 이어지고 있고, 이러한 변화는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를 높이고 무게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이 얇은 금속막 하나에서 시작된 기술의 혁신이 배터리의 미래를 새롭게 쓰고 있는 셈이죠.
[테크따라잡기]는 한 주간 산업계 뉴스 속에 숨어 있는 기술을 쉽게 풀어드리는 비즈워치 산업팀의 주말 뉴스 코너입니다. 빠르게 변하는 기술, 빠르게 잡아 드리겠습니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