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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시장 개척]③실리콘밸리 홀린 '뇌파' 벤처

  • 2014.05.27(화) 11:33

비즈니스워치 창간 1주년 특별기획 <좋은 기업>
뉴로스카이 이구형 대표 현지 인터뷰
기술보호·투자위해 美 창업..'심전도'로 영역 확대

[미국 샌프란시스코 = 임일곤 기자]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차를 타고 40분 정도 남동쪽으로 달리면 실리콘밸리 중심 도시 새너제이(San Jose)에 도착한다. 시내로 들어서니 14층 높이 회색 건물이 보인다. 한국 벤처기업 '뉴로스카이'가 입주한 곳이다. 이 회사는 의학·과학 실험실에서 연구 목적으로 쓰일법한 뇌파 측정 기술을 실생활에 접목하고 있다.

 

사람의 뇌파를 센서가 달린 헤드셋으로 측정해 컴퓨터 게임이나 완구 등에 활용한다는 얘기다. 구글의 안경형 웨어러블PC(입는 컴퓨터) '구글글래스'가 외부 정보를 받아들이는 플랫폼이라면, 뉴로스카이 제품들은 인간의 생체 신호를 내부에서 끄집어낸다. 이를 이용해 집중력 향상 훈련을 하는 장난감이나 게임을 만든다. 스포츠와 교육 등 적용 분야도 다양하다.

▲ 이구형 뉴로스카이 공동 창업주이자 최고기술책임자(CTO)가 헤드셋 모양의 뇌파측정 기기를 소개하고 있다.

 

응용 제품 가운데 '마인드플렉스'란 장난감이 눈길을 끈다. 헤드셋을 쓰고 정신을 집중하면 공을 움직일 수 있다. 두 사람이 착용하면 집중력이 누가 강하느냐에 따라 공이 이동한다. 추억의 만화 '드래곤볼'에서 몸안의 기를 모아 에네르기파를 쏘는 것처럼 정신력 대결을 펼치는 것이다. 이 회사 공동 설립자이자 최고기술책임자(CTO) 이구형(61) 박사는 이를 '뇌(腦) 장풍'이라고 부른다. 

 

일본 유통업체를 통해 판매하고 있는 '뇌파인식 고양이귀(Brainwave Cat Ears)'도 흥미롭다. 고양이 귀가 달린 머리띠 모양의 이 제품은 기분에 따라 네가지 방식으로 귀를 쫑긋거릴 수 있다. 귀 모양은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다. 고양이보다 개를 좋아하는 미국인을 위해 미국 시장에는 개 귀를 붙여 판매한다.

 

◇ 감성 입힌 기술, 실리콘밸리가 주목

 

뉴로스카이는 서울대 산업공학과 및 동 대학원에서 인간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버지니아 주립 공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 박사가 지난 2004년 임종진 박사와 공동으로 설립한 회사다. 한국과 중국 지사에서 근무하는 이들을 포함해 총 9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1000만달러, 올해에는 50% 이상 성장을 바라보고 있다.

 

이 회사는 설립 이후 5000만달러 이상 투자를 유치했고, 지난 2009년과 2010년에는 각각 '전미(全美) 기술혁신상'을 받아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들의 주목을 받았다. 독특한 사업 모델과 주목할만한 성과를 거둬 실리콘밸리에 방문하는 국내 기업이나 정부 및 산하기관이 한번쯤 들르고 싶어하는 곳이기도 하다. CNN과 포브스 등 현지 언론도 뇌파 측정 기술을 실생활로 이끌어 냈다는 점에 주목하며 이 회사를 조명했다.

 

이 박사는 뉴로스카이를 만들기 전 LG전자에서 세계 최초로 감성공학 연구팀을 운영했다. 이를 발전시켜 커뮤니카토피아연구소란 미래예측 연구소를 만들기도 했다. LG전자를 그만두고 컨설팅 일을 하다 뇌파 측정 기술로 창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 기술을 통하면 새로운 시장개척 가능성이 높아 보였기 때문이다.

