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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디폴트옵션 도입 기대 'UP'…힘 실리는 TDF 대세론

  • 2021.02.24(수) 10:45

디폴트옵션 포함한 퇴직급여법 개정안 이달 국회 통과 가능성
연금 특화 TDF 최대 수혜 기대…운용업계 TDF 띄우기 적극적

정부와 여당이 '쥐꼬리 수익률' 오명에 시달리는 퇴직연금의 성과 개선을 위해 디폴트 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도입을 적극 추진하면서 금융투자업계는 오랜 숙원인 디폴트 옵션이 이번에야말로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디폴트 옵션 도입과 더불어 그에 최적화된 연금 투자 특화 상품으로 평가받는 타깃데이트펀드(TDF) 시장의 급성장 가능성이 점쳐지는 가운데 업계가 금융투자협회를 중심으로 TDF 띄우기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TDF 대세론'이 힘을 얻고 있다.

◇ 디폴트 옵션 골자로 한 퇴직급여법 개정안 이달 국회 통과 가능성

24일 국회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1일 디폴트 옵션 도입을 담은 퇴직급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어 같은 당 정무위원회 소속 김병욱 의원도 이달 초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 현재 두 법안은 병합심사돼 입법절차를 기다리고 있다.

퇴직급여법 개정안은 앞선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된 바 있으나 소관부처인 고용노동부의 반대와 다른 현안들에 밀려 임기 만료 후 폐기됐다. 개정안을 재발의한 민주당 측은 이달 임시국회에서 법안 통과에 총력을 다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퇴직연금은 크게 확정급여(DB)형과 확정기여(DC)형으로 나뉜다. DB형은 가입자가 회사에 퇴직금 운용을 맡기고 기존 퇴직금처럼 근속기간 1년에 대해 30일치의 평균 임금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형태인 반면 DC형은 가입자가 직접 퇴직금을 운용하면서 그 수익에 따라 연금 수령액이 달라진다.

도입 여부로 관심을 모으는 디폴트 옵션이란 DC형 퇴직연금 가입자가 일정 기간 적립금에 대한 운용 지시를 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사업자가 사전에 가입자가 동의한 대로 대신 운용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예를 들어 가입자가 별도 운용 지시를 하지 않으면 운용사가 가입자의 투자성향에 맞게 알아서 펀드를 편입해 굴려주는 식이다. 현재 미국과 호주에서는 각각 '적격 디폴트 옵션(QDIA, Mysuper)'이라는 명칭으로 운영하고 있다.

◇ 1%대 수익률에 허덕이는 퇴직연금…정치권·업계, 지금이 도입 적기

그간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자산운용사들을 중심으로 디폴트 옵션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으나 대부분 정치권을 향한 메아리 수준에 그쳤다. 국내 퇴직연금 시장이 은행 예·적금 중심의 DB형에 치우쳐 있는 데다 DC형 역시 80% 이상이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가입돼 있어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디폴트 옵션 도입 시 발생할 수 있는 원금 손실 우려도 디폴트 옵션 도입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했다. 

자본시장연구원 자료를 통해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제도 유형별 비중을 살펴보면 전체 적립금 252조3000억원 가운데 DB형이 153조9000억원으로 61.0%를 차지하고 있다. DC형이 64조원(25.4%), 나머지 34조4000억원(13.6%)을 개인형퇴직연금(IRP)이 구성하고 있다. 주목할만한 것은 전체 적립금 중 원리금 보장형 상품이 225조원(89.2%)으로 비원리금 보장형 상품 27조3000억원(10.8%)을 압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상당수 근로자들은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가입한 뒤 투자 지식이 부족하다거나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퇴직연금을 방치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저금리가 장기화하고 그로 인해 퇴직연금 수익률이 1%대에 머무르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물가 상승률조차 따라가기 버거운 지금의 수익률로는 퇴직연금이 노후 대비 수단으로서의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금투협에 따르면 지난 10년간(2010~2019년) 퇴직연금 평균 수익률은 2.81%로 같은 기간 국민연금(5.39%), 사학연금(4.89%), 공무원연금(3.90%) 등의 수익률에 뒤처진다. 이들 주요 연기금이 국내외 주식과 채권 등에 고루 투자한 반면 퇴직연금은 원리금 보장형 중심의 DB형 상품에 편중된 탓에 성과가 상대적으로 부진했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당정은 디폴트 옵션 도입을 통해 부진한 퇴직연금 성과를 개선하는 한편 은행에서 사실상 잠자고 있는 수십조원의 자금을 자본시장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생각이다. 그 속내에는 퇴직연금 적립금을 활용해 현 정부의 핵심 정책 중 하나인 '한국형 뉴딜펀드'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담겨 있다. 최근 국내외 증시가 호황을 보이면서 은행권에서 주식시장으로 '머니무브(돈의 이동)'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디폴트 옵션 도입에는 적기라는 판단이다. 

