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또 흘렸네
며칠 전 치킨을 먹었습니다. 해외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면서 매콤한 음식이 그렇게 땡길 수가 없었는데요. 김치찌개부터 얼큰 설렁탕, 낙지볶음, 닭볶음탕 등 웬만한 음식들을 다 먹고 나니 더는 생각이 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한식이 아닌 메뉴를 생각하다가 결국 굽네치킨의 '고추 바사삭'을 시켰습니다. 원래는 1인 1닭을 못하는데, 그 날은 어찌나 맛있던지 혼자 다 먹어 치웠습니다. 흔치 않은 날이죠.
일명 '맵찔이'인 저에게 치킨 무는 필수입니다. 포장지를 뜯다가 국물이 넘쳐 흐르기도 하고 심할 땐 사방팔방 튀기는 일도 종종 생기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느끼함을 잡아주면서도 매운 맛을 어느 정도 중화해주는 치킨 무의 역할이 참 중요하거든요. 가끔은 두개씩 집어 먹다가 모자랄까 봐 참고 막판에 먹기도 합니다.

여기서 다소 불편하실 수 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합니다. 저는 치킨 배달이 오면 제일 먼저 싱크대로 달려갑니다. 치킨 무의 국물을 버리기 위해서인데요. 매번 국물을 따라내는 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도 미리 국물을 버리고 나면 치킨을 먹고 난 후 뒤처리가 속전속결이라서 좋습니다. 먹는 도중에 국물이 넘칠 걱정도, 닦아야 할 걱정도 모두 필요가 없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치킨 무의 국물을 버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요즘은 국물을 적게 담은 절임 식품들이 시중에 많이 나오고 있는데, 치킨 무의 국물은 왜 줄지를 않을까 하고요. 사전에 무를 절이고 농축된 국물을 소량만 넣을 순 없었던 걸까요?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번 [생활의 발견]을 통해 한 번 알아보려고 합니다.
국물의 위대함
치킨 무의 제조 과정부터 살펴볼까요. 주재료인 생무를 깨끗하게 씻는 게 먼저겠죠. 이렇게 세척이 끝난 무는 본격적으로 작업자들의 손을 거치기 시작합니다. 작업자들은 무의 껍질과 상처가 난 부분 등 불필요한 곳들을 깎아냅니다. 이후에는 기계가 대신해 무를 깍둑썰기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치킨 무의 네모난 모양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입니다.
먹기 좋은 크기로 썰린 무는 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이동합니다. 그리고 미리 준비된 플라스틱 용기에 알맞게 소분됩니다. 치킨 무 특유의 새콤달콤한 맛을 내는 조미액도 이때 추가로 들어갑니다. 이 작업이 모두 끝나고 나면 내용물이 새지 않도록 밀봉하고, 박스에 넣어 냉장보관합니다.

결국 공장에서 만들 때까지만 해도 치킨 무는 그저 생 무의 맛이라는 이야기인데요. 그런데 우리가 치킨과 함께 먹을 땐 다른 맛이 납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유통 과정을 거치는 동안 무가 배합된 국물에 따라 자연스럽게 숙성되기 때문인데요. 최소 3일은 지나야 우리가 아는 치킨 무의 맛이 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용기에 듬뿍 담긴 국물이 단순히 감칠맛을 위해서만 필요한 걸까요? 무의 수분 유지와 보존을 위해서도 빠질 수 없는 핵심 요소입니다. 치킨 프랜차이즈의 시스템상 치킨 무는 대량 생산을 거쳐 전국 단위로 유통되는데요. 그동안 무가 마르거나 변질되는 것을 방지해야 합니다. 이때 치킨 무의 국물은 플라스틱 용기 내에서 산성 환경을 조성해 미생물의 번식을 막고, 아삭한 식감을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하죠. 아주 똑똑한 역할을 하네요.숨은 전략
공장에서 미리 절인 무를 사용해 치킨 무를 만드는 방식도 안 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여기에는 몇 가지 제약이 따른다고 하는데요. 먼저 무가 이중으로 절여지면 품질과 신선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고요. 유통할 수 있는 기한이 기존보다 짧아지는 만큼 보존제가 더 필요할 수 있습니다.
프랜차이즈 업계 입장에서도 부담입니다. 치킨 무는 아시다시피 '사이드 메뉴'죠. 요즘은 돈을 받고 치킨 무를 옵션에 껴두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 치킨을 시키면 자연스레 딸려옵니다. 그런데 공장에서 무를 절이는 과정까지 거쳐야 한다면 추가적인 설비나 공정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작업자들이 해야 할 일도 늘어납니다. 보관과 위생 상태를 수시로 들여다봐야 하고 무의 염도는 어떤지, 균일하게 절여지고 있는지 등 세밀한 부분까지 관리해야 합니다. 인건비가 더 들어가는 만큼 원가가 올라가는 건 당연하겠죠. 이를 감수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이 때문에 품질과 생산 효율성을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는 기존 방식을 고수하게 됐다는 설명입니다.

소비자 반발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미 대부분의 소비자는 국물이 많은 것에 익숙하죠. 그렇다 보니 국물을 줄이면 맛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절인 무를 사용한 만큼 '신선하지 않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생길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할 사항 중 하나가 될 테고요.
어떠셨나요. 저는 치킨 무 국물에도 업계의 전략이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습니다.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선 가장 안정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은데요. 앞으로는 치킨 무의 포장을 뜯다가 흘리더라도 절대 짜증내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맛있는 치킨 무를 만들기 위한 수많은 노력이 담겨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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