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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가입자 고종부터 우영우까지…KT 통신사료관 가보니

  • 2022.08.16(화) 17:42

19세기부터 모은 사료 6000여점
고종이 쓰던 '덕률풍' 등 첫 공개
'우리나라 통신 역사' 한 자리에

벽괘형 자석식 전화기(오른쪽 두번째) /사진=KT 제공

"그땐 전화기를 덕률풍이라고 불렀습니다. '텔레폰'을 한자로 바꿔서 부른 말입니다."

KT 원주연수원의 통신사료관에서 이인학 정보통신역사연구소장이 나무로 된 전화기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통신사료관엔 KT의 전신인 한성전보총국이 1885년 개국한 뒤로 쌓아온 통신사료 6000여점으로 가득했다. 덕률풍이라 불렸던 1892년에 만들어진 벽괘형 자석식 전화기 역시 이 중 하나다. 그동안 외부에 공개해오지 않았지만, 올해 민영화 20주년을 맞아 기자들에게 처음 문을 열었다.

흔히 KT의 역사는 곧 우리나라 통신의 역사라는 말이 있다. 1896년 한성전보총국을 통해 덕수궁에 전화기를 개통한 KT의 '1호 가입자' 고종황제가 개통 3일만에 형무소에 전화를 걸어 백범 김구 선생의 사형집행을 미룬 것은 이미 유명한 일화다. 이후 2002년 민영화를 거쳐 5G(5세대이동통신)와 콘텐츠, 인공지능(AI)으로 영역을 확대하며 통신업계의 한 축을 지켜온 KT의 오랜 이야기를 들어봤다.

원주에 모은 통신의 역사

KT는 16일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원주연수원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통신사료관을 처음으로 외부에 공개했다. 사료관엔 19세기 말에 쓰이던 전화기부터 스마트폰, 케이블, 사업도면, 사용설명서, 기념품 등 총 6150건에 달하는 사료를 보관 중이다. 특히 등록문화재 430호인 '백괘형 공전식 전화기'와 413호에 오른 최초의 다이얼식 전화기 등 8개 등록문화재도 보유했다.

사료관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건 전화기다. 가장 오래된 사료인 자석식 전화기는 수화기를 들면 교환원이 통화를 연결해주는 형태로 작동했다. 시외 등 장거리 전화는 교환원이 다른 교환원에게 전화를 연결해주는 식으로 운영됐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교환원이 통화 내용을 엿들을 수 있는 문제까지 있었지만, 이런 교환기 방식은 전화 교환이 자동화된 1987년까지 운영됐다.

전화 교환 자동화는 교환설비인 'TDX-1(전전자교환기)'을 KT가 1984년에 자체 개발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TDX-1 자체개발에 성공한 10번째 국가로 이름을 알리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TDX-1은 1986년부터 상용화돼 높은 수요에 비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던 전화 서비스 문제를 해결했다 

이 소장은 "1984년에 TDX-1을 자체적으로 개발하면서 외국에 맡기지 않고도 우리나라에서 장비를 직접 수리할 수 있게 됐다"며 "전에는 공급이 충분치 않아 전화를 하고 싶어도 아무때나 걸 수 없었는데, TDX-1이 상용화되면서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했다.

이인학 정보통신역사연구소장/사진=비즈니스워치

전화기 한대가 서울 집값이던 시절

해당 교환설비가 상용화되기 전엔 개통된 전화가 시장에서 비싸게 매매되거나 투기에 사용되면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아예 전화를 임대하는 사업자도 나타났다. 정부는 전화 매매를 막고자 1970년 8월 31일 이후에 개통한 전화를 '청색전화'라 부르고 양도할 수 없도록 막는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그 전에 개통해 양도가 가능한 '백색전화'의 가격이 한대에 270만원까지 치솟으며 혼란이 더해졌다. 당시 서울에 위치한 50평짜리 아파트 가격을 웃도는 값이었다.

