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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의 양적긴축은 이미 시작됐다

  • 2014.04.02(수) 10:01

지난달 31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재닛 옐런 의장 발언이 국제금융시장을 또 한 바탕 휘저어놨다. 시종일관 완화적인 단어와 문구와 논리 및 화법을 펼침으로써 연준의 통화정책이 얼마나 경기부양에 기울어 있는지를 강력히 역설했고, 금융시장은 고개를 끄떡였다.

 

옐런 의장의 연설은 사실 지난 19일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서나 자신의 기자회견 발언을 재확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시장은 매파적 뉘앙스를 일절 피한 채 오로지 부양의 필요성에만 초점을 맞춘 옐런 연설의 행간에서 연준의 의지를 믿을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주가는 오르고 달러는 떨어졌으며, 단기금리도 하락했다.

 

옐런이 왜 이토록 완화적인 단일 톤의 연설을 행했는지 그 배경은 '해석'의 영역에 남아 있다. 옐런은 아마도 지난 19일 기자회견 당시 자신의 입에서 나온 '6개월' 발언이 매파적으로 해석되고 있는 사실을 불편하게 생각한 듯하다. 옐런 의장은 이번 연설에서 "저금리가 장기간 제공될 것"임을 핵심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시장의 오해를 시정했다. 이렇게 신속한 시정에 나선 배경 역시 ‘해석’의 영역인데, 이에 관해서는 최근 찰스 플로서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설명한 바 있다.

 

지난 3월 FOMC는 "고용과 물가가 연준의 이중 책무에 근접하더라도 기준금리는 얼마 동안에는 장기 균형수준보다 낮게 유지될 것"이라고 새롭게 약속했다. 예를 들어 FOMC 위원들은 오는 2016년말이면 실업률이 완전고용 수준인 5.4%로까지 떨어지고 물가상승률은 목표치(2.0%) 부근인 1.9%로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기준금리는 균형수준(4%)보다 훨씬 낮은 2.25%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장기 저금리 유지 정책을 약속한 배경에 대해 플로서 총재는 두 가지 배경을 들었다. 일부 위원들은 그 때가 돼서도 "경제의 발목을 잡는 후유증(persistent headwinds)"이 상당부분 남아 있기 때문에 정책금리를 계속 낮게 유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듯하다고 말했다. 옐런 의장이 이 진영에 속한다.

 

플로서 총재 본인은 다른 진영이었다. 통화정책을 정상화해 나가는 과정에서 금융시장이 의도하지 않은 큰 충격에 빠질 가능성을 우려해 매우 더디고 완만한 출구전략에 동의하게 됐음을 그는 우회적으로 밝혔다. 아마도 전자(前者)의 진영 역시 비슷한 속내를 공유하고 있을 듯하다. 즉, '스무스한' '출구전략'이라는 두 단어가 똑같은 무게로 연준 정책입안자들의 뇌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연준이 우려하고 있는 출구전략의 과정은 단순히 금리를 올려 나가는 것만은 아니다. 연준이 과거에 공표해 놓은 출구전략 원칙에 따르면, 금리인상 기조에 맞춰 통화량을 줄이는 양적긴축이 병행될 예정이다. 그러한 과정은 아직도 일년 이상이나 남아 있는 상태임에도 연준이 벌써부터 윤활유를 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연준은 이미 양적긴축을 시작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연준은 한 편에서는 양적완화를 지속하면서도 다른 한 편에서는 본격 시행에 앞선 '시험(test)'이라는 명목으로 통화량을 대규모로 거둬들이고 있다.
 


이 같은 작업은 한쪽 발로 가속페달을, 다른 발로는 브레이크를 밟는 운전법에 비유할 수 있다. 연준에 따르면, 지난 8월부터 11월까지 연준은 양적완화를 통해 총자산 규모를 3541억 달러 늘렸다. 이에 따라 미국 은행시스템의 지준예치금은 3675억 달러 증가했다. 연준이 푼 돈 이상으로 유동성이 풀린 셈이다.

 

그러나 지난해 12월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 3월말까지 넉 달간 연준 총자산이 3011억 달러 증가한 반면, 지준예치금은 1228억 달러밖에 늘지 않았다. 은행 시스템에 공급되는 초과 유동성이 지난해 가을에는 월평균 919억 달러에 달했으나, 지금은 월평균 307억 달러 밖에 되지 않는다. 월간 지준 순증가 규모가 약 600억 달러 이상 축소된 셈이다.

 

지난 1월부터 양적완화 규모를 줄이는 이른바 테이퍼(taper)의 영향은 미미하다. 연준의 대차대조표 확대속도는 지난해 가을 월평균 885억 달러에서 최근 4개월간에는 753억 달러로 130억 달러 가량 줄어든 데 불과하다.
  


연준이 월평균 753억 달러 규모로 자산을 확대했는데도 불구하고 은행 지준이 월평균 307억 달러밖에 늘지 않는 것은 연준이 그 차액만큼을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 수단은 '역 레포(RRP : reverse repurchase agreement)'다. '역 레포'란 연준이 보유한 채권을 금융기관에게 일정 시일 뒤에 되사는 것을 조건을 매각하는 거래를 말한다. 우리나라 한국은행이 행하는 환매조건부 채권매각과 같은 개념이다. 이 조작을 시행할 경우 통화량은 일정기간 흡수된다. 지난달 26일 현재 연준이 역레포를 이용해 흡수해 놓은 통화량은 1978억 달러에 달한다. 지난해 12월부터 흡수 규모를 두 배 가량 늘려 놓았다.

 

또 한 가지의 통화흡수 수단은 '기간물 예금(term deposits)'이다. 한국은행의 통화안정증권 발행과 유사한 개념인데 아직은 시험기간이라 만기가 매우 짧다. 지난달 26일 현재 연준은 이 수단을 이용해 154억 달러를 흡수해 놓고 있다. 이 두 가지 수단으로 묶어 놓은 자금은 총 2132억 달러로, 일년 전(956억 달러)에 비해서 1200억 달러 가량 확대됐다.

 

이는 연준의 테이퍼링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월간 100억 달러씩 감축)보다 훨씬 고강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은밀한 양적긴축(stealth quantitative tightening)은 아직 금융시장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 옐런 의장의 이번 연설처럼 연준이 '원만한(?)'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한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연준이 계속해서 테이퍼링을 해 나가고 계속해서 양적긴축 규모를 늘려나가게 되면 언젠가는 금융시스템이 자각할 수 있는 단계를 맞을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화두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1. 연준의 출구전략은 이미 시작되었다.

 

2. 연준은 출구전략 과정에서 나타날 지 모를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우려하고 있다.

 

3. 그래서 연준은 금리를 필요이상으로 늦게 올리는 고도의 완화적 스탠스를 견지하고 설파하려고 한다.

 

이 세 가지 화두가 갖는 의미는 서로 상충하고 있다. 연준의 의도대로라면 출구전략은 매우 완만할 것이며 금융시장과 실물경제를 계속 부양할 것이다. 그러나 연준이 우려하고 있듯이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초과 유동성 공급량을 급격히 줄여나가고, 급기야 통화량 자체를 축소해 나가는 것 자체가 양적완화와 마찬가지로 전례가 없는 실험이기 때문이다.

 

안근모 글로벌모니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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