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달 이른 발표
최근 한국TV홈쇼핑협회가 '2024년 TV홈쇼핑산업 업황 분석'이라는 자료를 내놨습니다. GS리테일의 GS샵, CJ ENM 커머스부문(CJ온스타일), 현대홈쇼핑, 롯데홈쇼핑, NS홈쇼핑, 홈앤쇼핑, 공영홈쇼핑 등 7개 TV홈쇼핑 사업자의 거래액, 매출액 등 주요 수치들을 모은 자료였는데요. 협회가 이런 데이터를 내놓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공개 시점은 꽤 이례적이었습니다. 예년보다 거의 두 달 이상 이른 발표였기 때문입니다.
원래 한국TV홈쇼핑협회는 매년 6월 말~7월 초쯤 전년도의 'TV홈쇼핑 산업 현황' 자료를 책자 형태로 발간합니다. 이는 매년 6월 방송통신위원회가 발간하는 '방송사업자 재산상황공표'와 관련돼 있습니다. 방송사업자 재산상황공표는 방송사, 케이블TV와 같은 종합유선방송사업자, TV홈쇼핑 등 방송사업자들의 매출, 광고, 종사자 수 등을 종합한 자료입니다. 한국TV홈쇼핑협회는 재산상황공표에서 송출수수료, 유료방송 매출 비율 등 데이터를 인용해 자료집을 만들어 6월 말쯤에 내놓는 거죠.

그런데 올해 평소보다 두 달이나 이른 시점에 자료를 낸 건 그만큼 TV홈쇼핑 업황이 어려운 시기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특히 올해는 GS샵(당시 한국홈쇼핑), CJ온스타일(당시 39쇼핑) 등이 1995년 개국한지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선제적으로 관련 의제를 선점하려는 의도로도 풀이됩니다.
최근 발표한 자료는 6월의 '정식' 자료집보다 더 간소한 형태이긴 해도 홈쇼핑사들의 매출이 얼마나 줄었고, 송출수수료 부담이 얼마나 커졌는지 정도의 주요 수치는 모두 포함돼 있습니다. 특히 이 자료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올해는 개국 30주년으로 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송출수수료 제도 마련과 편성판매‧수수료율 등 유통 관련 재승인 규제의 개선이 절실하다"는 협회 입장이었습니다.
골칫거리 송출수수료
TV홈쇼핑업계가 요구하는 첫 번째는 송출수수료와 관련한 제도 마련입니다. TV홈쇼핑업계가 수년째 골칫거리로 여기는 첫 번째가 바로 송출수수료죠. 송출수수료는 TV홈쇼핑사가 케이블TV, 위성TV, IPTV 등 유료방송사업자에게 채널을 배정받고 그 대가로 지불하는 비용을 말합니다.
송출수수료는 매년 인상되면서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는데요. 한국TV홈쇼핑협회에 따르면 7개 TV홈쇼핑의 송출수수료는 2020년 1조6750억원에서 지난해 1조9374억원으로 크게 뛰었습니다. 다행히 송출수수료의 전년 대비 인상률은 점차 하락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송출수수료는 2023년(1조9375억원)과 비교하면 비슷한 수준이죠.
문제는 TV홈쇼핑의 매출이 줄고 있다는 점입니다. 7개 TV홈쇼핑의 거래액(취급고)는 19조3423억원으로 2018년 이후 6년만에 20조원선을 밑돌았습니다. TV 매출액은 2조6424억원으로 2012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죠. 사람들이 TV를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TV 채널을 위해 내는 송출수수료 규모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게 TV홈쇼핑업계의 불만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TV에서 벌어들인 매출액 중 송출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73.3%에 달합니다. TV에서 1000원을 벌어 733원은 IPTV, 케이블TV에게 내줘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매년 TV홈쇼핑과 유료방송사업자들은 송출수수료 갈등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에도 CJ온스타일이 딜라이브, 아름방송, 씨씨에스충북방송 등 3개 유료방송사업자와 갈등을 겪으며 '블랙아웃(송출 중단)'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같은 사태를 중재하기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대가검증 협의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TV홈쇼핑사와 유료방송사업자간 송출수수료 협상이 지연되거나 요청이 있을 경우 운영되는 협의체인데요. 대가검증 협의체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건 맞지만 협상에 문제가 있을 때 작동하기 때문에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게 홈쇼핑업계의 의견입니다.
실질적 변화
홈쇼핑업계에서는 수수료 협상 갈등이 시작되기 전에 실질적으로 협상에 도움이 될만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대표적인 것이 유료방송사업자의 가입자 수치, 홈쇼핑 매출 등의 협상 관련 정보를 정부에서 미리 검증하고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일입니다.
현재 홈쇼핑과 유료방송사업자의 송출수수료 협상은 이들 수치를 서로 확인, 검증하는 일부터 시작한다고 하는데요. 이 수치들은 송출수수료 규모를 정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검증 과정에 너무 긴 시간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정부에서 반기마다 관련 수치를 발표하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두고 양측이 다툼을 벌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유료방송사업자는 TV홈쇼핑이 모바일에서 판매한 매출액 역시 TV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 매출액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요. TV홈쇼핑의 경우 일반 사무실이나 숙박업소 등에 설치된 케이블TV는 홈쇼핑 매출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식입니다. 이런 다툼을 줄일 수 있도록 정부가 공신력 있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준다면 실질적인 송출수수료 협상을 앞당겨 진행할 수 있겠죠.

TV홈쇼핑업계에서 기대하는 또 다른 변화는 재승인 규제에 관련돼 있습니다. TV홈쇼핑은 방송법에 따라 승인을 받아야 하는 사업입니다. 그런데 TV홈쇼핑은 특이하게 방송과 관련된 규제 외에 '유통'과 관련된 규제들을 받습니다. 중소기업 편성 비중, 중소기업 판매수수료 인하 등이 대표적입니다. 홈쇼핑들은 재승인을 받을 때마다 편성 비중을 일정 수준 올려야 한다거나 판매수수료를 낮춰야 한다는 약속을 해야 하는데요.
정부는 홈쇼핑이 7년마다 재승인을 받을 때마다 이 약속을 지켰는지 확인합니다. 산술적으로는 약속 이행 여부를 알 수 있지만 실제로 납품업체들이 수수료율 인하나 편성비중 확대 등을 체감하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게다가 홈쇼핑업체들은 이들 규제에 매여있는 탓에 상품 구성에 대한 제약을 받고 있죠.
또 이 규제들은 홈쇼핑 '호황기' 때의 것들이 그대로 유지된 것이라는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그래서 홈쇼핑업계는 방송법에 따라 승인을 받는 사업인 만큼 '방송을 어떻게 하는지'가 본질적인 재승인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TV홈쇼핑 시장은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TV홈쇼핑은 중소기업의 중요한 판로 중 하나인만큼 변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정부와 TV홈쇼핑, 유료방송사업자들이 함께 고민해 TV홈쇼핑 시장을 질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