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을 비유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말한다. 한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도가 원인이다. 서비스 영역의 한계가 없는 IT 업계에선 글로벌 기업이 자유롭게 국내서 사업하는데, 법과 제도가 미흡하면 국내기업 피해가 클 수 밖에 없다. 때문에 국내외 기업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는 작업이 중요하다. 비즈니스워치는 창간 7주년을 맞아, IT 산업에서 벌어진 불공정 경쟁을 살펴봤다. [편집자]
'기울어진 운동장' 애플 앱스토어에 대한 불만은 오래됐다. 특히 결제 수수료를 둘러싼 논란은 2009년 말 아이폰의 국내 상륙이후 끊이지 않는다. 아주 짧게 요약하면 애플이 개발사로부터 수수료를 과하게 가져가고, 이것이 사용자의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내용이다. 개선은 되고 있으나, 더디다. 이럴수록 피해는 쌓인다.
◇ 이상한 결제 과정과 느린 개선 작업…피해보는 것은 사용자
한동안 애플은 달러 기준으로 결제하도록 구성해 환전 수수료를 떠안게 했다. 이것이 이른바 '해외원화결제수수료'(DCC, Dynamic Currency Conversion)라는 것이다. 원화를 달러로, 달러를 다시 원화로 바꾸는 환전에 따른 수수료를 뗀다는 얘기다.
국내 사용자 입장에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굳이 왜 그랬을까. 애플의 아일랜드 소재 자회사인 '애플 디스트리뷰션 인터내셔널'을 통해 조세를 회피하면서 나타난 일로 지적됐다.
원성이 자자하자 지난 2018년 9월 원화 결제로 바꿨지만 문제는 여전했다. 이번엔 글로벌 브랜드 카드 사용자가 아닌 경우 여전히 환전 수수료를 낸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1년가량이 흘러 지난해 6~8월 이동통신사를 통한 휴대폰 소액 결제, 카카오페이로도 결제를 가능하도록 했고 국내카드도 이용 가능하게 됐다.
◇ OTT·음원 앱 이용료, 앱스토어가 구글 플레이스토어보다 비싸네?
최근에는 미디어·음원 개발사 상대로 문제가 발생하고있다. 일부 앱들의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스토어 가격이 다른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과 지상파3사가 만든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웨이브'의 월 이용료(베이직 기준)는 플레이스토어에서 월 7900원인데, 앱스토어에 가면 1만2000원이다. 유튜브 프리미엄도 플레이스토어에선 월 7900원, 앱스토어는 1만2000원이라고 한다.
멜론(1만900원->1만5000원)이나 네이버 클라우드 스토리지 100GB(연 3만원->4만4000원)도 유사한 상황으로 알려졌다.
이는 애플이 앱 개발사(서비스 제공사)로부터 인앱 결제만 허용하고, 이에 따른 수수료 명목으로 30%를 받기 때문이다. 구글이 받지 않는 수수료를 애플은 가져가는 까닭에 개발사들은 어쩔 수 없이 이같은 가격 정책을 펴는 셈이다.
개발사들이 구글-애플 양대 플랫폼 가격을 인위적으로 맞추면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가능하나, 개발사 입장은 또 복잡하다. 간단히 말해 애플에 맞출 경우 가격 경쟁력이 저하되고, 구글에 맞추면 손해를 보는 것이다.
결국 피해는 사용자가 입는다. 평범한 스마트폰 사용자가 애플과 구글을 수시로 넘나드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에 이런 가격 차이도 모르고 결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설명이다.
이런 피해를 우회하기 위해 PC에서 결제한 뒤 서비스를 이용하는 애플 사용자들도 나타나고 있지만, 개발사가 이를 적극적으로 알릴 수가 없다. 별도 결제 방식을 안내하는 것을 애플이 막고 있어서다.
◇ "우월적 지위 남용"…조세는 '회피'
그렇다고 대놓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애플이 정한 '법'을 따르지 않았을 때 예상되는 불편과 피해가 크기 때문이다. 앱 업로드 단계부터 애플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거나, 그것을 통과한 뒤 업데이트할 때 불이익을 당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앱스토어 수수료에 대한 조사 의지를 표명한 바 있으나 현재까지 별다른 조치가 없다"며 "사용자에게 저렴한 결제 방식을 알리고 싶어도 불이익에 대한 우려 탓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의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것인지 조사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내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가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적어도 정부 차원의 대화 시도라도 되겠지만 애플은 그렇지 않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심지어 국정감사 때 애플코리아 대표가 출석한 뒤 통역하다가 시간을 보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처럼 자사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기업을 상대로 '법을 지키라'며 일종의 '애플 세금'을 거두는데 적극적이면서 국내 규제는 최대한 피하려는 모양새다.
국내 시장에서 힘을 과시하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은 그에 걸맞은 책임은 지고있을까. 애플과 같은 외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국내 시장에 진출할 때 '유한회사' 형태로 사업하기에 재무실적 등을 공개하지 않아 조세회피에 대한 의심도 사고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정이 이렇지만 규제 개선은 더디고 이를 피할 방법은 많다. 지난 2018년 정부는 애플과 같은 유한회사도 주식회사처럼 외부감사를 받게 하는 등 관련법을 개정해 올해부터 적용할 예정이었으나, 유한책임회사는 해당법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애플코리아와 유사한 'OOO코리아'류의 외국 기업들이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하면 무용지물인 법이 된다.
실제로 지마켓·옥션의 이베이코리아와 요기요 운영사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딜리버리히어로가 배달의 민족 운영사 우아한 형제들 인수합병 진행중) 같은 외국계 다국적 기업이자 국내 시장을 사실상 장악한 온라인 플랫폼들이 지난해 말 갑자기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한 바 있다. [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