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이 동요하면서 환율 변동성이 커지고 있는 것 같지만,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의 중장기 추이를 보면 그냥 그 자리에 있다(아래표 참조). IMF 사태가 진정되면서 천문학적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한 우리나라 통화가 만성적 적자 국가 통화가치가 상대적으로 변함이 없다는 사실은 무슨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어쩌면 성장의 성장을 거듭했어도 사람들의 삶의 질은 그만큼 향상되지 않았다는 하나의 반증인지도 모른다.
한국 경제는 성장 과정에서 수출경쟁력 지원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심지어 일본에 수출한다고 상당기간 특정 수산물의 국내소비를 전면 금지시킨 일도 있었다. 77년 수출 100억 달러를 처음 기록했을 때, 우리나라가 후진국에서 벗어나 곧 선진국 문턱에 다다를 것 같아, 먹지 않아도 배부를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환율'은 줄곧 수출경쟁력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여겨지고 물가문제는 뒷전에 있었다. 미래를 위하여 현재를 유보하자는 이야기였다. 심지어는 “환율주권”이라는 조어까지 등장하였다
수출지상주의는 과거 한국경제의 성장 동력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오늘날 빈부격차 내지, 가계부실 원인의 하나가 된 것도 사실이다. 소비자들은 고물가를 감수하고 또 저임금 외국노동자들이 한국인의 일자리를 잠식해도 참아야 했다. 대외경쟁력 향상의 결과로 2000년 이후 최근 12년 까지만 약 3350억불의 경상수지 흑자를 시현하였는데 이는 국내총생산의 30%를 초과하는 규모다. 반면에 상대국 미국은 한국과 달리 경상수지 적자가 만성화되어 그 허용한계를 벗어 난지 오래 됐다.
양국 간에 기초경제여건이 이렇듯 상반되게 변화하였는데도 원화의 대달러 환율(kw/$)은 거의 변동이 없다는 사실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환율이 2000년 연평균 1130원에서 2011년에는 연평균 1108원으로 무시할 정도로 변화가 없다는 것은 하나의 미스터리다. 외환시장에서는 단기적으로는 경제외적 변수가 작용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상대국간의 기초경제여건이 반영되어야 함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돈의 대외가치를 나타내는 환율은 결국 상대국과의 비교 경제력을 표상하여야 한다.
그런데도 경상수지 흑자누적국과 적자누적국가의 대외 화폐교환가치가 이렇게 고정되어 있다시피 한 까닭은 무엇일까? 환율조율의 결과인가 아니면 가격기구에 의한 자연스러운 결과인가? 이것이 한국경제에 약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독이 될 것인가?
일을 많이 하고 절약하는 나라의 화폐가치가 일을 적게 하고 낭비하는 나라의 화폐가치보다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그래야 근검절약하는 사람들의 후생과 복지가 개선을 통하여 열심히 일할 동기가 부여되고 결과적으로 더 큰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또 화폐의 대외가치가 적정하게 평가되어야 물가불안 같은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
만약 환율이 적정수준을 벗어나면 현재 또는 미래의 환차익을 노리는 외국인 증권투자 자금 내지 핫머니의 과잉 유입과 이에 따른 폐해가 발생한다. 외화의 과잉유입은 어느 순간에 돌발적 유출로 기초경제여건 변화와 관계없이 금융부문은 물론 실물부문까지 교란하게 된다. (참고로 국제투자대조표에 따른, 외국인 포트폴리오 투자 자금은 2012년 말 현재 주식 3600억 달러, 채권2200억 달러로 총 580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미국과 한국의 상대적 실물경제 환경이 크게 변동하였는데 상대국간 환율이 변동하지 않았다는 것은 경상수지 외에 다른 부문에서 적자를 내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미스터리의 진실은 무엇인지 다음 기회에 들여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