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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B QE를 둘러싼 6가지 이슈

  • 2014.04.14(월) 13:59

금융위기 이후 통화정책의 키워드를 꼽는다면 '확실성'이다. 이를 위한 중앙은행의 노력은 '커뮤니케이션 강화를 통한 경제주체의 기대심리 조작'으로 표현될 수 있다. 구체적 정책수단으로는 '포워드 가이던스(선제 지침)'를 들 수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과거에 말했듯이 "중앙은행의 의도에 대해 대중들이 이해하고 신뢰하면 통화정책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통화정책의 새 패러다임은 지난 2012년 7월말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무엇이든 하겠다" 선언을 통해 그 강력한 파워가 입증됐다. 드라기 선언 이후 그 어떠한 투기세력도 유로존 와해에 베팅하는 무모한 행동에 나서지 못했고, 유로존의 경제는 극적으로 턴어라운드 하게 됐다.

 

그러나 통화정책의 방향을 예측하는 것은 여전히 고난도의 작업이기 일쑤다. '추가 부양' 말고는 다른 선택이 있기 어려웠던 지난 2012년과는 달리, 지금은 '더딘 성장회복'의 국면에 들어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성장회복은 중앙은행들로 하여금 초고도 부양정책으로부터 빠져 나오는 출구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반면, 그 더딘 속도는 추가적인 지원, 적어도 연장된 지원의 불가피성을 역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ECB의 양적완화를 둘러싼 작금의 모호함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할 의사가 분명히 있어 보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하겠다는 생각까지는 아닌 듯한 게 ECB가 지금 보이고 있는 태도다. 이런 모호함은 ECB QE를 둘러싼 여러 가지 복잡미묘한 이슈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 이슈들을 하나씩 짚어 봤다.

 

1) 유로화의 절상과 유로존의 저물가

 

지난 3월중 유로존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5%에 불과했다. ECB의 공식적인 물가안정 목표("2.0%에 근접하는 수준")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당장 디플레이션 위험을 가리키고 있지는 않지만, 이러한 저물가가 장기화되는 경우에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 ECB와 IMF, 미국의 공통된 판단이다. 장기적인 저물가(lowflation)가 경제주체들의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까지 낮춰 디플레이션과 유사한 소비 및 투자 저하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물가 현상에는 유로화 강세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드라기 총재가 지난달 공개한 걸 보면, 지난 2012년 이후 올 2월까지 물가상승률이 1.9%포인트 낮아지는 과정에서 유로절상이 야기한 몫이 0.4%포인트에 달했다. 유로화가 절상되지만 않았더라도 물가상승률은 1% 안팎 수준은 됐을 거라는 얘기다.

 

따라서 ECB가 정말 행동에 나설 것인지 여부는 유로화 환율 움직임에 달렸다. 유로화가 특정 수준, 예를 들어 1.4달러(?), 이상으로 더 절상될 경우 ECB가 보다 구체적인 액션에 돌입할 수 있다.

 

다만, 지난 3월 저물가 현상이 심화된 배경에는 부활절 위치이동에 따른 불규칙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4월 들어서는 물가상승률이 다시 0.9%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경우 ECB의 액션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 있다.

 

물가상승률의 반등은 유로화 환율에 이중적인 시사점이 있다. 물가의 회복은 이론적으로 유로화의 가치를 절하하는 재료가 된다. 그러나 ECB의 액션 가능성이 희박해진다는 점은 유로화 가치를 끌어 올리게 된다.

 

2) 미국의 '리플레이션 공조' 압력

 

제이콥 류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11일 국제통화기금(IMF) 연설에서 유로존에 추가부양을 촉구했다. "미국은 유로존의 낮은 물가와 아주 미미한 성장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성장을 촉진하고 물가저하를 막기 위한 추가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미국 연준의 '천천히 조금만 금리인상' 출구전략도 간접적으로 유로존을 압박하고 있다. 시장이 우려했던 것과는 다른 아주 완만하고 더딘 미국의 출구전략은 역설적으로 금융환경에 '추가적인 부양' 효과를 발생시키고 있다. 이는 달러화 가치를 절하시켜 유로화에 절상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러한 메시지를 드라기 총재도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주 IMF 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그는 기자 간담회에서 "유로화 강세는 추가적인 통화부양책을 요구할 수 있다. 우리의 통화정책 기조를 (다른 나라의 그것과) 엇비슷하게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3) '저물가 대응'은 빌미, 속내는 '성장 촉진'

 

