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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 수난시대]③사모펀드는 사모펀드답게

  • 2019.12.31(화) 19:48

류혁선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 인터뷰
"사각지대 메워야…사모펀드 역할 중요"

최근까지 가파른 성장 가도를 달려왔던 사모펀드 시장이 위축되고 있다. 정부는 2015년 이후 줄곧 사모펀드 관련 규제를 완화했지만 최근 들어 규제 강화로 노선을 틀었다. 올 들어 연달아 발생한 사모펀드 관련 사건 사고들이 도화선이 됐다. 투자자들도, 사모펀드 업계도 고민이 커지고 있다. 시장의 우려와 관련 제도의 맹점 등을 조명해본다. [편집자]

"사모펀드 시장 육성은 전문투자자가 중심이 돼야 합니다. 자기책임 투자 문화 정착을 위해 필요합니다. 은행 중심으로 발달한 금융 환경도 다시 봐야 합니다. 자본시장은 은행시장과 구별돼야 하기 때문이죠, 사모펀드 시장 확대를 위해서라도 채널 구분이 시급합니다"

올해 사모펀드 시장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각종 사건 사고에 금융 당국은 규제 정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이대로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전문가들은 사모펀드 순기능을 살릴 수 있는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데 입을 모은다.

지난 30일 서울 동대문구 카이스트 캠퍼스에서 만난 류혁선 교수는 사모펀드 시장을 전문투자자 중심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행사와 투자자 사이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고 자기책임하 투자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적 보완도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류 교수는 업계와 학계를 오가며 활약하고 있다. 과거 미래에셋증권에서 경영서비스 및 투자솔루션 부문 대표를 거쳐 미래에셋대우 글로벌부문 대표직을 역임했다. 현재는 카이스트 경영대학에서 금융공학과 자본시장 등을 연구하고 있다.

"사모펀드 시장은 전문투자자 중심으로"

사모펀드란 사인(私人) 간 계약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공시규제가 완화돼 있고 여러 운용상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 투자 수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어 높은 수익률을 거두는 데도 유리하다.

누구나 사모펀드에 투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모펀드 적격 투자자는 전문투자자와 일반투자자로 나뉜다. 일반투자자는 최소 투자 요건만 갖추면 되지만 전문투자자는 투자 경험과 자산 충족 요건을 모두 만족해야 한다.

개인이 전문투자자가 되려면 직전년도 소득액이 1억원이 넘어야 한다. 부부 합산으로는 1억5000만원 이상이면 된다. 소득 규모가 기준에 못 미치더라도 주택을 제외한 순자산액이 5억원 이상이면 문제가 없다고 본다.

또 최근 5년 중 1년 이상은 투자 계좌를 유지한 적이 있어야 하고, 월말 평균잔고 기준 5000만원 이상의 안전자산 제외 투자상품을 가진 경험도 있어야 한다. 자산과 경험 요건을 모두 갖추고 증권사 등록을 마치면 절차가 완료된다.

전문투자자가 되면 여러 가지 투자 제약이 사라진다. 일반투자자는 최소 3억원 이상 투자해야 하는데, 전문투자자는 제약을 받지 않는다. 파생상품 가입 시 받아야 하는 교육도 면제돼 투자 절차가 대폭 간소화된다.

사모펀드 시장 육성은 전문투자자가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게 류 교수의 주장이다. 현재 49인으로 묶여있는 개인 전문투자자 참여 제한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자기책임 투자 문화를 정립하자는 설명이다. 최근 파생결합펀드 원금손실 사태의 피해자 대부분은 일반투자자였다. 일반투자자는 공모 시장을 통해 사모 시장으로 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다만 류 교수는 "전문투자자 요건을 갖췄다고 해서 모든 투자상품에 정통한 것은 아니"라면서 "발행사와 투자자 사이 존재하는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하기 위해 중간 매개 역할을 하는 판매사의 영업행위 규칙을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정부의 핀셋 규제…"판매사 역할 중요해"

지난달 금융 당국은 은행의 고난도 사모펀드 판매를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삼은 규제 정책을 발표했다. 고난도 사모펀드란 파생상품이 포함돼 있어 일반 투자자 입장에서 이해가 어렵고, 최대 원금손실 가능성이 30%에 육박하는 투자 상품을 가리킨다.

즉 금융 당국이 투자자들에게 고난도 사모펀드에 투자하려면 은행이 아닌 증권사로 가라고 신호를 줬다는 해석이다. 투자자는 증권사로 가는 순간 본인이 투자하는 상품의 성격을 인지하게 되고 원금 손실 가능성을 인지할 수밖에 없다.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는 말이다.

이런 차원에서 이번 금융 당국 정책은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은행과 증권사 역할이 다른 만큼 각자 취급해야 하는 상품 성격도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각각의 판매 채널이 발행사와 투자자 사이 정보 비대칭성 해소 역할을 보완하면 투자 환경은 더 나아질 거라 내다봤다.

"미국의 경우 사모펀드 공시 규제가 면제되지만, 판매사 의무는 면제되지 않아요. 투자 손실 등으로 인한 소송이 불거지면 판매사는 설명 의무를 이행했는지 스스로 입증해야 하죠. 이게 결코 쉽지 않습니다. 결국 판매사는 사모펀드 투자자 요건을 엄격하게 검토하게 됩니다.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죠"

갈림길에 놓인 사모펀드…앞으로 방향은?

다만 이번 금융 당국 규제가 사모펀드 시장을 어떻게 바꿔놓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명의는 침 한 방으로 마비된 팔을 고치지만, 진단이 정확하지 않을 경우 침을 열 개 놓고도 다른 부작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모펀드의 역할은 시장 환경이 바뀌면서 더 커질 전망이다. 과거엔 개인이 은행에 저축을 하면 은행이 그 돈을 기업에 대출하는 식으로 자금을 융통했지만, 이 경우 은행은 이자를 받을 뿐 리스크 감내에 따른 '리턴'을 얻기 힘들었다.

하지만 최근 성장동력이 대기업 중심에서 혁신 중소기업 중심으로 옮겨가고 저성장이 고착화하면서 돈이 되는 곳과 되지 않는 곳을 선별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자본시장을 통한 직접금융이 대세가 된 만큼 사모펀드 역할이 커졌다.

"그동안 너무 은행 중심으로 금융이 발달해 온 측면이 있습니다. 금융지주 울타리가 있지만, 은행이 주로 막강한 파워를 가진 것이 이와 무관치 않죠. 은행시장과 자본시장은 구분해야 합니다. 사모펀드 시장 확대를 위해서라도 각각의 채널 역할이 구별돼야 합니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자본시장을 경험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으로 쏠려있는 상황을 꼬집은 것이다. 그는 "부동산이 투기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도 자본시장 출구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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