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의 재계 순위가 1년 만에 다시 6위로 내려앉았다. 지난해 토지 자산 재평가를 통해 5위 자리를 되찾았지만 비핵심 자산 매각 등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자산총액이 감소한 영향이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그룹 부채 규모는 쉽게 줄지 않고 있다. 다만 유통·식음료·호텔 등 본업의 실적이 대폭 개선되면서 롯데그룹이 점진적으로 재무 건전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6위→5위→6위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2026년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 지정 현황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지난해보다 한 단계 하락한 6위를 기록했다. 이 순위의 기준이 되는 공정자산총액이 전년보다 약 8960억원 줄어든 142조4200억원에 그쳤기 때문이다. 상위 10개 그룹 중 공정자산총액이 줄어든 것은 롯데그룹이 유일하다. 그룹 전체 매출액도 65조7980억원으로 전년 대비 2조6100억원 줄었다.
공시대상기업집단 순위는 곧 재계 서열로 받아들여진다. 롯데그룹은 2010년부터 13년간 재계 5위를 지켜왔지만 2023년 포스코에 밀려 6위로 내려앉았다. 지난해에는 롯데쇼핑의 토지 자산 재평가로 간신히 5위를 되찾았으나 1년 만에 또 6위로 밀려나면서 '5대 그룹' 타이틀을 다시 내려놓게 됐다.
롯데그룹을 제치고 5위에 오른 한화그룹의 자산이 24조원 가량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지만 더 결정적인 요인은 롯데그룹의 자산 감소였다. 롯데그룹은 2024년 말 불거진 유동성 위기설 이후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해 지난해부터 비핵심 자산 매각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롯데케미칼은 인도네시아 법인 지분 25%를 주가수익스와프(PRS) 방식으로 유동화해 6500억원을 확보했다. 2020년 매입했던 일본 레조낙 지분도 전량 매각했다. 롯데건설은 퇴계원 부지를, 호텔롯데는 글로벌 면세 기업 아볼타 지분을 처분했다.
이밖에도 코리아세븐은 ATM 사업부를 정리했고 롯데웰푸드는 증평공장을 처분했다. 롯데그룹이 이런 자산 매각을 통해 지난해 한 해 동안 확보한 현금은 약 1조5000억원에 달한다.
이와 함께 롯데그룹은 계열사 구조조정도 진행했다.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지난해 계열사 수를 기존 96개에서 92개로 줄였다. 롯데헬스케어와 울산에너루트1호 등 부진한 법인을 청산하고 스틱인터랙티브와 롯데인천타운 등을 합병으로 정리한 결과다.
여전한 재무 부담
문제는 꾸준히 자산을 정리하고 있음에도 롯데그룹의 부채 부담이 여전히 과중하다는 점이다. 나이스신용평가가 지난달 내놓은 그룹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롯데그룹의 비금융 부문 합산 순차입금은 2024년 말 약 37조8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37조6000억원으로 소폭 감소하는 데 그쳤다. 2021년 말의 24조8000억원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반면 롯데그룹의 현금 창출력은 오히려 악화됐다. 그룹 전체의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은 2024년 4조3536억원에서 지난해 4조2652억원으로 줄었다. 롯데그룹의 재무 부담이 좀처럼 줄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롯데케미칼의 긴 부진이다. 롯데케미칼은 중국의 석유화학 설비 증설과 업황 악화로 실적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롯데케미칼이 지난해에 낸 영업손실만 9431억원에 달한다.
롯데그룹이 지난해 유동성 위기 해소를 위해 자금 조달을 늘린 것 역시 재무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롯데지주의 신종자본증권 잔액은 2024년 말 3500억원에서 2025년 말 6250억원으로 증가했다. 롯데건설도 지난해 총 7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인도네시아·미국 법인 지분 주가수익스와프(PRS)로 총 1조3100억원을 조달했다.
한국신용평가 역시 지난달 말 발표한 롯데그룹 분석 보고서에서 "신종자본증권과 PRS 등 부채적 성격의 자금조달이 확대되고 있다"며 "신종자본증권의 경우 지속적인 차환 부담이 존재하며 향후 잠재적인 재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본업은 살아난다
다만 올해 들어 유통·식음료·호텔 등 롯데그룹의 전통적인 '본업'이 뚜렷한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화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핵심 사업이 실적 개선에 성공하면서 롯데그룹의 재무건전성 회복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롯데그룹의 유통사업을 이끄는 롯데쇼핑은 지난 1분기 매출액이 3조5949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3.4% 성장했다. 특히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529억원으로 전년 대비 70.6% 증가했다. 백화점이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47.1% 늘어나며 큰 폭의 수익성 개선을 이끌었다.
지난해에도 백화점 부문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27.7% 늘며 회복세를 보였는데 올해 들어 그 폭이 더 커진 셈이다. 해외 사업도 순항 중이다.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가 분기 최대 영업이익을 경신했고 베트남 할인점(롯데마트)도 5년 연속 영업이익 증가세를 기록했다.
롯데그룹 식음료 부문도 반등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 역시 지난 1분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보다 6.5% 성장한 1조792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478억원으로 전년 대비 91.0% 증가했다. 지난해 롯데칠성음료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9.6% 줄어든 1672억원에 그쳤으나 올해 들어 음료·주류·글로벌 사업 모두 개선되며 반등에 성공했다.
롯데웰푸드도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이 358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118.0% 증가한 수치다. 지난해 원가 상승으로 영업이익이 30.3% 줄어든 것과는 대조적이다. 올해는 인도와 카자흐스탄 등 해외 매출이 18% 늘어나며 롯데웰푸드의 성장을 주도했다.
롯데케미칼이 지난 1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1분기 영업이익 735억원을 기록하며 10개 분기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중동 전쟁 여파로 제품 판매 가격이 상승한 영향이 컸으나 장기 적자 국면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호텔롯데도 올해 외국인 관광객 증가세가 이어지면서 호텔과 면세 모두 실적 개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롯데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이 일시적 반등이 아닌 본업 경쟁력 강화로 실적을 회복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백화점의 콘텐츠 강화와 롯데웰푸드·롯데칠성음료의 글로벌 사업 확대가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유통·식음료 등 그룹의 성장을 이끌어온 핵심 사업들이 본원적 경쟁력 강화를 통해 실적 반등을 이뤄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며 "이러한 개선 흐름이 지속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