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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와 정치

  • 2014.01.10(금) 08:33

1664년, 이자성이 농민봉기를 일으켰다. 반란군을 이끌고 베이징으로 쳐들어온 이자성은 마침내 명나라를 무너트린 후 순(順)나라를 세우고 자금성에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오랫동안 천하를 호령하지는 못했다. 청군(淸軍)이 명나라 장수 오삼계의 도움을 받아 만리장성을 돌파해 공격했기 때문이다. 이자성은 결국 42일 만에 자금성에서 쫓겨났다.

봉기 초기에 세금을 줄여주고 토지를 재분배하겠다는 약속으로 농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던 이자성은 왜 그렇게 맥없이 쫓겨났을까? 막강한 청나라 군사력으로 인한 불가항력이었을까?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자성이 쫓겨난 이유는 만두 때문이었다. 이자성은 원래 중농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가세가 기울어져 어렸을 때는 양 키우는 일을 했고, 커서는 역참을 지키는 병졸이 됐다.

가난하게 자란 이자성은 평소 만두를 먹어보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농민들에게 만두는 일 년에 한 번, 설에나 먹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자금성을 점령하고 황제가 된 이자성은 만두를 먹어보고는 그 맛에 반해 밤낮으로 만두를 42번이나 먹었다.

하늘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옥황상제가 화가 났다. 만두는 일 년에 한 번 설날에만 먹도록 만든 음식인데 황제가 됐다고 분수를 잊고는 마구 먹었기 때문이다. 원래 이자성은 42년 동안 황제를 할 운명을 타고 태어났는데 겨우 42일 밖에 황제를 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만두를 함부로 먹어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민담이지만 중국인의 만두에 대한 애정과 이자성이 왜 민심을 잃게 됐는지 배경이 담겨있다. 농민 봉기라는 초심을 잃고 권력을 잡기 전과 후의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농민을 지지기반으로 혁명을 일으킨 중국 공산당이 이 이야기를 반면교사로 삼았다. 대륙을 장악하기 전, 공산당 지도자들은 "만두를 먹고 천하를 잃다(吃餃子丢江山)"라는 말을 수첩에 적어 갖고 다니며 민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송나라 인종은 왕안석을 기용해 부국강병책을 펼친 황제다. 갖가지 개혁정책을 펼치는 가운데 최고 학부인 태학을 세워 전국 각지의 인재를 모아 공부를 시켰다. 성적이 좋으면 바로 발탁해 벼슬길을 열어 주기도 했다. 학생들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지 어느 날, 태학을 방문해 학생들이 먹는 음식까지 점검했을 정도다. 이때 먹어본 음식이 만두였는데 인종이 맛을 보고는 만족해서 이렇게 선비를 양성하면 부끄러울 것이 없겠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때부터 태학 만두가 유명해졌다. 학생들이 방학으로 고향에 돌아갈 때 만두를 싸가지고 갖고, 황제가 친히 먹고 극찬한 만두라고 자랑하면서 만두에 '일품(一品)'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평범한 만두에 거창한 스토리를 만들어 붙였는데 이 이야기에서도 중국인의 만두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이자성이 '만두 때문에' 천하를 잃은 지 정확하게 350년이 지난 올해 초, 시진핑 총서기가 만두를 먹어 화제가 됐다. 베이징 시내의 만두집을 찾아 시민과 함께 줄을 서서 만두를 사 먹었는데 예전의 지도자와 달리 서민과 함께 호흡하는 모습에 중국인들은 박수를 보냈다.

별 것 아닐 수 있는 만두 하나를 갖고도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고 또 잃을 수도 있다. 지도자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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