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미는 '꽃의 여왕'으로 불린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꽃으로도 꼽힌다. 그래서인지 5월이 되면 전국 곳곳에서 장미를 주제로 한 많은 지역 축제가 열린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축제는 에버랜드의 장미축제다.
에버랜드의 장미축제는 1985년 시작된 국내 꽃 축제의 '원조'다. 한국에서 가장 긴 역사를 지닌 최초의 꽃 축제라는 점 말고도 에버랜드 장미축제만의 특징이 있다. 바로 에버랜드가 자체 개발한 다채로운 '에버로즈'를 축제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다. '꽃바람 이박사'로 유명한 이준규 삼성물산 리조트사업부 식물컨텐츠그룹장과 만나 에버랜드의 장미 이야기를 들어봤다.
장미축제를 자체 품종으로
전 세계에는 약 4만 여종의 장미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대다수는 19세기 말 이후 약 150여 년에 걸쳐 새롭게 만들어진 품종이다. 이렇게 다양한 품종이 존재하는 만큼 각 지역의 기후와 토양에 맞는 장미를 골라 심는 게 편한 길일 수 있다. 에버랜드도 1985년 장미축제를 시작한 이후 30년이 넘도록 100% 해외 품종으로만 꽃을 피웠다.
이 그룹장은 "1985년 장미축제가 시작된 후 30년 이상 100% 해외 품종만 선보이는 점을 에버랜드 내부에서는 안타깝게 생각했다"며 "2013년 당시 '우리 품종이 없으면 단순한 꽃 축제일뿐 문화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진 경영진들의 의지가 반영돼 처음으로 장미 품종 개발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1976년 자연농원(에버랜드) 개장 당시 "언젠가 꽃이 사람들의 즐길거리가 되고 그 즐길거리가 우리의 문화가 될 것"이라던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생각을 잇기 위해서였다.

에버랜드는 2013년 수목 소재 연구 파트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장미 육종을 시작했다. 장미는 다른 식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종간 교잡이 원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도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에버랜드에도 장미 전문가들이 있었지만 그 동안에는 수입한 장미를 심고 전시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맨땅에 헤딩'을 하는 식이었다고 이 그룹장은 전했다.
장미를 육종할 때는 일단 육종 목표를 세운다. 이 그룹장은 "에버랜드의 육종 목표는 동해(凍害), 병충해에 강하면서 향기가 좋은 정원용 장미를 개발하는 것이었다"며 "우리나라 품종들은 대부분 절화용 장미여서 정원에 심기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 육종 목표에 맞는 조합의 장미 두 종류를 고른다. 하나는 모본, 즉 '엄마'와 같은 역할을 하고 다른 하나는 부본, 즉 '아빠'와 같은 역할을 한다. 붓을 이용해 이 두 장미를 임의로 교배를 시킨 후 씨앗이 나오면 이를 파종한다.

이 그룹장은 "사람이 자식을 낳으면 자식과 부모가 똑같이 생기지 않고 형제들끼리도 모두 다르게 생겼다"며 "식물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교배를 통해 얻은 씨앗이 모두 다른 특징을 가진 개체로 자란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교배를 통해 1만개의 씨앗을 얻어 1만번을 파종하면 1만개의 서로 다른 장미가 자라난다. 이렇게 키운 만 명의 자식 가운데 가장 좋은 장미를 선별하고 여러 테스트를 거친다. 이 과정을 통과한 품종만 새 품종으로 등록하게 된다. 만 번의 도전을 통해 한 개의 품종을 만드는 셈이다.
에버랜드는 이런 과정을 포함한 3년의 육종 끝에 2016년 처음으로 '스위트 드레스' 등의 5개 품종을 국립종자원에 등록하는 데 성공했다. 이 품종들은 오후까지 강한 향을 내는 특징이 있다. 에버랜드는 이후 내한성과 내병성이 좋은 '저관리형' 정원용 장미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이 때 탄생한 것이 저관리형 정원용 장미인 '에버스케이프' 시리즈다. 에버스케이프는 에버랜드의 자체 품종을 대표하는 장미다. 이 역시 1만 번의 시도 끝에 탄생했다.
