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창에 '전기차'를 입력하면 테슬라가 나온다. '커피'를 치면 스타벅스가 뜬다. 포털사이트 연관검색어 얘기가 아니다. 주식투자 애플리케이션(앱)이다.
'혁신'으로 무장한 새내기 증권사 토스증권이 결국 일을 냈다. 최근 암울한 주식시장 분위기 속에서도 지난해 런칭한 해외주식 서비스의 시장 점유율을 10%대에 안착시켰다. 서학개미(해외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개인투자자)를 잡기 위해 증권업계에서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당당히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해외주식 서비스의 성공적인 데뷔를 이끈 건 의외의 인물이었다. 그 정체는 '비증권업계 출신'의 '초보 주식투자자'였다.
반년 만에 점유율 두 자릿 수로
토스증권은 2020년 11월 증권업 본인가를 받고 지난해 3월 공식 출범했다. 데뷔한지 이제 갓 1년을 넘긴 새내기지만 다양한 콘텐츠로 증권업계에 긴장감을 주고 있다. '주식 선물하기'와 '커뮤니티' 등 서비스로 동학개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더니 이번에는 해외주식 서비스를 개시해 서학개미 잡기에 나섰다.
작년말 개시한 토스표 해외주식 서비스의 성장 속도는 매섭다. 거래액 기준 토스증권의 해외주식 서비스 시장 점유율은 1.40%에서 출발해 지난달 말 12.50%까지 급등했다. 해외주식 월간활성화사용자 수(MAU)는 4월 100만명을 돌파했다.
특히 증시 불안으로 투자금을 회수하는 움직임이 빨라지는 가운데 거둔 성과라 더 눈길을 끈다. 국내 투자자들의 월간 해외주식 거래대금은 작년 말 43조원에서 5월 말 기준 32조원으로 10조원 넘게 증발했다. 반면 같은 기간 토스증권을 통해 거래된 금액은 6000억원에서 4조원으로 급증했다.
흔하디 흔한 해외주식 거래 서비스 시장에서 토스증권이 두각을 나타낼 수 이유는 무엇일까. 장마철을 앞두고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6월 어느 날 서울 강남구 역삼역 근처에서 해외주식팀을 이끄는 윤민정 프로덕트오너(PO)를 만났다.
회사 내 '작은 스타트업'
윤 PO의 첫 인상은 '힙'했다. 유행 아이템인 검정 볼레로를 걸치고 하얀 진주목걸이로 포인트를 줬다. 왼쪽 팔목엔 주황색 스트랩의 애플워치를 찼다. 365일 흰 셔츠에 검은 정장 바지 차림이 일반적인 여의도 증권가 분위기와는 확실히 달랐다. 준비물도 간소했다. 그의 손에 든 건 달랑 아이폰뿐이었다. 인터뷰에 자주 보이는 투박한 회사 다이어리나 노트북은 없었다.
과연 쇼핑 플랫폼 출신다웠다. 윤 PO는 토스증권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증권과 거리가 멀었다. 온라인 클래스 플랫폼 클래스101에서 미국, 일본 신사업 런칭을 맡았고, 토스증권 입사 직전에는 쇼핑 플랫폼인 스타일쉐어에서 서비스 기획을 담당했다.
주식투자에 별 흥미가 없던 그가 증권업계에 발을 담그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써보니 좋더라'였다. 윤 PO는 "어떤 회사로 이직을 할지 고민이 많던 시기에 모바일 서비스를 기획하는 업무로 가야겠다고 노선만 정했었다"며 "당시에는 증권업계로 가야겠다는 생각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토스증권 베타 서비스가 나와 사전신청을 해서 써보고 '이거구나' 싶었다는 것이다. 그는 "서비스 출시를 기점으로 주식투자의 개념이 바뀌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해외주식 서비스팀에서 윤 PO가 맡은 역할은 '분대장'이다. 애자일(agile) 조직으로 구성된 토스증권은 디자이너와 개발자, 데이터분석가 그리고 PO가 한 팀을 이룬다. 이를 내부적으로 '사일로'(Silo)라고 부른다. 한 사일로는 짧게는 6개월부터 길게는 몇 년에 걸쳐 제품을 개발하고 시장에 안착할 때까지 책임을 진다.
PO는 사일로를 이끄는 역할이다. 담당 제품이나 서비스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제품을 개발하고 마케팅을 할지 전략을 세운다. 일반 기업처럼 개발, 디자인, 마케팅을 각각 다른 팀이 처리하지 않는다. 제품을 맡은 팀의 PO가 모든 과정에서 결정을 내리고 사업을 이끌어간다. 현재 윤 PO가 이끄는 해외주식팀은 디자이너, 개발자, 데이터분석가 등 총 8명으로 구성돼 있다.