◇ 침체된 운용업계, 돌파구 마련 기대…TDF '안성맞춤' 띄우기에 적극적

디폴트 옵션을 가장 반기는 곳은 공모펀드 침체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운용사들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퇴직연금 가입자는 기존대로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직접 선택하거나 TDF와 혼합형펀드, 머니마켓펀드(MMF) 등 실적배당형 상품 중 한 가지 이상을 선택할 수 있다. 작년부터 20~30대 젊은층을 중심으로 거세게 불기 시작한 주식투자 열풍으로 투자에 대한 관심이 전방위적으로 높아진 만큼 퇴직연금시장에서도 은행 예·적금 대신 각종 펀드 상품을 활용하는 사례가 급증할 것이라는 게 운용사들의 전망이다.

디폴트 옵션 도입으로 가장 큰 수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품은 TDF다. TDF는 투자자의 생애 주기별로 자산을 알아서 배분해 주는 펀드 상품으로,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상장지수펀드(ETF)와 더불어 운용사들의 주력 수익원 중 하나다. 최근 성장세가 두드러져 지난해 말 기준 수탁고는 5조2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조9000억원(56.8%) 증가했다. 이중 퇴직연금에서 유입된 규모는 3조2000억원(61.6%)에 달한다.

TDF는 투자자의 은퇴 예상 시기를 염두에 두고 투자자산 비중을 조절해주기에 이름 뒤에 은퇴 시점을 의미하는 숫자가 붙는다. 예를 들어 2025는 2025년, 2045는 2045년을 은퇴 시점으로 설정하고 투자 전략을 세운다. 투자자가 따로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국내외 주식은 물론이고 채권과 예금, 부동산 등 다양한 자산에 분산 투자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어 디폴트 옵션에 특화됐다고 여겨진다. 아울러 실적 배당형 상품 중에서도 변동성이 낮아 디폴트 옵션 도입을 둘러싼 원금 손실 우려에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장점이 있다.

앞서 디폴트 옵션을 도입한 미국과 호주에서도 대표적인 퇴직연금 상품으로 TDF를 채택하고 있다. 미국은 1조2000억달러에 달하는 디폴트 옵션 가운데 약 87%에 해당하는 1조달러를 TDF로 운용하고 있고, 호주는 디폴트 옵션 8000억호주달러 중 약 40%인 3000억호주달러를 TDF와 비슷한 라이프사이클 펀드로 운용 중이다. 두 나라의 디폴트 옵션 수익률도 양호한 편으로, 연간 7% 내외를 기록하고 있다.

TDF의 성장성을 인지한 국내 운용사들도 몇 년 전부터 앞다퉈 시장에 뛰어든 상황이다. TDF를 취급하는 운용사는 2016년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 등 3개사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12개사로 늘어났다. 이들은 디폴트 옵션 도입에 맞춰 TDF가 연금 투자에 맞춤형 상품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금투협 역시 이에 힘을 보태는 모습이다. 오무영 금투협 산업전략본부장은 "일반 투자자가 글로벌 자본시장의 성과를 향유할 수 있는 검증된 운용방법이 TDF"라며 "생애 주기 관점에서 장기‧분산투자 수단으로 TDF를 활용한다면 안정적인 노후자금 마련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개정안에는 디폴트 옵션과 더불어 DB형 퇴직연금에 투자일임제도를 도입해 적립금 운용방법에 대한 의사 결정을 전문 운용기관에 일임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현재 대다수 기업이 원금 손실 가능성을 우려해 은행 예금 상품으로 DB형을 운용 중인 상황에서 운용사들은 내심 기업 퇴직연금 계좌를 맡아 운용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하는 눈치다. 하지만 DB형의 경우 혹시 모를 원금 손실에 대한 기업들의 거부감이 큰 만큼 법안 통과 이후에도 일임투자가 활성화될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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