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의 인공지능 컨택센터(AICC) 사업은 내부에서부터 시작됐다. 7000여명이 근무하는 국내 최대 컨택센터에 먼저 AICC 솔루션을 적용했고 은행, 증권사 등 금융권을 중심으로 30여개 기업의 AICC를 구축했다. 최근에는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하는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형 AICC인 CCaaS를 출시해 중견·중소기업으로 고객층을 넓혔다. KT송파사옥에서 AICC 기술을 책임지고 있는 박기철 KT 상무를 만나 AICC가 가져온 디지털 전환에 대해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오정'은 옛말…말귀 트인 가상 상담사
KT가 AICC사업에서 최근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 보이스봇, 챗봇 등으로 고객을 응대하는 '가상 상담사'다. 기본적인 문의나 확인, 예약 옵션을 변경하는 등 간단한 업무는 보이스봇만으로도 충분히 답을 받을 수 있다. 대화 도중 고객의 목소리 톤, 데시벨이나 대화 내용에 따라 감정을 눈치채고 더 복잡한 상담이 필요하다고 느낄 경우 인간 상담사에게로 연결해준다. 지난해 기준으로 KT고객센터에 걸려온 콜의 25%는 보이스봇이 처리했다. 올해는 보이스봇이 KT고객센터에 들어오는 콜의 70%를 받고, 30%를 직접 처리하고 있다.
일반 상담사가 고객을 응대할 때도 고객 음성을 실시간 대화록으로 만들어주는 'AI 어시스턴트'가 사용된다. 고객과 상담한 내용을 바탕으로 자연어 분석을 통해 고객의 불만사항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응대에 필요한 정보를 자동으로 띄워준다. 고객이 남긴 대화 데이터는 자동으로 요약하고 키워드를 추출한다. 마케팅이나 업무 생산성을 분석할 수 있는 고객 분석 데이터가 생기는 셈이다.
또한 고객의 관심사나 잠재적으로 어떤 상품이 필요할지 분석해 추천하기도 한다. 한 금융사는 KT AICC를 도입한지 8개월만에 상품 추천 비중이 약 10% 가까이 늘어나기도 했다. KT는 더 나아가 평소 고객이 이용하는 다른 서비스나 상품과 결합해 분석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박 상무는 "고객의 동의를 받고 금융데이터, 통신데이터를 연합해 고객에게 필요한 상품을 추천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사투리 알아듣고 목소리로 본인 인증하기도
KT AICC의 음성 인식률은 90%가 넘는다. 기존 KT고객센터, 컨택센터 구축 운영으로 양질의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한 결과다. 잘못 표기하기 쉬운 이름의 경우 가장 정확도가 높은 후보를 3개까지 추려서 기록해두는 등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한 로직을 갖추고 있다.
과거 AI 비서나 음성 검색을 이용해본 사람이라면, 과연 보이스봇이 얼마나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데이터가 적을 수밖에 없는 특수한 전문 용어나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동음이의어, 이제는 잘 쓰이지 않는 옛 방언 등이 그 예다. KT 또한 다양한 기업의 AICC를 구축하면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부딪히기도 했다.
예를 들어 KT가 AICC 구축을 도왔던 한 고객사는 전체 고객의 10%가 강한 사투리를 사용했는데, AI를 학습시킬 수 있는 데이터가 지나치게 적었다. 이에 KT는 직접 AI 학습을 위한 데이터를 임의로 만들어 재학습시키면서 음성 인식률을 높이는데 성공했다. 박기철 상무는 "만일 오인식 문제가 발생할 경우 AI를 어떤 주기로 추가 학습시켜야 하는지 많은 노하우가 쌓여있다"고 말했다.
고객의 목소리를 본인인증 수단으로 활용하는 'AI 목소리 인증'은 상담 시간을 평균 19초 줄였다. KT AICC에서는 현재 300만명의 동의를 거쳐 이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데 감기에 걸리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다. 금융권을 비롯한 일부 고객사에서도 AI 목소리 인증을 찾는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다.
중소기업도 도입 가능한 클라우드 AICC
KT는 지난해 12월 콜 인프라, 상담 어시스턴트, 보이스봇·챗봇 솔루션까지 '올인원'으로 제공하는 클라우드 기반 AI컨택센터(CCaaS)인 '에이센 클라우드(A'cen Cloud)'를 출시했다. 기존에도 보이스봇, 챗봇 등을 클라우드 기반 구독형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었지만 에이센 클라우드는 이를 SaaS 기반으로 표준화하고 다양한 유형의 AI솔루션까지 고객이 원하는 대로 신청해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에이센 클라우드는 따로 서버나 장비를 구축할 필요가 없어 AICC를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을 크게 단축한다. 구축형 AICC를 만드는 데에는 수개월에서 1년이 걸렸는데, 에이센 클라우드를 활용하면 빠르면 하루 만에도 만들 수 있다. 지속적으로 AI엔진을 학습하고 음성 인식률을 개선하는 등 유지·보수도 KT가 맡는다.
KT는 에이센 클라우드를 활용하면 생산성은 15% 늘어나고, 비용은 30%까지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금융권이나 대기업은 구조상 아직 구축형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적게는 50명에서 수백명에 달하는 상담사를 가진 중견 기업에게는 구독형 AICC가 매력적인 선택지다.
일반적으로 온프레미스(구축형)에서 클라우드 솔루션으로 옮겨갈 경우 보안 사고에 대한 우려도 따라붙는다. KT는 일찍이 공공 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도록 AICC 서비스 최초로 CSAP(클라우드 보안인증)을 획득했다. 박 상무는 "보안 문제는 보호 조치를 충분히 하지 않아서 일어나는 일이며, 보안 인증을 완벽하게 갖춘 클라우드로 갈 경우 보안이 더 탄탄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KT AICC의 종착지는? 보고 듣는 디지털 휴먼
AI컨택센터에서 일하는 상담사의 감정노동을 줄이고 일부는 고객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다른 업무에 투입되기도 한다. AI가 단순 반복 업무를 대체하게 되면, 기존의 상담사들은 AI에게 고객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학습을 돕는 전문인력인 '봇마스터'가 되는 식이다. 박 상무는 "상담사 100명이 대응하다가 AI기술로 30명을 절감할 수 있게 될 경우, 30명은 상담보다 더 의미 있는 업무를 할 수 있게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KT의 AICC는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박 상무는 AICC 서비스가 이미지, 음성, 텍스트 등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멀티 모달'을 학습하는 미래를 꿈꾸고 있다. 소위 '디지털 휴먼(가상 인간)'이 고객과의 상담을 진행해주는 방식이다. 박 상무는 "AICC를 통해 고객을 보조해주는 것을 넘어 생산성을 높이고,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센터, 채널로 나아가자는 욕심이 있다.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플랫폼 사업자가 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