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를 대량 보유하고도 소각 계획을 세우긴커녕 배당도 외면한 상장사들이 다수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가가 코스피 수익률을 밑도는 상황에서도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움직임을 찾아보기 어려운 기업도 있었다.

11일 SK증권에 따르면 지난 3월말 기준 자사주 보유 비율이 20% 이상인 코스피, 코스닥 상장사는 총 57개사다.
자사주 매입은 주당가치 상승과 자기자본이익률(ROE) 개선 효과를 발생시킨다. 또한 자사주에는 배당 권리가 없으므로 기존 주주에게 돌아가는 배당금이 증가하는 효과도 있다. 즉 기업의 자사주 매입은 주가 상승을 이끄는 요인인 셈이다.
그러나 자사주가 소각되지 않고 다시 시장에 돌아오면 이러한 효과는 물거품이 된다. 과거 '자사주의 마법'이라 불린 인적분할 사례처럼 지배주주가 자사주를 활용해 지배력을 강화하거나 인수합병(M&A) 또는 타사와의 교환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식은 지분가치 하락을 일으켜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소액주주 및 행동주의펀드들이 자사주가 많은 기업에 소각을 요구하는 이유기도 하다. 자사주 소각 자체가 주가 상승의 직접적 요인은 아니지만 자사주가 다시 시장에 나올 수 있다는 불확실성을 없앤다는 점에서 투자심리 개선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사주 보유 비율이 높으면서 주가 흐름이 부진한 기업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사주를 소각해야한다는 요구를 받는다.
지난 3월말 기준 자사주 보유 비율이 20% 이상이면서, 1년 코스피 수익률(-9.7%)을 밑돈 기업은 일성아이에스, 텔코웨어, 모아텍, 영흥, 롯데지주, 대한방직, 티와이홀딩스, 한샘, 중앙에너비스, 광동제약, SK, 크레버스, 코리아나, 코아스템켐온, 푸른저축은행, 서울가스 ,이퓨처, 동양 등 18개사다.

그러나 이들 기업 가운데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밝힌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올해부터는 자사주를 5% 이상 보유한 기업은 사업보고서에 자기주식 보고서를 의무적으로 첨부해야 한다. 보고서를 통해 자사주의 처분·소각 계획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들 기업은 소각 계획은 없다고 명시했다.
롯데지주만이 유일하게 기업가치 제고계획에 따른 자사주 소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소각 시기와 수량은 언급하지 않았다. 신영증권, 모아텍, 대동전자는 3월결산 법인으로 사업보고서가 나오지 않았으며 일성아이에스는 자사주 보고서를 빠뜨렸다.
자사주 매입 및 소각뿐만 아니라 배당도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이다. 해마다 이익 규모나 경영 판단에 따라 배당여부와 규모가 달라질 수 있지만 3년 연속 배당을 하지 않은 기업은 주주환원 의지가 부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자사주 20%를 보유한 기업 중 3년 연속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은 기업에도 속하는 기업이 존재했다. 대동전자, 대한방직, 디에이피, 모아텍, 미래에셋생명, 영흥, 조광피혁, 코리아나가 이에 속한다.
이 가운데 모아텍, 영흥, 대한방직, 코리아나, 코아스템켐온은 주가마저 부진한 기업에 속한다. 주가도 부진한 가운데 자사주 소각·배당 어느 쪽에서도 주주환원 노력을 하지 않고 있어 사실상 밸류업 무관심 기업으로 분류된다.
최관순 SK증권 연구원은 "자사주 취득의 목적은 기업가치 제고에 있는 만큼 보유 자사주가 많음에도 주가가 부진하다면 자사주 소각을 검토해 볼 수 있다"라며 "3년 연속 배당이 없었음에도 자사주 매입이나 소각이 이루어지지 않은 기업은 보유 자사주 소각을 통한 주주환원을 고려해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