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출범하고 지난 11일 개최한 첫 회의에서 "혁신 성장을 통해 오는 2030년 460조원 규모의 경제적 효과를 달성할 것"이라고 낙관했습니다. 이런 숫자가 실현된다면, 요즘 유행어로 '그레잇'(Great)이란 평가를 미래에 들을 것 같은데요.
다만 '사람 중심의 혁명'이라는 화두를 제시했으니 사람과 관련된 일자리 구조 변화 등 4차산업혁명 추진의 역기능에 대한 대응 방안을 살펴봐야 혹여 '스튜핏'(Stupid)이 될 우려를 최대한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선 정부가 제시한 4차산업혁명의 경제 효과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 선도를 통한 효과와 관련, 오는 2030년 무렵 신규 매출 85조원, 비용 절감 199조원, 소비자 후생 175조원 등 최대 460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맥킨지에 의뢰해 얻은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고용 효과는 같은 시점까지 소프트웨어(SW) 엔지니어, 데이터 과학자 등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약 80만명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했죠.
그러면서 4차 산업혁명이 촉발하는 산업과 경제, 사회와 제도, 과학과 기술 등 모든 분야의 변화에 맞춰 각 분야가 긴밀히 연계된 종합 정책을 통해 '사람 중심'의 4차 산업혁명을 추진한다는 겁니다. 이대로 된다면 정말 그레잇일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인공지능(AI) 기반 로봇의 본격적인 등장으로 사람의 일자리가 급감할 것이란 우려가 세계 각국에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백종현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7월 한국언론학회가 개최한 세미나에서 "스마트 팩토리나 인공지능에 의해 산업 인력의 대체 현상이 일어나 인간이 노동 현장을 떠나면 많은 사람의 소득 기반이 와해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정부도 이번에 "단순 반복 업무는 자동화되고 창의·감성 업무의 가치는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단순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자율주행버스·택시가 상용화된다면 버스·택시 운전기사는 일자리를 잃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전문직에 해당하는 영역도 예외는 아닙니다. 의료·법률·통역 등의 분야에서 일부 업무는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죠.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무엇이었을까요.
고용환경의 변화에 맞춰 유망 신산업으로 원활한 전직을 위해 인력 수급 전망을 고도화하고, ICT 신산업 분야의 직업훈련을 강화한다는 것이 있고요. 고용 형태 다변화에 대비해 사회 안전망을 강화함으로써 실직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한다는 정도입니다. 이밖에 교육 혁신과 법·제도 정비, 윤리 정립 등을 통해 사회적 변화에 대응한다고 합니다.
사람 중심의 혁명이라는 방향성에는 많은 사람이 동의합니다. 그러나 구체성이 떨어지지 않나요. 무엇보다 이런 정도의 방안은 4차 산업혁명이 야기할 혁신적 변화에 걸맞은 혁신적 대응책이라 보긴 어렵다는 지적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문제를 초래한 것과 동일한 사고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했죠.
▲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이 지난 11일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4차산업혁명위원회 1차 회의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
2030년은 사실 12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12년 전인 2005년 우리의 삶과 현재가 혁신적으로 달라졌는지 짚어봅시다. 그래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 우리가 2030년 100주년 FIFA 월드컵 때 얼마나 혁신적으로 즐기고 있을지 상상할 수 있겠죠.
통계청 자료를 보면 상용 근로자의 월 평균 임금은 2005년 240만4000원이었고, 작년은 362만3000원입니다. 꽤 올랐군요.
그런데 실업률은 그때나 지금이나 3.7%로 여전하고요. 소비자물가지수는 2015년 100을 기준으로 2005년 78.44에서 작년 100.97까지 올랐습니다. 아파트 통계를 보면 이해하기 쉬울 텐데요. 전국 평균 매매가격이 2008년 2억5060만원이었는데 작년엔 3억1800만원이었습니다. 미래도 이렇다면 2030년 축구 보면서 치킨을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을까요.
설명이 길었습니다만, 물가 상승 수준을 혁신적으로 뛰어넘는 임금 상승, 이른바 생산성 향상이 이뤄져야 사람 중심의 4차 산업혁명이 우리 삶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란 설명입니다. 사정이 이러니 합계 출산율이 작년도 1.2명, 2005년도 1.1명인 것 아닐까요.
글로벌 전문가들도 이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임금뿐만 아니라 이를 둘러싼 사회적 시스템도 변화해야 합니다.
로레인 포르씨운쿨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디지털경제정책 분석가는 "산업혁명의 모순점은 1·2·3차 혁명을 거치면서도 생산성이 하락했다는 것"이라며 "4차산업혁명이 생산성을 높이게 하려면 기술 혁신과 함께 생산 방식 노동 환경 등 기존의 시스템도 함께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도 첫 회의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변화는 사람에게 도움이 돼야 하며 기술·산업 혁신과 사회정책 혁신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물론 4차 산업혁명위원회가 겨우 첫 회의를 연 자리에서 많은 사람이 만족하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내놓길 기대하는 건 무리일 수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혁신적 대안을 내놓으라는 주문도 무리일 수 있고요.
그렇다면 2030년 일자리 80만명, 경제 효과 460조원 같은 건 큰 그림으로 그려놓고 첫걸음에 걸맞게 눈앞에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대책을 차근차근 제시하길 바랍니다. 앞으로 열릴 2·3·4차 회의에서 어떻게 진전된 모습을 보이는지 기대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