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내년부터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에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 제도가 도입될 전망이다. 그동안 퇴직연금이 주로 예·적금에 방치되면서 '쥐꼬리 수익률'이라는 비난을 받아온 가운데 디폴트옵션 도입시 근로 소득자 퇴직연금의 전체 수익률이 개선될 것이라는 데 기대가 모인다.
디폴트옵션 도입이 가시화되면서 드디어 한국도 퇴직연금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게 될 전망이다. 그동안 OECD 국가 중 한국 등 4개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가 모두 이미 디폴트 옵션 제도를 도입·운영해 오며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 효과를 톡톡히 내왔다.
자산운용업계는 환호하는 분위기다. 디폴트옵션 도입시 자산운용사의 주요 퇴직연금 상품인 타겟데이트펀드(TDF)로 자금이 많이 유입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동학개미운동에 힘입어 은행에서 금융투자업계로의 자금 이동이 한차례 일어난 가운데 이번 디폴트옵션 도입에 따른 '제2차 머니무브'도 점쳐진다.[편집자]
은퇴맞춤형 상품 TDF '성장일로'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법안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만장일치 합의를 얻어내며 국회의 최종 문턱도 넘어섰다. 퇴직연금이 16년만에 개편된 것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린 것이다. 이번 개편과 함께 금융투자업계선 TDF 시장의 가파른 성장을 점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9일 기준 국내 TDF 설정액은 6조9374억원으로 7조원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작년 말 3조6074억원 대비 무려 92%가 폭증했다.
조기 은퇴자, 파이어족(경제적 자립을 통해 빠른 시기에 은퇴하려는 사람) 등의 증가로 은퇴 시기가 다양해지면서 은퇴 시기에 맞춰 적절하게 자금을 운용해주는 TDF의 매력이 커진 덕분이다.
"TDF 시장 35조원 규모로 커질 것"
TDF의 이같은 성장세는 이번 디폴트옵션 법안 통과로 더욱 폭발적일 것이란 전망이다. 퇴직연금에 TDF 활용도가 늘어나게 돼 퇴직연금을 통한 자금 유입이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돼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퇴직연금을 통해 투자된 TDF 규모는 2017년 3036억원에서 올해 3분기 6조1000억원으로 최근 4년간 20배 가까이 불어났다.
실제 미국 시장은 디폴트옵션이 도입된 지난 2006년 이후 TDF 시장이 연평균 25%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디폴트옵션 도입에 따라 퇴직연금 가입자에게 리스크 감내 수준별로 다양한 상품 옵션(△TDF △밸런스드 펀드 △매니지드 어카운트 등)이 주어지는 데 TDF 옵션을 선택한 가입자의 퇴직연금 재원이 지속적으로 유입됐기 때문이다.
변재일 한화자산운용 WM솔루션운용팀장(TDF 펀드매니저)은 "디폴트 옵션 도입 이후 미국의 TDF 시장은 연평균 25%씩 성장했다"며 "한국도 이와 유사한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며 향후 5년내 35조원대 규모로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운용사들 수익률 경쟁 격화될까
이같은 변화에 운용업계도 새 고객 모시기에 분주한 분위기다. TDF가 장기 상품이니만큼 디폴트옵션 도입에 맞춰서 즉각적인 운용 변화 등은 없다면서도 수익률 관리에 더 공을 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국내에서 TDF 상품을 선보이고 있는 곳은 총 16곳으로 총 121개의 TDF가 운용되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9일 TDF 시장 내 상위 5개 운용사가 TDF 설정액 기준 93%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점유율이 42%로 가장 높고 이어 삼성자산운용(22%), KB자산운용(11%), 한국투자신탁운용(11%), 신한자산운용(7%) 순이다.
다만 수익률은 점유율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분위기다. 시장내 점유율이 낮은 운용사들이 수익률 관리에 더 힘을 실으며 점유율 확대를 꾀하는 모습이다.
같은 날 기준 국내 TDF 상품 가운데 1년 수익률이 가장 높은 상품은 시장내 점유율이 1%대에 불과한 한화자산운용이 운용하는 '한화LifePlusTDF'로 16.77%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어 시장내 점유율이 2%대인 키움자산운용도 '키워드림TDF'가 16.13%의 수익률을 내며 저력을 보였다.
오광영 신영증권 연구원은 "국내에서 운용 중인 TDF의 순자산 규모는 약 10조원 수준으로 상위 5개 운용사가 전체의 94% 수준을 차지하고 있고, 미국의 경우에도 TDF시장의 상위 5개 운용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83%로 크다"며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도입에 따른 TDF 시장 성장 과정에서 운용사간 치열한 싸움이 예상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