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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운동장]②애꿎은 국내기업만 건드린다

  • 2020.05.26(화) 16:49

[비즈니스워치 창간7주년 기획 시리즈]
n번방 '텔레그램'서 발생했지만 국내기업 규제
해외기업 적용되는 역외규정도 실효성 의문

공정 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을 비유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말한다. 한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도가 원인이다. 서비스 영역의 한계가 없는 IT 업계에선 글로벌 기업이 자유롭게 국내서 사업하는데, 법과 제도가 미흡하면 국내기업 피해가 클 수 밖에 없다. 때문에 국내외 기업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는 작업이 중요하다. 비즈니스워치는 창간 7주년을 맞아, IT 산업에서 벌어진 불공정 경쟁을 살펴봤다. [편집자] 

2014년 한국에서는 때아닌 '사이버망명'이 일어났다. 검찰과 경찰이 세월호 집회를 수사하면서 카카오톡 이용자들의 대화 기록을 들여다본 것이 드러났다. 국내 메신저 감청 의혹이 불거지면서 이용자들이 해외에 서버가 있는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으로 갈아타는 움직임이었다.

당시 이석우 카카오 전 대표가 "앞으로 감청 영장을 거부하고 만약 법에 위반될 경우 대표이사인 내가 직접 책임지겠다"고 발표하고 카카오는 '종단간 암호화' 기법을 적용한 프라이버시 모드를 도입하면서 이용자의 불안감을 잠재웠다.

하지만 텔레그램에서는 비밀 대화가 가능하고 해외 서버는 정부가 들여다보지 못한다는 인식이 국내에서 확산되면서 이후에도 텔레그램은 '비밀스러운 대화'나 '익명성을 보장하는 채팅방'의 목적으로 많이 활용됐다. 법과 규제는 국내 기업에 적용되지만 사용자들은 국내외 서비스를 쉽게 넘나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사건은 '텔레그램'에서, 화살은 '국내 기업으로'

결국 텔레그램에서 'n번방' 사건이 터지게 됐다. n번방 사건이 일어나자 화살은 다시 국내 인터넷 기업으로 향했다. 이미 국내 기업은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을 방지하기 위해 모니터링 강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0일 국회에서는 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인터넷사업자의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방지 의무를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디지털 성범죄물에 대한 신고와 삭제 요청이 있을 경우 삭제 등 유통방지의 의무와 ▲시행령으로 정하는 기술적 및 관리적 조치에 대한 의무가 부과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인터넷사업자에 대한 불법촬영물 등 유통방지 책임자 지정 의무와 ▲해외 사업자에 대한 역외적용을 규정하고 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관련 법안에 대해 "n번방 사건은 해외 메신저에서 발생했는데 관련 법이 해외사업자의 메신저, SNS 등에도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지가 관심사가 되고 있다"면서 "해외사업자에 대한 규제집행력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결국 불법촬영물 등 불법 정보 차단 관련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는 국내사업자에 또 하나의 의무가 추가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며 지적했다.

이에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번 개정안이 국내외 사업자에 차별없이 적용될 수 있도록 수사기관 및 해외기관과 국제 공조를 확대하고 적극적인 조사와 행정제재 실시, 이용자 보호업무 평가제도 활용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다"고 답변했다.

유튜브에 기회 내줬던 인터넷 실명제

지난 2018년 역외적용법이 통과되면서 해외 사업자도 공정거래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 등의 규정을 받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역차별 논란이 있는 이유는 국내 인터넷기업들이 과거에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탓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터넷 실명제다. 지난 2000년대 중후반 유튜브가 국내에서 주목을 받기 전 '판도라TV', '다음 TV팟' 등 국내 동영상 플랫폼 서비스들이 선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9년 실명 인증을 해야지만 인터넷에 글과 자료를 올릴 수 있는 '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되면서 이용자들은 국내 서비스를 이탈하고 유튜브로 이동했다. 게다가 당시 시행된 저작권법 삼진아웃제는 국내 이용자들의 국내 서비스 이탈을 가속화했다. 인터넷 실명제와 저작권법 삼진아웃제는 사실상 국내 기업에만 적용을 받고 유튜브는 계정을 만들 때 해외 국가로 설정하면 관련 법이 적용받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유승희 민주당 전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8년 말 유튜브의 국내 동영상 시장 점유율(페이지뷰 기준)은 2%에 불과했지만 인터넷 실명제를 시행한 2009년 유튜브의 점유율은 15%, 2013년에는 74%를 달성했다. 사용자들이 유튜브를 사용하면서 유튜브 내의 콘텐츠는 점차 많아지고 사용자들은 다양한 콘텐츠를 찾기 위해 계속 유튜브에 머물게되는 순환 구조가 지속되면서 현재 유튜브가 국내 동영상 플랫폼 시장 우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또 역외적용에 대한 실효성 문제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텔레그램은 보안상 본사의 위치도 알 수 없으며 국내 사용자가 많은 서비스일 경우 정부가 해외 서비스를 막을 수 있는 방안도 뚜렷하지 않다.

다만 지난 20대 국회에서 해외 사업자가 국내에 대리인을 지정해 국내 법률 규정들을 대리해 적용받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방송통신위원회의 요청 시 자료를 제출하도록 하는 법이 통과됐다.

지난 7일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에 대해 "국내 대리인을 지정하는 제도는 해외 콘텐츠제공업체(CP)와 국내 CP 간 역차별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논의된 내용으로, 이제 시작단계다"라며 "국제 사회와 협조해서 공조하는 차원으로 접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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