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년이면 홈쇼핑도 변한다
잠시 옛날 이야기를 해 볼까요.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2010년쯤으로 시계를 되돌려 봅니다. 당시 홈쇼핑 업계의 화두 중 하나는 스마트폰 시장(모바일) 진출이었습니다. 스마트폰 등장 이전엔 'm커머스'라고 해서, 텍스트 기반의 모바일 쇼핑이 있었지만 제품을 눈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이 한계였습니다. 하지만 2010년 애플의 아이폰3GS, 삼성전자의 갤럭시S가 등장하며 모든 게 달라집니다.
이 해 CJ오쇼핑(현 CJ온스타일)을 시작으로 GS홈쇼핑(GS샵), 롯데홈쇼핑 등이 잇따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합니다. 당시 이들이 앱을 론칭하며 내세운 건 '핸드폰으로도 홈쇼핑을 볼 수 있다'는 VOD서비스의 도입이었습니다. 집이 아닌 외부에서도 홈쇼핑 방송을 보고 바로 전화로 주문할 수 있다는 거죠.

이게 벌써 15년 전의 일입니다. 요즘같은 기술 발전의 시대엔 까마득한 과거죠. 그동안 세상은 참 많이 발전했습니다. 갤럭시S 이야기를 꺼냈으니 갤럭시S로 비교해 보겠습니다. 2010년 출시된 갤럭시S는 4인치 화면에 800X480의 WVGA 화면을 장착했었습니다. 전면 30만 화소, 후면 500만 화소의 카메라와 16기가 내장 메모리를 탑재했죠.
최근 공개된 갤럭시S25 울트라는 6.9인치 화면에 3120X1440 화소의 다이내믹 아몰레드 2X 디스플레이를 탑재했습니다. 카메라는 전면 1200만 화소의 듀얼 픽셀 위상차 AF를, 후면엔 2억 화소의 광각 렌즈를 포함한 트리플 렌즈를 넣었습니다. 내장 메모리는 갤럭시S의 60배 이상인 1테라 메모리입니다. 같은 '스마트폰'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차이입니다.
그 사이에 '모바일 홈쇼핑'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최근에 한 홈쇼핑 업계 관계자를 만나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들었습니다. 이제 홈쇼핑사들은 절대 '모바일 홈쇼핑'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는 겁니다. '라이브 커머스 방송' 이라고 하죠. 라이브 커머스 방송(라방)과 모바일 홈쇼핑 사이엔 갤럭시S와 갤럭시S25 울트라 만큼의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도대체 뭐가 다르길래 이러는 걸까요.
핵심은 '콘텐츠'
초창기의 '모바일 홈쇼핑'은 말 그대로 TV홈쇼핑을 모바일로 보는 데 의의가 있었습니다. TV 홈쇼핑 방송을 그대로 옮겨온 영상이 출력되고, 소비자는 방송을 보다가 전화로 상품을 주문하는 일방향 시스템입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팔 지는 모두 판매자가 결정합니다. '모바일'보다는 '홈쇼핑'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최근의 라방은 다릅니다. 개인화 기기인 모바일의 특색에 맞춰 소비자와의 실시간 소통과 참여를 중심으로 새로운 쇼핑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실시간 소통을 통해 소비자의 궁금증을 즉각 해소하고 다양한 상품 옵션 중 나에게 맞는 상품을 찾아가는 맞춤형 쇼핑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죠.

쇼호스트와 스튜디오로 대표됐던 방송의 '룰'도 달라졌습니다. 기존 홈쇼핑 방송의 유일한 목적은 '상품을 파는 것'입니다. 주어진 시간 동안 쇼호스트는 허투루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이 제품을 왜 사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죠.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상품을 파는 게 유일한 미덕입니다.
반면 라방은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상품을 파는지 방송을 보지 않으면 아예 알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배우 안재현이 진행하는 라방 '잠시 실내합니다'를 들여다볼까요. 배우 안재현이 배우 김성은, 가수 한해, 전진&류이서 부부 등 셀럽들의 집을 방문하는 '집들이 방송'을 표방합니다. 유명인들의 집을 구석구석 살펴보는 재미가 있고요. 이들이 평소 사용하던 제품들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죠. 물론 쇼핑 방송인 만큼 이 제품들을 바로 구매할 수도 있지만, 이런 부분을 전면에 드러내진 않습니다.

방송 시간이 정해져 있는 홈쇼핑은 물량을 최대한으로 확보하는 게 중요하지만 '라방'은 적은 수량으로도 짧은 방송이 가능하다는 것도 차이점입니다. 덕분에 시장에서 막 떠오르는 신진 브랜드를 발빠르게 소싱하기 좋습니다.
특히 패션·뷰티·리빙 등 희소성을 기반으로 브랜드 가치를 키우려는 상품군의 신규 브랜드를 확보할 수 있게 됐죠. CJ온스타일의 경우 지난해 신규 입점 브랜드가 전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800여 개에 달했는데요. 기존 홈쇼핑 방식을 고수했다면 달성할 수 없었을 숫자입니다.
핵심은 콘텐츠입니다. 라이브 커머스 방송에선 콘텐츠를 만드는 게 우선이고 쇼핑은 그 뒤에 따라오는 부가적인 아이템입니다. 이쯤되면 모바일 홈'쇼핑'이란 용어를 쓰지 않는 이유를 알 만 합니다. 사실 이들은 '홈쇼핑사'라는 이름도 떼려 하고 있습니다. '영상 커머스 기업'이 이들의 방향성입니다. 이들은 과연 홈쇼핑이라는 이름을 떼고 날아오를 수 있을까요. 또 한 번 15년 후를 기다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