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다녀온 분들은 로밍 서비스를 한번쯤 이용해 봤을 겁니다. 요샌 해외서 카카오톡을 이용한 보이스톡(인터넷 전화)을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음성보다 데이터 통신 요금제를 주로 쓸 겁니다. 통신사마다 제각각이나 보통 하루 1만원이면 LTE나 3G급 속도의 데이터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상품들 말입니다.
전날(12일) 과천 정부청사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정감사에서는 이러한 로밍 요금제가 새삼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날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은 통신사 로밍 광고가 소비자를 기만하고 있다고 지적해 관심을 모았습니다.
김 의원이 제시한 로밍 광고를 보면 '추가 요금 없이 하루 단돈 9900원으로 데이터를 마음껏 쓸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광고만 보면 하루에 9900원으로 무제한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이 지적한 해외 로밍 서비스 광고 |
하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LTE 또는 3G 속도로 하루 동안 이용할 수 있는 데이터량은 실제 100메가바이트(MB)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고화질 동영상을 1분도 재생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이를 소진하면 속도가 200kbps 이하로 뚝 떨어집니다. 속도가 떨어진다 해도 데이터가 아예 끊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데이터 무제한'이란 표현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지 않느냐고 할 수 있습니다. 로밍이 아닌 일반 스마트폰 요금제도 대부분 이 같은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으니까요.
반면 김 의원은 무용지물에 가깝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의원실이 고객센터에 문의해본 결과 200kbps 이하 속도로는 SNS 메신저 기능 정도 이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동영상이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는 어렵다는 답변도 나왔다고 합니다. 결국 "마음놓고 사용하라"는 통신사 광고 문구만 믿고 썼다가는 해외서 낭패를 당할 수 있습니다.
김 의원은 해당 광고가 속도 제한에 대한 음성안내나 자막을 포함하지 않고 있어 현행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더욱이 공정거래위원회가 작년 9월 통신 3사의 부당한 광고 행위를 지적했음에도 이를 고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당시 공정위는 “데이터로밍 등 제한사항이 있는 경우 광고 진행시 제한사항을 소비자가 쉽게 알 수 있도록 배경과 구분되는 색상의 자막으로 전체 광고시간 동안 표시하라"고 시정조치를 내렸는데요. 그럼에도 로밍 광고에는 속도 제한에 대해 별 다른 조치가 없었던 겁니다.
이날 국감장에는 통신 3사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유일하게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출석했는데요. 박 사장은 다른 통신사 CEO들을 비롯해 네이버·카카오 창업주 등이 불출석한 상황에서 홀로 등장한 것이라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았습니다. 의원들의 격려와 칭찬도 이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로밍 요금제에 대해선 쓴소리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김경진 의원은 "보통 인터넷 등에서 판매하는 유심 카드로 1기가바이트(GB) 데이터를 하루 1만원 정도면 쓸 수 있는 점을 감안할 때 통신사가 하루 100메가를 9900원이나 받는 것은 폭리다"며 "가격을 현실적으로 낮추고 서비스를 정상적으로 조정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박 사장은 "로밍 서비스는 해외 사업자들의 데이터 통신망을 빌려 쓰고 나중에 정산하는 방식이라 아직 협의가 안 된 사업자가 많다"며 "일본 소프트뱅크 등 일부 사업자들과 협의를 진행하면서 정상화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즉 폭리는 맞긴 한데 국내 통신사의 폭리가 아니라 로밍 국가 통신사업자의 폭리인 셈이죠. 국내 통신사는 로밍 국가 통신사와의 요금협약에 따라 요금을 받는 것이니, 국내 통신사가 내리고 싶어도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따라서 좀더 현실적으로 접근하면 소비자에게 분명하고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은 국내 통신사 광고에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1일 9900원이면 100MB까진 제 속도로, 이후에는 현저히 떨어지는 속도제한에 들어가니 유념해라는 정도의 확실한 메시지 광고가 필요했던 것이죠.
최근 가계 통신비 부담이 커져 볼멘 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통신사가 지적을 당할 빌미를 제공한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