해외도 인정한 에버로즈
이렇게 에버랜드가 자체 개발한 에버로즈는 에버스케이프, 집 앞마당에 심기 좋은 '패밀리', 결혼식에 쓰기 좋은 '웨딩', 밝고 경쾌한 느낌의 '페스티벌' 등 4개 시리즈, 40종에 달한다. 이 중 36종은 국립종자원 등록도 마쳤다. 다음달 15일까지 열리는 장미축제 내 '빅토리아원'에서 에버로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에버랜드는 지속적으로 세계장미대회에 에버로즈를 출품하며 우리 장미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특히 '퍼퓸에버스케이프'는 내한·내서성, 연속개화성, 수세, 향기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지난 2022년 일본 기후세계장미대회에서 최고상인 금상을 비롯해 4개 상을 받았다. 이 상을 계기로 에버랜드는 장미의 일본 수출까지 성공했다. 최근 키무라 플래닝(Kimura Planning)과 퍼퓸에버스케이프의 일본 독점 판매 계약을 맺으면서다. 일본으로 국내 정원용 장미 품종이 수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에버랜드는 일본 수출을 위해 일본 내 품종보호출원을 완료 후 2년 여간 퍼퓸에버스케이프의 접목용 가지를 증식시켰다. 이 그룹장은 "장미에서 나오는 씨앗을 심으면 다르게 생긴 자식이 나오기 때문에 같은 품종을 얻을 수 없다"며 "그래서 같은 종을 얻으려면 삽목, 접목 등을 통해 장미를 '복제'시킨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증식시킨 퍼퓸에버스케이프의 접목용 가지가 지난 4월 일본으로 수출되기 시작했다. 에버랜드 자체 장미로 받은 로열티로 이제 수익까지 내게 된 셈이다. 이 그룹장은 "지금 일본에서는 장미가 잘 팔리는 시즌이 아닌데도 꾸준히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사가고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에버로즈는 로열티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에버랜드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에버랜드는 2022년 퍼퓸에버스케이프를 통해 향수를 출시하기도 했다. 또 에버랜드는 최근 경희대에 퍼퓸에버스케이프의 성분 분석을 의뢰했는데 광노화 방지 및 항산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받았다. 이 그룹장은 "이 연구 논문은 지난해 세계적 권위의 SCIE급 학술지에 등재되기도 했다"며 "앞으로 장미를 활용한 화장품이나 건강기능식품까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계속 성장하는 정원
에버랜드는 현재 새로운 장미를 계속해서 육종하고 있다. 이 그룹장은 "현재 장미 육종 목표는 돌가시나무, 해당화, 찔레꽃 같은 한국의 토종 장미 원종을 바탕으로 한국 전통 야생장미의 DNA를 가진 장미를 키우는 것"이라며 "정원에 심어놨을 때 예쁘면서도 관리가 적게 필요한 품종으로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에버랜드는 장미뿐만 아니라 매화 신품종도 만들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의 오죽헌에 있는 천연기념물 '율곡매'를 잇는 신품종이다. 이미 5년 전부터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곧 결실을 맺을 전망이다. 이 그룹장은 "천연기념물은 증식을 할 수 없지만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 전 후계목을 에버랜드가 가지고 있다"며 "연한 분홍색에 향기가 진한 매화 품종을 키워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에버랜드는 일본 외에도 유럽, 미국 등으로도 에버로즈를 진출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그룹장은 "최근 수출에 성공한 일본과 달리 유럽, 미국은 우리와 기후도 다르고 좋아하는 꽃의 종류도 다르다"며 "우리는 탐스러운 꽃을 좋아하지만 유럽과 미국에서는 꽃이 수수하더라도 관리가 쉽고 키가 작은 품종을 선호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는 이런 스타일의 품종을 가지고 유럽으로 진출하려고 타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이 그룹장은 자체 품종 개발 외에도 에버랜드의 정원이 관람객과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 그룹장은 "식물을 심어놓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성장하듯이 정원 역시 성장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똑같은 공간이더라도 10년 후에는 이 장미정원을 비롯한 에버랜드의 정원들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성장해 있을 것"이라며 "그 시대의 언어로, 그 시대의 생각으로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즐겨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