 

창업을 실리콘밸리에서 한 이유를 묻자 "투자 유치와 기술 보호"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박사는 "한국에선 창업이 어렵고 무엇보다 성공한 기술이 있으면 대기업이 채가거나 중국 기업이 베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뉴로스카이와 '바비 인형' 제조사로 유명한 미국 마텔(Mattel)이 공동 개발한 '마인드플렉스'는 두 사람이 헤드셋을 착용할 경우 '정신 집중력 대결'을 펼칠 수 있다.

 

◇ "확장·창의·시장성 3박자 갖춰야"

 

원래 이 박사는 실리콘밸리 법인을 미국 현지 경영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한국에 머무르며 기술 개발에 집중할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설립 초기에 대만계 미국인 스탠리 양씨를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투자를 이끌어 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들은 '얼굴 마담'보다 원천 기술을 갖고 있는 엔지니어를 직접 보길 원했다고 한다.

 

결국 이 박사가 미국으로 건너와 투자자들을 직접 만나러 다녀야 했다. 한국에서 빚을 끌어 모아 창업을 했는데 9개월간 투자를 못 받아 고생을 했다. 이 박사는 "눈물 젖은 빵이란 말이 있는데 이 곳에선 온갖 정크 푸드(건강에 좋지 않은 인스턴트 식품)를 먹으며 배고픈 시절을 겪어야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결국 투자를 유치해 첫 월급을 줬는데 눈물이 났다고 했다.

 

이 박사는 이 때의 경험을 들어 후배 창업자에게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하려면 기술이 어느 한가지에만 활용되기 보다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어야 하며 10년 이상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곳 투자자들이 눈여겨 보는 것은 기술의 확장·창의·시장성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뉴로스카이의 사업 역시 확장성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 박사가 현재 계획하는 것은 뇌파 측정 기술로 두뇌를 훈련하는 기능성 게임이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현대인들은 전화번호나 각종 정보를 암기하는 능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어 두뇌 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는 주의력 결핍증이나 치매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박사는 "앞으로 정신 건강을 관리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뉴로피드백이란 치료 방법이 각광을 받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 스포츠과학 권위자.."창업 3번 더한다"

 

이 박사는 국내 스포츠과학 분야의 권위자이기도 하다. 1980년대 국가대표 양궁팀에 과학적인 훈련 방식을 도입하는데 참여했다. 당시 세계 양궁은 미국이 이끌고 있었으나 태릉 선수촌에 정신력 집중을 위한 장비가 적용되면서 판도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1984년 LA 올림픽 서향순 선수를 시작으로 1988년 서울 올림픽의 김수녕 선수 등 '양궁 불패 신화'를 쓴 선수들이 이 훈련을 받았다.

 

이 박사는 "당시엔 선수들 뇌파를 측정하기 위해 승용차 크기만한 장비를 현장에 끌고 가야 했고 측정 비용도 선수 한명당 5억원이 들어갈 정도로 비쌌다"라며 "뇌파 측정 장비를 실험실이 아닌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는데 그때의 노하우가 지금의 뉴로스카이를 만든 기반이 됐다"고 설명했다.

 

뇌파 말고도 심전도와 관련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이르면 오는 7월에 내놓을 웨어러블(착용형) 센서 제품은 사람 몸에서 나오는 심전도(ECG: Electrocardiogram)를 정확히 측정하는 것이다. 심전도가 정상치에서 벗어날 경우 환자에게 미리 경고를 하거나 스마트폰을 통해 병원에 긴급 알림 정보를 보내는 것이다. 이 박사는 "심전도는 뇌파와 함께 가장 중요한 생명활력 신호"라며 "관련 제품이 나올 경우 상당히 파급력이 클 것"이라고 자신했다.

 

뉴로스카이는 원천 기술을 추가하기 위해 연구개발(R&D)에만 집중하고 있다. 전 직원 가운데 80%가 엔지니어다. 자체 공장 없이 중국에서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제품을 만든다. 유통이나 아이디어 기획은 외부 업체 힘으로 해결하고 있다. 이 박사는 "기술을 외부 업체에 공개해 공유와 협력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제품을 만들고 있다"라며 "이런 점이 실리콘밸리 특유의 공존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1년을 버티기 힘들다는 실리콘밸리에서 10년 동안 사업을 해 온 이 박사는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또 다른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 창업과 성공, 그리고 재창업으로 물 흐르듯 이어지는 것이 실리콘밸리의 진정한 기업가 정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3번 더 창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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