표면적인 우려와 달리 유로존 정책당국은 내심 최근의 저물가 현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드라기 총재의 발언이다. 그는 지난 2월 회견에서 "저물가는 유로존 내부의 상대가격 조정(relative price adjustment)으로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독일의 물가가 안정돼 있는 가운데 스페인의 물가가 대폭 떨어지면, 독일에 대한 스페인 산업의 가격 경쟁력은 높아진다. 이는 스페인의 통화가치를 절하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발생시켜 경제회복을 돕게 된다. 스페인의 경상수지가 흑자로 급전환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이달 초 기자회견에서 드라기 총재는 "저물가가 실질 소득을 향상시켜 유로존 내수회복을 지원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지난주 IMF 총회에 참석한 예룬 다이셀블룸 유로그룹(유럽재무장관회의) 의장은 "사람들이 자꾸 떠들어대지만 않으면 저물가는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우려하고 있는 것은 저물가 그 자체가 아닌, 너도 나도 디플레이션 위험을 언급함으로 인해서 실제로 경제주체들이 그러한 기대심리를 갖게 되는 자기실현적(self-fulfilling) 현상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MF에 참석했던 다수의 ECB 정책위원들은 드라기 총재와 함께 입을 모아 '추가 액션' 가능성을 시사하는데 노력했다. 당장은 유로화의 절상을 막으려는 구두개입인 동시에, 속으로는 성장촉진을 위한 추가부양을 해 보고 싶은 희망이 내포돼 있는 듯하다.

 

4) 마이너스 금리와 물가 성장 촉진용 QE

 

ECB가 가동할 수 있는 추가 부양책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은행들이 ECB에 맡겨둔 초과 유동성에 대해 마이너스 금리를 매기는 것과 양적완화(QE)다. 지난 주말 ECB 고위 인사들의 워싱턴 발언을 종합해 보면, ECB는 QE에 나서기 앞서 마이너스 금리를 먼저 시행할 듯한 분위기다.

 

마이너스 금리제도는 이론적으로 은행들로 하여금 유로화 초과유동성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경제적으로 강제하는 효과가 있다. 은행들이 초과유동성을 해외 자산운용으로 돌리게 되면 유로화는 절하될 수 있다. 그러나 유로존과 같은 세계 제2의 준비통화권이 마이너스 금리제도를 운영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ECB는 이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아주 상징적인 수준으로만 금리를 인하하는데 그칠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상징적인 마이너스 금리제도는 오히려 QE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 성격이 강할 것이다. 문제는 QE가 과연 유로화의 절하를 이끌어낼 수 있느냐는 점이다.

 

현재 ECB가 구상하고 있는 QE는 국채매입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식과는 달라 보인다. 주로 중소기업 여신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ABS를 사들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양상이다. 이는 가장 취약한 경제부문에 직접적인 수혈을 함으로써 성장을 촉진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는 유로화에 오히려 절상압력을 가할 수 있다. 유로존의 실질 경제성장 전망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유로화 절상이라는 ECB QE의 역효과는 프랑스나 남유럽 주변국가의 수출 경쟁력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다만, 이들의 중소기업을 살리는데 정책의 초점이 맞춰진다면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5) 독일의 묵인과 차별적 QE

 

이달 초 ECB 정책회의에서는 주목할 만한 일이 있었다. QE에 대해 독일 조차도 반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는 향후 ECB의 QE가 어떤 양태로 전개돼 나갈 것인지를 시사하는 중요한 포인트다.

 

독일의 동의(또는 묵인)는 ECB의 QE가 화폐증발에 목표를 둔 전통적인 국채매입 방식이 아닐 것임을 내비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옌스 바이드만 독일 중앙은행 총재는 최근 마이너스 금리제도와 ABS 매입 방식의 QE 순의 선호도를 밝힌 바 있다.

 

독일의 동의는 또한 ECB QE가 비대칭적이고 차별적인 형태로 전개될 것임을 시사한다. 독일처럼 경제와 물가가 상대적으로 강하고 자산거품 우려가 있는 곳에는 QE자금이 상대적으로 적게 지원될 것이다. 반면, 남유럽처럼 저성장에 허덕이는 곳으로는 보다 적극적인 수혈이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프랑스 출신의 베누아 퀘르 ECB 집행이사는 지난 13일 "유로존의 QE는 양(quantity)보다는 가격(price)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회원국 각국의 각종 금리편차를 줄이는데 초점을 맞출 것이며 이를 위해 각국별로 매입하는 자산의 종류와 규모가 달라질 것이라는 뜻이었다.

 

6) 미국 경제회복세의 가속도 여부

 

만약 미국경제의 회복세가 다시 강해진다면 ECB QE 논의 구도에도 큰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미국경제의 가속도는 달러화의 강세와 유로화의 약세를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유로존의 핵심 교역 상대국인 미국의 성장강화는 ECB의 추가적인 성장지원 필요성을 낮추기도 한다.

 

물론 유로존의 이러한 '묻어가기'에 대해 미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여부도 변수가 된다. 미국이 직간접적으로 '리플레이션 공조' 압력을 지속할 경우 ECB는 고뇌에 찬 선택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미국경제의 가속도 시나리오가 현실화되지 못할 경우에는 ECB의 추가 액션 가능성이 높아진다.

 

안근모 글로벌모니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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