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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싸움에 등터진 프렌치 프라이

  • 2013.07.05(금) 10:07

"화를 낼 때도 기술이 필요하다"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졌다. 10년 전 미국과 이라크 전쟁 유탄이 엉뚱하게 감자튀김, 프렌치 프라이(French Fries)로 튀었다.


프랑스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 계획에 반대하며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다. 중동지역에서 미국과 프랑스의 이해관계가 엇갈렸기 때문이다. 이런 프랑스가 얼마나 얄미웠는지 미국 정치인들은 프랑스와 관련된 일이라면 무조건 싫어했다.


급기야 하원에서 일이 벌어졌다. 의회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있던 봅 니 하원의원이 구내식당 메뉴 중 감자튀김의 이름을 바꿔버렸다. 프랑스식 감자튀김이라는 프렌치 프라이에 입맛이 떨어진다며 자유의 감자튀김이라는 프리덤 프라이(Freedom Fries)로 고친 것이다.

 

사람이 개를 물었다는 소식만큼이나 흥미로운 뉴스거리를 언론이 그대로 내버려 둘 리 없다. 뉴욕타임즈를 비롯해 미국의 주요 언론이 화젯거리로 보도하면서 미국과 프랑스 정부가 말싸움을 시작했다. '프렌치 프라이' 논쟁이다.

미국은 당연히 프랑스에서 비롯된 음식이라고 주장했지만 워싱턴 주재 프랑스 대사관에서는 비공식 반박자료를 발표하면서 "사실은 프랑스 음식이 아니다"라며 미국인의 무지를 조롱했다. 프렌츠 프라이는 햄버거를 먹는 미국인의 음식이고, 원조도 프랑스가 아니라 벨기에라며 엉뚱하게 감자튀김에 분풀이하지 말라고 꼬집었다.


프렌치 프라이는 프랑스의 형용사 프렌치 때문에 당연히 프랑스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기원은 확실치 않다. 프랑스 거리음식에서 발달했다는 설도 있고, 원조는 벨기에인데 프랑스를 거쳐 영국과 미국으로 퍼졌다는 설, 프랑스 대사를 지낸 벤자민 프랭클린이 집에서 손님에게 튀긴 감자를 대접하며 프랑스식으로 튀겼다고 소개한 것에서 비롯됐다는 설 등이 있다.

사실 '프렌치'라는 형용사가 프랑스를 뜻하는 단어인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다. 비교적 큰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프렌치에는 "가늘게 썰다. 갈비에서 뼈를 발라내다"라는 뜻도 있다. 그러니까 프렌치 프라이가 프랑스식이 아니라 가늘게 썰어서 튀긴 감자라는 뜻에서 생긴 이름일 수도 있다.


미국과 프랑스 사이의 감정적인 말싸움은 이라크 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수면 아래로 잦아들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미국 하원의 구내식당에서도 감자튀김 메뉴를 슬그머니 프리덤 프라이에서 다시 프렌치 프라이로 되돌려놓았다.

감자튀김 논쟁이 사람들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무렵인 2005년 2월, 프렌치 프라이가 또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부시 미국 대통령과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사이의 정상회담 때, 백악관 대변인이 두 정상의 만찬 메뉴로 특별히 프렌치 프라이를 준비했다고 발표했다. 감자튀김을 양국 화해의 상징으로 삼았던 것이다.


국제정치에서 감자튀김이 때로는 불화의 상징으로, 화풀이의 대상이 됐지만 때로는 화해의 제스처로 화합의 아이콘으로 등장했으니 얼핏 아이들 장난처럼 보이지만 사실 프렌치 프라이에는 고도로 세련된 미국과 프랑스의 외교술이 녹아 있었다.

 

유치해 보이지만 프렌치 프라이를 가지고 서로 비난의 핑퐁을 벌이며 불편한 심기를 내뱉었을 뿐 직접적으로 상대국의 감정을 자극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상대편에게 화를 내면서도 고도로 테크닉을 발휘했던 것이다. 화내는 데도 기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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