토스증권 내 PO의 결정권한은 사업 진행에서 핵심적이다. 윤 PO는 "해외주식 거래 수수료 할인을 최근 연장하기로 했는데, 리더(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가 인터뷰 당일 아침에 우연히 토스 앱을 확인하고선 놀라서 달려왔다"면서 "타사 수수료 수준과 고객 거래량 추이 등 여러 자료를 데이터 분석팀과 같이 보고 고민한 결과라고 설명드렸다"고 전했다.
영어 못해도 해외주식 투자 'OK'
서비스 개발 단계에서 가장 우선순위로 삼았던 목표는 '경계심 허물기'였다. 영어로 된 종목명에 지레 겁먹은 투자자들에게 국내주식 투자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어필해야 했다. 그러려면 쉽고 직관적인 구성이 필요했다.
윤 PO는 "한국인들의 해외주식 투자 규모가 국내주식 투자의 대략 10분의 1밖에 안 된다"고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유를 따져보니 기업을 잘 모르는데다 자료가 영어로 돼 있고 거래시간까지 밤이었다"며 "하지만 막상 알고 보면 해외주식 투자도 국내주식 투자와 다를 것이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토스 앱 안에 있는 증권 탭에 들어가보면 국내시장과 해외시장이 나란히 놓여있다. 그 아래 실시간 인기차트에는 삼성전자와 프로셰어스 울트라프로 숏 QQQ 상장지수펀드(ETF)(SQQQ)가 같이 올라와 있다. 검색창에 '전기차'를 입력하면 테슬라, 니오, 현대차가 나열된다.
윤 PO는 본인의 팀을 '호수 위를 거니는 백조'에 비유했다. 단순하고 직관적인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해 뒤에서 더욱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는 것이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실시간 소수점 거래 서비스를 개발할 때도 그랬다.
그는 "실시간 소수점 거래를 런칭하면서 계좌 분리도 생각했다"며 "실무적으로 소수점 주식과 1주로 산 주식을 합쳐서 관리하기가 너무 어려웠던 탓"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고객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5만원어치를 팔든, 10만원어치를 사든 하나의 화면에서 하는 게 훨씬 편하지 않나"면서 "완벽한 경험을 설계하기 위해 오래 고민했다"고 말했다.
기술적인 문제뿐 아니라 법적인 문턱을 넘기도 쉽지 않았다. 토스증권은 당국의 투자자 보호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해외 사례를 뒤져보고 로펌을 찾아가 전문가들과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윤 PO는 "정부와의 협업 역시 제품 개발 단계의 일부였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주식 초보 전용' 한계 벗어나려면
주린이(주식+어린이)들의 눈도장을 찍은 토스증권의 다음 타깃은 주식고수다. '주식 초보들의 성지'라는 타이틀은 획득했지만, 여기서 안주하지 않기 위해서다. 서비스를 고도화하기 위해 윤 PO는 국내 타사 앱을 비롯해 로빈후드나 위불 등 미국 주식 앱을 매일 들락날락한다. "주식 초보를 벗어나도 평생 쓸 수 있는 앱"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는 "타사 앱을 보면서 거래에 제한이 있긴 해도 이렇게 다양한 전략을 어떻게 하나의 앱에 녹여냈지 하고 감탄한다"고 했다. 윤 PO는 "위불의 경우 차트가 상당히 고도화돼 있는데 이 앱에서 프로들이 어떤 트레이딩을 하는지 배워간다"면서 "토스증권 해외주식 서비스에도 전문적인 투자가 가능하도록 매매 속도를 높이고 다양한 투자 기법도 넣고 싶다"고 강조했다.
1시간에 걸쳐 본인의 '대표작'에 대한 애정을 쏟아냈던 윤 PO는 인터뷰 말미에 서비스를 언제든 후임에게 넘길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아깝지 않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내가 아프면 해외주식 서비스는 어떡하나. 누군가에게만 의존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지금 증권사에 있는 분이든 아니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도전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답했다.
인터뷰 내내 그가 강조한 키워드는 '경험'이다. 마지막 질문인 최종 목표에 대해서도 경험의 중요성을 놓치지 않았다. 윤 PO는 "단순히 아이콘 모양과 색감이 예쁘다고 해서 사용자가 편하다고 느끼는 건 아니다"면서 "앱 안에서 사용자가 원하는 의도를 실현할 수 있도록 만드는게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끝으로는 "사용자를 잘 이해하는 PO가 돼야겠다고 매일 다짐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