TDX-1이 등장한 이후 전화의 모양이 다양해진 것도 눈길을 끌었다. 1970년대 말까지는 교환기 고장을 예방하기 위해 전화국이 지급한 전화기만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는 전화 연결이 쉬워지면서 다양한 디자인의 전화기가 등장했다.

시설 관리 미흡…한국전기통신공사 등장

사료관엔 요즘 보기 힘든 공중전화도 전시됐다. 우리나라에 처음 공중전화가 설치된 120년 전, 이용 요금은 50전에 달했다. 쌀 다섯 가마니를 살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액수였지만, 전화기를 구하기 힘들던 시절이다보니 사람들은 공중전화를 이용했다.

통신사업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1962년부터 전국에 통신 서비스가 구축됐고, 본격적으로 옥외 무인공중전화가 설치됐다. 하지만 실제로 설치되는 전화기는 동네에 한 두대 뿐이었다. 여전히 전화가 충분히 보급되지 못하는 데다 시설이 노후화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통신사업을 공사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1981년 한국전기통신공사라는 이름으로 KT가 창사됐다.

KT는 TDX-1을 상용화한 뒤 무선호출기(삐삐)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무선통신 보급에 나섰다. 1982년 235명에 그쳤던 무선호출기 가입자는 1992년 145만여명으로 6000배 이상 늘었다. 1997년엔 당시 인구의 3분의 1인 1519만명으로 대폭 증가했다. 

이와 함께 2세대 이동통신 기술인 '코드분할다중접속(CDMA)'이 상용화되면서 이동전화 시대가 열렸다. 무선통신 보급과 함께 이동전화 가입자는 1984년 2658명에서 1998년 1000만명을 넘어서며 빠르게 늘었다. 1999년엔 무선전화 가입자가 당시 유선전화 가입자인 2104만명을 넘어섰다.

자석식 시내 교환대/사진=비즈니스워치

민영화 20년 맞은 KT, 사업 저변 넓힐까

KT는 2001년 기존 한국통신에서 현재 사명으로 변경한 뒤 민영화에 나섰다. 외환위기의 여파로 국가 경제가 어려웠던 1999년부터 한국통신은 주식예탁증서를 발행하는 등 민영화 수순을 밟았다. 2002년 공식적으로 민영화된 KT는 인프라 고도화와 함께 인터넷 가입자를 확보해갔다.

2002년 국내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1000만명을 확보한 KT는 인터넷 서비스를 바탕으로 국내 IT산업 생태계를 넓혀가는 데에 일조했다. KT 측은 "전자상거래, 디지털 콘텐츠, 온라인 게임 등 인터넷 기반의 비즈니스들이 새로 탄생했고, 2000년대 글로벌 경제 모범국으로 평가 받는 대한민국을 이끈 주요 원동력이 됐다"고 평했다. 이후 고화질 영상을 실시간 전송하는 IPTV(인터넷TV) 사업에 나서고, 3~5G 등 새로운 이동통신 서비스를 선보였다.

최근 KT는 네트워크 역량에 기반한 디지털 플랫폼 기업 전환에 주력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클라우드 기술을 활용해 금융과 커머스, 헬스케어, 부동산, 로봇 등 여러 부문에서 고객 친화적인 서비스를 만들어가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지난해엔 KT스튜디오지니가 제작에 참여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이 흥행하며 미디어콘텐츠 사업에 선전하기도 했다.

KT 측은 "지난 3년 동안 추진한 KT의 디지코 전환 전략은 결실을 맺고 있다"며 "앞으로도 텔코를 넘어 글로벌 디지털 컴퍼니로 도약하며 디지털 혁신 기술로 산업 생태계를 활성화할 KT의 성장과 혁신, 과정에서의 역할이 주목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KT가 원주에 보관하고 있는 통신사료들은 우리나라 정보통신 흐름에 따른 시대상과 국민의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역사적 가치가 아주 높다"며 "KT가 대한민국의 통신 역사의 본가인 만큼 앞으로도 미래 ICT 역사에서 주역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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